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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t] 진실의힘, ‘12·3 국회 앞 시민’ 인터뷰
“딸 만류 뿌리치고” “계엄군 뒤 쫓으며”
함께 지켜낸 일상 “찬란하고 따뜻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11차 범시민대행진’에 참가한 세 자매 유현미(왼쪽부터)·유현주·유현실씨. 그들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앞으로 달려가 내란을 저지하는 데 힘을 보탰다. 진실의힘 제공

‘그날 밤’ 이준형(56)은 소리 죽여 옷을 챙겼다.

아직 뉴스를 보지 못한 아내는 딸과 방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제일 두꺼운 옷을 챙기고 등산양말과 장갑을 챙겼”다. “하루이틀 만에 끝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금융 거래에 필요한 오티피(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도 주머니에 넣었다. 정보기술(IT) 회사 대표인 그는 “사태 전개에 따라 거리에서 회사 일을 보거나 전화로 업무 지시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분증을 챙겼”다. 그는 1980년대 말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5·18의 참상을 알게 됐다. “당시 신분 파악이 안 돼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한” 희생자들이 많았다. 그는 “혹시 잘못되더라도 내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있”길 바랐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문을 닫는데 ‘삐리릭’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아내와 딸이 막으려고 뛰어나올 것 같아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밖으로 달렸”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서 여의도로 급히 차를 몰았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유현주(66)는 딸에게 가로막혔다. 현관문을 막고 선 딸이 “완력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딸은 완강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토요일 집회 가는 건 말리지 않지만 오늘은 절대 안 된다”며 “막무가내”로 제지했다. 신발을 신으려는 엄마를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유현주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언니가 나오지 않자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막내 동생이 올라왔다. 상황을 파악한 동생이 “언니는 집에 있으라”고 했다. 걱정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그럴까’ 고민했지만 유현주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 먹은 내가 가야 한다”며 뜻을 꺾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딸이 “20여분 만에 힘을 풀었”다.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의도로 달렸다.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 보좌진과 직원, 시민들이 무장한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12월3일 국회로 나갔던 시민을 찾습니다.”

재단법인 진실의힘이 ‘내란의 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목소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비상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주범·비선·조력자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그날 밤 계엄을 저지한 사람들은 여전히 얼굴 없는 ‘시민’으로 덩어리져 있다. “계엄 선포(밤 10시28분)부터 해제 선언(이튿날 새벽 4시27분)까지 군인들을 막아선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마음이 그들을 국회 앞으로 떠밀었고,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염원하는 사회는 무엇인지 듣고 기록”(송소연 상임이사)할 때 내란의 실체뿐 아니라 ‘내란을 이긴 민주주의’도 온전히 재구성될 수 있었다.

유현주는 진실의힘이 처음 인터뷰(1월23일)한 ‘그 밤의 시민’이었다. 국회는 결혼 전 그가 근무(1980·90년대 사무처 공무원)했던 일터였다. “나는 살 만큼 살았다”며 그가 울음을 깨물었다.

“이룰 만큼 이뤘고 애들도 다 결혼했어요. 지난 인생 후회 없고 미련도 없어요. 죽기 전에 후회를 덜 남기고 싶었어요. 가면 위험할 수 있잖아요. 위험할수록 내가 그 앞에 있어야지 젊은 애들 앞세우면 안 되잖아요. 현장에 가고 싶었어요. 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그 현장에 있고 싶었어요.”

그는 세 자매의 맏언니였다. 집으로 데리러 온 두 동생 현실(60)·현미(57)와 함께 현실의 아들이 운전대를 잡은 차에 올랐다. 국회 인근에서 내린 뒤 조카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진실의힘 제공

막내 유현미는 “자기 엄마 죽을까 봐” 큰언니 앞을 가로막고 “대치”하는 조카를 보며 “마음이 따뜻했”다. 언니들과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서기 전 그는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세 자매 장렬히 산화하다’, 그렇게 기억해줘.”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그는 “스멀스멀 무서워졌”다. 두려움을 이긴 것은 “모욕감”이었다.

“계엄이 성공한다고 생각하니까 못 살 것 같았어요. 도무지 ‘이후’를 상상할 수 없는 거예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들었어요. 막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에요. 뭐라도 해야 하니 일단 가자 싶었어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국회 앞에 쪽수 하나라도 늘리자, 그거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 돌이켜 보면 제가 살기 위해서 나간 거였어요.”

그는 그림책 작가였다. 아파트를 나서기 직전 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기분이 이상해서 남을 그리듯이 자세히” 눈에 담았다. “집에서 나오다가 나도 모르게 집 안을 한번 돌아봤”다. 짧은 시간이 흐른 뒤 다짐하듯 말했다. “이제 나가자.”

