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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10대들이 바라본 ‘청소년 극우화’
남녀·계층·성적 등 모든 영역서 차별 정당화하는 게 보편적 현상
인정욕구와 결부…건강한 논쟁 없는 빈틈으로 왜곡된 정보 고여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이 지난 2월 24일 강남의 한 건물 복도를 걷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현재 고등학생인 아들의 주변 모든 남자아이가,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단 한 명도 안 빼고, 100% 윤석열을 지지하며 신남성연대(극우 유튜버)를 추종한다.”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가 자신의 SNS에 쓴 글의 한 부분이다. 비판이론을 공부한 이 학자는 극우 이념에 빠진 아들을 끈질긴 설득 끝에 ‘구출’해냈다는 글로 최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정말 그의 말처럼 극우적 이념에 물든 10대 남성 청소년이 흔하디흔할까. 이게 사실이라면 아이들을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전국에 사는 고등학생 남녀 10명을 만났다. 이중 4명은 실명 혹은 활동명으로, 신원 노출을 꺼린 6명은 익명으로 인터뷰했다. 그들은 말했다. “소수자 혐오 등 극우 세계관이 학교 내 주류인 건 분명하다”고.

페미니스트 한마디에 1500개 ‘꺼져라’ 악플

2021년 초여름이었다. 수도권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은어를 거리낌 없이 쓰고 있었다. 마침 도덕을 가르치는 여성 교사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때 한 학생이 불쑥 끼어들었다. “선생님 페미예요?” 교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성평등을 지향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맞지.” 그 대답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그때 그 교사는 몰랐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해당 교사를 파면해야 한다는 글이 국민신문고에 올라왔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극우 사이트 신남성연대 게시글을 보고 누군가 청원 글을 올린 것이다. 그 교사는 이미 사이트에서 ‘페미’라는 낙인과 함께 실명, 학교 소속 등이 노출돼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게시글에는 ‘돼지년’, ‘쫓아가서 죽이겠다’는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댓글이 1500여개가 달렸다. 교사는 이 사건의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앓았다. 해당 교사 A씨는 “신남성연대에서 수모를 겪은 선생은 나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극우에 대한 학계의 통일된 개념 정립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극우 세계관의 특성은 차별, 배제, 반평등으로 좁힐 수는 있다. 한국의 극우는 적대적 성차별주의(hostile sexism)를 기반으로 결집하는 게 특징이다. ‘페미니스트’란 한마디에 선생님을 불특정 다수에게 언어 폭행을 당하도록 유도한 것은 철없는 소년의 짓궂은 장난으로 보기 힘들다. 이것은 극우적 활동이다.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광주든 어디든 차이가 거의 없다. 극우화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남녀, 계층, 성적 등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굉장히 보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인천의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남성 B씨(17)는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는 ‘게이 XX’, ‘너 페미지?’, ‘너 빨갱이냐?’ 같은 표현을 악의가 담긴 욕으로 쓰기보다는 친구끼리의 장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했다.

‘제육볶음’ 밈 등 소수자 혐오로 남성성 과시

10대 남성들은 혐오 표현이나 극우의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학습할까. B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그룹 채팅방’을 보여줬다. 같은 반 동성 친구 5명이 모인 해당 채팅방에서는 한 친구가 ‘부엉이바위 간다’라는 아이디(ID)를 쓰고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채팅방에는 그 친구가 올린 극우·혐오 영상이 많았다. 예컨대 노 전 대통령과 코알라 사진을 합성한 ‘노알라’ 영상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찢재명’(이 대표의 형수 욕설 사건에서 유래한 부정적 별명)이라고 놀리는 영상 등이다.

“다들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찢찢’거려요. 두 손으로 뭔가를 찢는 시늉도 하죠. 그냥 별 뜻 없이 ‘추임새’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강원도의 고등학생인 C씨(18)는 같은 학교 동갑내기 친구인 D·E·F씨와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롤)’와 ‘오버워치’ 등을 즐긴다. 이들은 게임을 할 때 음성 대화를 지원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인 ‘디스코드’를 이용하는데, 그런 표현을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예컨대 게임 ‘롤’을 할 때 ‘탈론’이란 캐릭터가 벽을 넘어 이동하면 “이재명 했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이재명 대표가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간 것을 빗댄 말이다. ‘롤’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전략적 팀 전투(롤토체스)’ 게임에서는 ‘계엄령’이란 기술을 쓰는 캐릭터가 있는데, 이 캐릭터가 나오면 C씨와 그의 친구들은 디스코드를 통해 “윤석열 떴다”라고 말한다.

인천의 한 고등학생(왼쪽)이 2월 24일 10대 남학생들의 정치 성향과 관련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극우적 표현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건 인정욕구와 결부돼 있다. 서울 강북의 한 중학교 교사는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아이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반 애들은 극우화한 소수 학생의 말이 재밌다고 생각하고 따라 하려 한다. 남성 문화에 편입하기 위해,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과정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B씨는 친구가 극우 영상을 올리면 눌러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다고 했다. 해당 채팅방에서 이런 영상에 반응하는 B씨의 친구는 한두 명 정도다.

“학교에 인기 많은 남자애가 있어요. 말 잘하고 웃기고 축구 잘하고···. 여학생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도 좋아해요. 그런데 남학생들은 다 알죠. 걔가 극우 영상, 소수자를 조롱하는 영상, 여성을 대상화한 영상을 좋아한다는 걸요. 제 친구도 그걸 따라 하는 거예요. 그쪽 무리와 어울리면서 그런 영상을 공유해야 (동성) 친구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극우 유튜버들은 10대들에게 극우적 정치 이념을 주입한다. C씨와 F씨는 방송사의 공식 유튜브 계정 등을 본다고 했다. 반면 E씨는 “뉴스도 보지만, 제대로 알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며 좀더 이슈를 깊이 알고 싶을 때는 특정 유튜브 채널을 찾는다”고 했다. E씨는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로 ‘호밀밭의 우원재’, ‘천조국 파랭이’ 등을 언급했다. ‘호밀밭의 우원재’는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 유튜버, ‘천조국 파랭이는 극우 성향의 유튜버로 분류된다. E씨는 “보수 성향이긴 하지만 조곤조곤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한다. 똑똑해 보인다”고도 했다.

