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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생 마약 동아리 '깐부' 사건 재구성]
'친목 동아리'에서 '마약 유통지'로 변모
동아리 만든 회장 염씨, 범죄 전과 여럿
연루된 명문대생, 의사 등 1심서 유죄
대학생 연합동아리에 가입한 피의자들이 마약을 투약하는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202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밤 11시가 넘은 시각,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서울 강서구의 한 호텔 방으로 들이닥쳤다. 사건 현장에는 혈흔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여성 A(25)씨는 남자친구 염모(32)씨의 몸을 긁는 등 난동을 부렸다. 염씨 역시 "마치 지옥에 있는 것 같다"며 환시를 호소했다. 현장에선 속칭 '엑스터시'라 불리는 합성마약 MDMA와 환각효과가 강한 LSD 등이 발견됐다. A씨와 염씨는 이날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이 사건은 연인 간 단순 마약 매매·투약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다. 그러나 공판 기록을 살펴보던 서울남부지검 공판검사의 예리한 판단 덕에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검사는 염씨가 같은 금액을 여러 번 송금받은 계좌 내역을 수상하게 여겨 계좌·통신 등을 분석했다. 수사 결과, 이 돈은 염씨가 2021년 만든 친목 도모 연합 동아리 '깐부' 회원들이 염씨에게 보낸 마약 대금으로 드러났다. 염씨는 명문대생들을 주축으로 한 이 동아리 회장이자 회원들을 상대로 한 마약 유통책이었다. 대학 동아리는 어쩌다 마약을 주고받는 범죄의 온상지가 됐을까. 동아리 회장 염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호화 활동 내세워 회원 모집

SNS에 올라온 연합 동아리의 회원모집 글. 서울남부지검 제공


'파인다이닝, 뮤직페스티벌 입장 무료' '동아리에 자차 8대 이상 보유' '서울 내 33평 13억 오피스텔이 동아리방'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깐부의 회원 모집 글은 다른 동아리와 달랐다. 파격적인 각종 혜택이 줄을 이었다. 코로나19가 겹친 시기 이런 광고에 현혹된 명문대 재학생들이 빠르게 모였다. 단기간에 정식 회원만 300명에 달했다. 이처럼 호화스럽게 동아리 운영을 한 장본인이 염씨였다.

염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다녔으나 휴학 이후 장기간 복학하지 않아 2020년 제적됐다. 그는 이듬해 대학 연합 동아리 깐부를 결성한다. 애초 깐부는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원 수를 크게 늘려 1인당 부담되지 않는 회비를 내고도 풀파티, 파인다이닝 등 대학생들이 가기 힘든 값비싼 장소를 함께 즐기자는 취지로 만든 동아리였다.

그러나 2022년 11월, 염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처음 접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는 1심 재판에서 "LSD를 하면 스티브 잡스처럼 좋은 영감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고 진술했다. 마약에 빠진 염씨는 친한 동아리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급기야 동아리 여자 회장 이모(26)씨, 회원 홍모(27)씨와 '마약 공동 구매'를 시작했다. 염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구매하면, 이씨와 홍씨가 비용을 일부 분담하고 서로 약을 나눠 갖는 식이었다.

염씨 일당의 행태는 점차 대담해졌다. 동아리 참여율이 높은 회원들을 선별해 술자리를 가지며 마약류를 권했다. 처음엔 비교적 약한 마약류에 속하는 액상대마를 주다가 점차 수위를 높여 환각효과가 강하고 중독성이 높은 MDMA, LSD, 케타민, 사일로시빈, 필로폰 등 여러 마약을 접하게 했다. 중독된 회원들은 이제 스스로 마약을 찾기 시작했다. 염씨는 이들을 상대로 마약을 '소매 판매'하며 건당 5만~10만 원가량 차익을 봤다. 마약 판매 수익은 호화 동아리 운영에 쓰였고, 다시 놀이공원, 해외 등에서 마약을 투약하는 악순환 구조가 생겼다. 이렇게 깐부는 명문대생 커뮤니티의 탈을 쓴 마약 유통의 온상이 되어갔다.

회장 염씨 알고 보니... '종합 범죄 세트'

게티이미지뱅크


회장 염씨의 범행은 특히 악랄했다. 그는 고급호텔 스위트룸에서 남성 회원과 여종업원을 불러 집단 마약을 했다. 동아리원이 아닌 대학생, 외과의사 등에게 마약을 팔기도 했다.

염씨의 범행은 마약 판매·유통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어려 보이는 외모를 무기 삼아 운전면허증에 적힌 '93년생' 숫자를 '03년생'으로 슬쩍 바꿔 젊은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실제 재판정에서 본 염씨는 또래에 비해 앳된 얼굴이라 20대 대학생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렇게 사귀게 된 A씨가 다른 동아리 회원들과 어울리자 격분한 그는 2023년 4월, 와인병으로 A씨를 폭행했고 성관계 중 촬영한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염씨는 마약에 손을 대기 전부터 죄질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20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당시 19세였던 피해자 B씨와 만나 가학적 성관계를 맺는 계약을 했다. 이를 빌미로 2021년 B씨의 얼굴이 드러나도록 한 나체 사진과 성행위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B씨에겐 촬영물을 가족들에게 보내겠다며 상습 협박했다. SNS에 '집단 성관계 참여자 모집 글'을 올려 남성들을 부른 뒤 B씨가 건강상 이유로 거절했는데도 집단 성교를 두 차례 강행했다.

염씨에겐 절도 전과도 있었다. 2020년 서울 영등포구의 대형 마트에서 스피커와 여행가방을 훔치고,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창고에서 주류 30여 병을 훔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이던 2023년 7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동아리 회원에게 글을 내리도록 강요해 재차 벌금 3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법망 벗어나려 끝까지 발버둥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염씨는 여러 차례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B씨에게 행한 범죄 행위는 염씨가 A씨와 호텔에서 마약을 함께 투약했던 사건과 병합됐고 항소심을 거쳐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이후 A씨에 대한 폭행과 불법촬영물을 빌미로 한 협박 등의 사건은 집단 마약 복용 등과 함께 묶여 성폭력처벌법 위반, 특수상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염씨 측은 마약 매매·투약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공소·수사 절차가 위법하다"며 무혐의를 주장했다. 2021년 이후 검찰의 마약수사권이 대폭 축소돼 검찰이 마약 범죄를 수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은 선행 사건(앞서 기소돼 징역 4년이 확정된 사건)과 직접 관련성이 있다"며 염씨 주장을 물리쳤다. 검찰청법 제4조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라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재판부는 염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고, 검찰이 형이 너무 가볍다며 불복해 항소심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염씨와 마약을 거래한 동아리원 13명은 서울대, 고려대 등 명문대생이었으며 법학전문대학원, 약대 준비생도 있었다. 이들 중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8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최소 징역형 집행유예, 최대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다. 염씨에게 마약을 구매한 외과의사에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남은 동아리 회원 1명과 동아리원이 아닌 마약 거래자들의 1심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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