세 자매가 국회도서관 정문(밤 11시4분 폐쇄) 쪽에 이르렀을 때 헬리콥터들이 국회 안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먼저 모인 사람들이 구호를 외쳤다. 2024년 겨울에 다시 만난 20대 시절의 구호들이었다. “제발 우발적으로라도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그들은 “웃기면서도 서글픈” 구호를 따라 외쳤다.

“독재 타도! 계엄 철폐!”

진실의힘 제공

진실의힘 설립자들은 1970·80년대 조작간첩 사건 등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고문했던 군사정권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5·18 당시 도청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때 기록해뒀다면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의 귀중한 자료가 됐을 것”(송소연)이란 아쉬움도 작용했다. “군부독재 피해자들이 세운 재단이 군부를 앞세운 내란 시도를 막아낸 시민들을 기록하는 일은 설립 취지와도 맞았”다. 2015년 팀을 이뤄 세월호 참사를 기록했던 진실의힘은 10년 만에 다시 기록팀을 꾸렸다. 긴급 예산을 편성해 걸음을 내디뎠다. 소셜미디어 등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한땀 한땀” 접촉해 인터뷰했다.

이준형(2월13일 인터뷰)이 국회 3문(의원회관과 소통관 쪽) 앞에 도착했을 때 경찰 버스들이 일렬로 꼬리를 물며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경찰의 눈이 뜸한 장소를 찾아 밤 11시45분께 국회 담을 넘었다. “5·18 영상에서 봤던 것들보다 무서운” 헬기들이 굉음을 일으키며 국회 안으로 진입(밤 11시47분)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로 들어가려는 군 차량을 시민들이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그는 오랫동안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았다. 2014년 회사를 세울 때 “의도적으로” 정한 창립일은 5월18일이었다. 1996년 ‘연세대 사태’(제7차 범민족대회와 제6차 청년학생통일축전 참가 학생 5713명 연행) 현장에 있었던 그는 경찰에게 끌려가는 후배들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그 마음으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1인 시위에도 참여해왔다. 그가 헬기에서 내리는 군인들의 영상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기록이 ‘증언’이란 사실을 그는 알았다. 계엄군의 움직임에 카메라를 고정했다. “들키지 않으려고 어두운 곳을 찾아” 몸을 숨기며 군인들의 뒤를 쫓았다.

“헬기가 반복적으로 실어 나른 군인들이 본청(이튿날 0시22분 봉쇄) 뒷문 쪽에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진입(0시45분)하는 그들을 막기 위한 몸싸움이 계속됐어요. 시민들이 문을 등지고 두세겹으로 막아섰습니다. 저도 군인들을 막으며 밀어냈고요. 707 특임대원들이 옆에 있었고 순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끌어냈고 제 옆 사람이 넘어졌어요. 그들은 젊고 힘이 좋으니까 저도 옆으로 끌려 나왔어요.”

지난해 12월4일 계엄군의 시간대별 동선은 그가 촬영한 영상들로도 확인됐다. 새벽 1시9분에 군인들이 국회에서 나왔고, 1시16분 철수가 시작됐다. 1시22분엔 정문 쪽에 남아 있던 군인들을 찍었다. 1시36분에 걱정하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정문 봉쇄가 풀린 뒤에야 그는 “추위를 느꼈”다.

진실의힘 제공

멀리서 달려온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국회 앞이 ‘싸움터’인 사람들은 그날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일단 몸부터 피하라고 하데요. 곧 계엄군이 몰려올 거고 잡혀갈 게 확실하니 10분 거리 다른 지회 사무실로 피하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줬어요.”

계엄 직후 김선영(53)에게 금속노조 서울지부 조직국장이 전화해 피신을 권했다. 그가 지회장인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며 3년 가까이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그날 밤 “천막에 누워 뒤척이고 있을 때” 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사무장이 “계엄” 소식을 전했다. 뉴스로 사실을 확인한 두 사람이 천막 밖으로 나갔다. 경찰 버스에서 경찰들이 쏟아져 나오며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찍어 노조 소통방에 올렸다. 영상이 조직 연락망을 따라 빠르게 전파됐다.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산별 위원장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여기서 중집(중앙집행위원회)을 해도 되겠냐”고 부위원장이 물었을 때 그가 “무슨 소리냐”며 말했다. 새벽 2시50분 총연맹 위원장이 도착하자마자 지회 농성 천막에서 ‘비상 중집’을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의 투쟁 지침이 결정됐다. 김선영은 집회 때마다 사용하던 대형 스피커들을 국회 주변 곳곳에 설치했다. 그 스피커들이 그날 민주노총과 시민들의 ‘고성능 성대’가 됐다. 지난 6일 진실의힘을 만난 김선영이 그때를 떠올렸다.

