철강 업계에 반덤핑 제소 ‘쓰나미’가 일고 있다. 현대제철의 수입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에 이어 열연강판을 소재로 사용하는 도금·컬러강판 기업들도 정부에 대중국 보호무역 조처를 요구하고 나섰다. 열연강판은 냉연강판, 도금강판, 컬러강판, 강관 등 판재류의 기초 철강재로 활용된다.
그간 도금·컬러강판 생산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수입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처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이 같은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서도 수입 통제를 요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수출경제인 한국이 반덤핑 제소를 비롯한 보호무역주의 조처를 무분별하게 활용하면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4일 관보를 통해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 개시 여부를 밝힐 예정이다. 이는 현대제철이 지난해 12월 산자부 무역위원회에 관련 조사를 신청한 데 대한 답변이다. 현대제철은 자신들이 후공정 업체에 넘기는 열연강판의 가격이 t당 80만원대 수준인데, 일본·중국에서 염가로 들어오는 제품은 70만원대라 국내 철강 생태계를 보호하려면 수입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국씨엠, 세아씨엠, KG스틸 등은 소재인 열연강판의 가격이 높아지면 자신들이 생산하는 도금‧컬러강판 제품 생산 비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열연 반덤핑에 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이미 산자부의 반덤핑 조사 개시가 ‘정해진 미래’라고 보고 있다. 이에 업계 1위 동국씨엠은 지난달 27일 “건축용 중국산 컬러·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미 저가 수입품 때문에 내수에서 고전하고 있는데, 핵심 소재인 열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이 더 약화하면 외산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중국산 건축용 도금·컬러강판의 연간 수입 물량은 최근 3년간 약 76만t에서 102만t까지 3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단가 또한 t당 952달러에서 730달러로 23.3% 싸졌다.
도금·컬러강판 업계는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관세 절차가 개시되면 이를 회피하려는 중국 업체들의 꼼수로 발생할 피해도 걱정한다. 중국 업체들이 열연강판에 코팅, 도금 등 최소한의 후가공만 해 열연강판을 도금·컬러강판류로 탈바꿈하면 반덤핑 관세를 피해 한국 시장에 저가 제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 유통 중인 중국산 컬러강판 대부분이 건축법 규정 도금량(90g/㎡)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60g/㎡)인 것이 현실이고, 도금 두께는 부식 및 화재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기준 미달의 중국산이 계속 한국에 들어와 국내에서 건축용으로 쓰이면 국민 주거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산업계 반덤핑 제소의 확산 흐름이 상대국의 보복 등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장은 “단기적으로 국내 수요 부족, 해외 저가 상품 범람, 주요국의 보호무역 조치 등 삼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 철강 업계의 어려움을 외면하기 어렵다”면서도 “전체 한국 경제를 위해서는 단기 미봉책인 반덤핑 관세를 적용하는 품목, 업종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하고 정부와 기업이 자구책을 찾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