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기를 맞았다. 당시 미국 디자인계는 화려함과 복잡함이 지배했다. 더 많은 장식, 더 풍성한 디자인이 유행했다. 자동차는 번쩍이는 크롬 장식으로 장식했다. 가구는 복잡한 문양과 유려한 곡선으로 뒤덮였다. 소비자들은 더 크고, 더 화려한 제품에 열광했다.
독일 전자제품 회사 브라운(Braun)의 수석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는 다른 길을 택했다.
디자인 과잉 시대에 그는 정반대 원칙을 세웠다.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했다. 오로지 기능에 충실했다. 장식 대신 단순함을, 화려함 대신 효율성을 추구했다.
1955년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 SK4 축음기는 가전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하얀색 금속 케이스에 투명한 뚜껑, 가장자리에 두른 원목 때문에 ‘백설 공주의 관(Snow White’s Coffi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축음기는 그야말로 무덤 속 관처럼 네모반듯하고, 일절 장식이 없었다. 최소한의 조작 버튼만 남긴 디자인은 동시대 미국 전자제품들의 과도한 장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가전업계에서는 “너무 단순해서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소비자들은 이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이 디자인을 ‘가정용 오디오 장비 유형을 재정의한 원초적인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단순하면서도 핵심에 집중한 람스의 디자인 철학은 점차 인정받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화려함은 일시적 관심을 끌지만, 진정한 가치는 본질에 충실할 때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철학을 바탕으로 디자인 10계명을 정립했다. 이 원칙은 애플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쳤다.
단순함의 철학은 와인 세계에서도 그 가치를 발휘한다.
미국 나파밸리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남성적이고 강렬한 와인으로 유명했다.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입맛에 맞춰 양조했다. 소위 ‘파커화(Parkerization)’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파커는 와인 비평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그가 세운 비평 기준 ‘파커 포인트’는 100점 만점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이 점수를 얼마나 높게 받는지 여부에 따라 해당 와인 판매 성패(成敗)가 갈렸다.
1994년 파커는 미국 캘리포니아 신생 와인 양조업체 씨네 쿼 논(Sine Qua Non)이 처음 내놓은 와인에 95점을 줬다. 파커 포인트 기준에 따르면 95점은 ‘복잡하고 미묘한 개성을 지닌 탁월한 와인’이라는 의미다. 점수 발표 직후 뉴욕·런던·파리·도쿄 같은 주요 와인 시장에서 이 와인 가치는 급등했다. 제품 전량이 이틀 만에 매진됐다.
영국 와인 도매상 빌 블래치는 저서 ‘와인의 황제, 로버트 파커’에서 “파커 점수 85점과 95점 차이는 해당 와인 매출로 볼 때 최소 100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며 “100점 만점을 받았다면 이전에 팔던 가격보다 4배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파커는 15도가 넘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진득할 만큼 강한 과일 농축감, 참나무통에서 오래 숙성해 바닐라 향이 뚜렷한 와인에 종종 95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생산자들이 지나치게 추출한, 충분히 묵히지 않은, 값비싼 와인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이 시기부터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평균 가격은 1병당 100달러를 넘어갔다. 와인 수집가들은 나파밸리 와인을 식품이 아닌 투자 상품으로 취급했다. 와인을 마시는 본연의 즐거움보다 점수와 투자 가치가 앞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브레드 앤 버터(Bread & Butter)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와이너리다. 이들은 기존 나파밸리 와인 양조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빵과 버터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누구나 즐겨 먹는 조합이다. 브래드 앤 버터 대표 양조가 린다 트로타는 “와인은 매일 먹는 빵과 버터처럼 소박하면서도 품질 좋은 음식이어야 한다”며 “완벽함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일 마시고 싶은 와인을 추구한다. 복잡한 전문 용어나 높은 가격표, 혹은 화려한 마케팅 없이도 그저 맛있어야 한다는 게 브레드 앤 버터 와인 생산자들이 가진 지론이다.
브레드 앤 버터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나파 밸리 여러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를 섞어 만든다. 이 지역 포도가 품은 전형적인 검은 체리와 풍부한 과일 향은 그대로 갖췄다. 파커화가 초래한 과도한 참나무통 향이나 높은 알코올 도수는 과시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나파밸리 레드 와인이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높아 수확 후 3~5년이 지나야 마시기 적절한 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브레드 앤 버터는 출시 직후 바로 따라 마셔도 적절한 상태로 즐길 수 있다. 장기 숙성 같은 요소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와인이 주는 근본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강조한 덕분이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롯데칠성음료다.