이들 채널은 탄핵 국면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영상을 다수 올리고 있다. 호밀밭의 우원재는 “국가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보다) 더 큰 아픔과 혼란을 주는 게 누구라고 보냐”며 “진짜 내란과 외환이 있었기를 바라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냐”며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는 영상 등을 게시했다. 천조국 파랭이는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 감성 선동뿐”이라고 주장하고, 헌법재판관에 대해서는 “좌빨 판사”, “배후세력이 있다”고 말한다.

강원도의 고등학생들이 구독하거나 즐겨 본다고 소개한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 릴스 영상. / 이재덕 기자


D씨는 젊은 여성이 가면을 쓰고 나오는 ‘슈퍼me소녀’라는 유튜브 채널을 가끔 보는데, 이 역시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 유튜브 채널은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야당 정치인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특히 젊은 여성 정치인,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영상 등을 다수 올려 확산시킨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G씨(17)는 2020년 인터넷 방송인 랄로가 한 일명 ‘제육볶음’ 발언이 학교에서 관용어처럼 쓰인다고 말했다. 여성은 한밤중에도 남성이 원하면 제육볶음을 요리해 갖다 바쳐야 한다는 뜻으로, 여성의 지위를 열등하게 보는 것이다. 수영씨(18·가명)는 “전국학생수호연합 광주지부라는 곳이 대표적인 극우 성향 학생조직인데 그쪽에선 남성 우월주의도 함께 내세운다”라며 “마초적 남성과 안티 페미니즘이 한데 엮여서 담론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우 유튜브를 보지 않는 10대에게까지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주입된 지 오래다. C씨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너무 과하게 PC(정치적 올바름)를 강조한다. 게임 캐릭터들이 어느 순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바뀐다. ‘PC 범벅’이 너무 많다. 그런 캐릭터를 픽(선택)했을 때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다.

정치 무균실 된 학교에선 ‘비상계엄’ 사태 언급 없어

10대 청소년들이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10대 청소년들의 극우화와 관련해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별빛, 애붕, 김준형, 수영. / 권도현 기자


학교에선 선생도, 학생도 극우적 세계관의 문제의식은커녕 중대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가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쉬쉬하면서 학교가 정치 무균실이 된 지 오래다. B씨는 “당시 학기 말 고사였는데 한국사 시험 범위가 근현대사였다. 군부의 계엄령 등이 시험 범위에 포함돼 공부하고 외웠는데도 정작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선생님들이 한마디 말도 없었다”고 했다.

F씨는 “‘정치와 법’ 과목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이번 계엄 사태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영상을 보여줬다. 그게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최대치 같았다. 계엄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애붕씨(19)는 “계엄령이 잘못됐다고 말하면 주위 모든 어른이 정치는 나중에 커서 하면 된다면서 입을 막는다”라고 말했다. 김준형씨(18)는 “경제나 사회 시간에 관련된 정치 얘기가 언급되면 웃음이 나온다. 선생은 눈치를 보고 애들도 이런 걸 말해도 되느냐며 꺼린다”고 말했다.

건강한 논쟁이 없는 교내 빈틈으로 일부 청소년들이 극우 커뮤니티에서 퍼 나르는 왜곡된 정보가 고일 수밖에 없다. 교사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자칫 정치적 이야기를 했다가 특정 정치 성향에 편중됐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G씨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수업 중 국민의힘을 비판한 한 경제 교사를 해고해야 한다는 탄원을 넣기도 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비상계엄을 설명하기 위해선 5·18 민주화운동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 학생이 ‘정치적 중립이 있다’, ‘선을 넘지 말라’고 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극우적 세계관이 문제없이 학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성인이 되어 학교 밖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극우라고 청소년을 일괄 지칭할 수는 없어도 혐오를 학습하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문제는 대학에 와서 그 생각이 더 깊어질 수 있는데, 대학에서도 이들이 다시 생각하게 만들 기회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전환자인 별빛씨(17)는 국제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얼마 전 자퇴했다. 그에게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극우적 이념 안에서도 장애나 중국과 관련된 학생들의 혐오 표현은 유희적 차원이라면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좀더 진지한 담론에 가까운 형태”라며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퇴율과 자살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천의 한 도덕 교사는 또래 집단에서의 자정 작용이 제대로 일어나도록 학교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도 ‘이기는 사람’, ‘강한 사람’ 등을 강조하면서 소수자와 약자 배려, 평등에 대한 가치를 아이들이 거의 교육받지 못한다”며 “아이들은 또래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학교 내 모듬활동이 필요한데 현재는 객관적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선생님들이 꺼리면서 아이들의 생각이 개별화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 경성중학교의 김병성 교사는 “외부 강사를 불러 강의 한두번 하는 수준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며 “토론을 일상화하고 교사는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을 던지면서 성찰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 교사가 학생들에게 대안적 남성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정치적 활동이 계속 제약되는 한 극우 세계관의 주류화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별빛씨는 “운동권에서도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는 장소에서 토크쇼 등을 열며 청소년을 논의의 장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영씨는 “모의투표를 비롯해 모든 정치적 활동을 다 막아놓고, 이제 와서 극우화가 우려돼 교정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인식은 상당히 모순적”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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