독일 전자제품 회사 브라운(Braun)의 수석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는 다른 길을 택했다.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Less, but better.
디터 람스 브라운 수석 디자이너
”
디자인 과잉 시대에 그는 정반대 원칙을 세웠다.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했다. 오로지 기능에 충실했다. 장식 대신 단순함을, 화려함 대신 효율성을 추구했다.
1955년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 SK4 축음기는 가전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하얀색 금속 케이스에 투명한 뚜껑, 가장자리에 두른 원목 때문에 ‘백설 공주의 관(Snow White’s Coffi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축음기는 그야말로 무덤 속 관처럼 네모반듯하고, 일절 장식이 없었다. 최소한의 조작 버튼만 남긴 디자인은 동시대 미국 전자제품들의 과도한 장식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가전업계에서는 “너무 단순해서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소비자들은 이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이 디자인을 ‘가정용 오디오 장비 유형을 재정의한 원초적인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단순하면서도 핵심에 집중한 람스의 디자인 철학은 점차 인정받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화려함은 일시적 관심을 끌지만, 진정한 가치는 본질에 충실할 때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철학을 바탕으로 디자인 10계명을 정립했다. 이 원칙은 애플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픽=손민균
단순함의 철학은 와인 세계에서도 그 가치를 발휘한다.
미국 나파밸리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남성적이고 강렬한 와인으로 유명했다.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 입맛에 맞춰 양조했다. 소위 ‘파커화(Parkerization)’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파커는 와인 비평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그가 세운 비평 기준 ‘파커 포인트’는 100점 만점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 이 점수를 얼마나 높게 받는지 여부에 따라 해당 와인 판매 성패(成敗)가 갈렸다.
1994년 파커는 미국 캘리포니아 신생 와인 양조업체 씨네 쿼 논(Sine Qua Non)이 처음 내놓은 와인에 95점을 줬다. 파커 포인트 기준에 따르면 95점은 ‘복잡하고 미묘한 개성을 지닌 탁월한 와인’이라는 의미다. 점수 발표 직후 뉴욕·런던·파리·도쿄 같은 주요 와인 시장에서 이 와인 가치는 급등했다. 제품 전량이 이틀 만에 매진됐다.
영국 와인 도매상 빌 블래치는 저서 ‘와인의 황제, 로버트 파커’에서 “파커 점수 85점과 95점 차이는 해당 와인 매출로 볼 때 최소 100억원 정도 차이가 난다”며 “100점 만점을 받았다면 이전에 팔던 가격보다 4배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파커는 15도가 넘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진득할 만큼 강한 과일 농축감, 참나무통에서 오래 숙성해 바닐라 향이 뚜렷한 와인에 종종 95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생산자들이 지나치게 추출한, 충분히 묵히지 않은, 값비싼 와인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이 시기부터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평균 가격은 1병당 100달러를 넘어갔다. 와인 수집가들은 나파밸리 와인을 식품이 아닌 투자 상품으로 취급했다. 와인을 마시는 본연의 즐거움보다 점수와 투자 가치가 앞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브레드 앤 버터(Bread & Butter)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단순함을 추구하는 와이너리다. 이들은 기존 나파밸리 와인 양조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빵과 버터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누구나 즐겨 먹는 조합이다. 브래드 앤 버터 대표 양조가 린다 트로타는 “와인은 매일 먹는 빵과 버터처럼 소박하면서도 품질 좋은 음식이어야 한다”며 “완벽함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일 마시고 싶은 와인을 추구한다. 복잡한 전문 용어나 높은 가격표, 혹은 화려한 마케팅 없이도 그저 맛있어야 한다는 게 브레드 앤 버터 와인 생산자들이 가진 지론이다.
브레드 앤 버터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은 나파 밸리 여러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를 섞어 만든다. 이 지역 포도가 품은 전형적인 검은 체리와 풍부한 과일 향은 그대로 갖췄다. 파커화가 초래한 과도한 참나무통 향이나 높은 알코올 도수는 과시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나파밸리 레드 와인이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높아 수확 후 3~5년이 지나야 마시기 적절한 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브레드 앤 버터는 출시 직후 바로 따라 마셔도 적절한 상태로 즐길 수 있다. 장기 숙성 같은 요소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와인이 주는 근본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강조한 덕분이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롯데칠성음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