“시민들 앞에서 위원장이 ‘윤석열 계엄군과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선포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고요. 스피커를 경찰에 뺏기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호소도 하고요. 새벽 3시 넘어서는 마이크를 시민들에게 넘겼어요. 시민들이 줄을 서서 밤새 발언을 이어갔어요.”

김선영과 지회 사무장은 내란 현장에서 신속하게 움직이며 계엄 초기 시민사회의 대응을 연결시켰다. 스피커 주변을 지키며 장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살피던 그가 집에 전화해 아이들에게 알렸다.

“아빠 연락 안 되면 잡혀간 줄 알아라. 걱정은 하지 말고. 죽기야 하겠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상공에 헬기가 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 12일 재단이 공식 공지를 올린 뒤로 100명 넘은 사람들이 인터뷰 의사를 밝혀왔다. “아직 작업 초기지만 지금까지 기록한 말들엔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나라도 힘을 보태겠다’며 뛰쳐나간 시민들의 결연함과 뭉클함이 공통적으로 있었”(송소연)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은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목숨 걸고 아무 일 없도록 막아낸 시민들 앞에서 그의 거짓말은 말갛게 속을 드러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김도헌(34·2월14일 인터뷰)은 국민의힘 당사 앞 오피스텔에 살았다. 종로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던 그는 계엄 속보를 보고 급히 귀가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국회로 날아가는 헬리콥터를 올려다보며 계엄을 실감”했다. 집에 가방만 던져두고 자정께 국회 정문으로 뛰어갔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고 국회 앞 상황을 전했”다. 국회 주변을 돌면서 침투하는 군인들이 없는지도 확인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해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가능한 언어를 모두 동원해 사태를 설명했다.

계엄은 자기 검열을 불렀다. 대중음악평론가인 그는 포고령 제1호(밤 11시 발표)를 접한 뒤 “삶의 위기”를 직감했다. “과거에 쓴 글들 가운데 정치적 성향을 띤 것들이 있었나” 머릿속을 점검했다. “언론사가 통제되면 내 연재는 어떻게 될지”를 걱정했고, “보도지침 내려오면 운영 중인 유튜브를 닫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는 움츠리고 숨는 것보다 “많은 사람과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안전을 위해서도 낫다”고 판단했다. 집이 국회 앞이어서 “원초적인 불안”이 있었지만 “국회 앞에 살아서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면” 자신에게도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진실의힘 제공

“계엄군이 총을 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진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고요. 총에 맞거나 폭력으로 다치는 사람들이 생기면 우리 집에 데리고 오자 생각했어요. 부상자나 탈진하는 사람이 보이면 모시고 오자. 체포 작전이 벌어지면 숨겨주자. 그 과정에서 제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나흘 뒤 국회 표결에서 탄핵안이 부결됐을 땐 아예 소셜미디어에 집을 공개했다. “여의도로 집회 오시면 저희 집에서 쉬시라”는 글을 올렸고 “배터리든 뭐든 지원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공간 확보를 위해 “집의 구조도 바꿨”다. “집 앞 도로에 캠핑 의자를 내놓고 담요와 카펫을 깔아” 집회 참가자들이 앉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집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둔지 역할을 하자.”

진실의힘은 최소 300명의 인터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시민들을 찾는 것과 별도로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탄핵 집회 발언들도 수집 중이다. 기록들이 쌓이면 책으로 묶고 ‘민주주의의 달라진 발화 방식’에 대한 언어 분석도 계획하고 있다. ‘그날 한명 한명의 발자국들’을 찾아 기록하는 인터뷰들이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 집합명사로만 호명되지 않도록 “그들 각자에게 고유한 얼굴을 찾아주는” 작업이 되길 재단은 기대했다.

총기로 무장한 계엄군들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 국회 본청 뒷문을 봉쇄하고 있다. 비상계엄 직후 국회로 달려간 시민 이준형씨가 기록했다. 이준형 제공

무장 군인들 앞에서 두렵고 무서웠던 시민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아기를 안고 온 젊은 엄마, 학원 끝나자마자 뛰어왔을 10대들,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3대가 같이 나온 가족 등 ‘동료들’과 같이 있다는 사실에 편안”(유현주)해졌다. 계엄 해제 뒤 유현미는 “두세시간 자고 큰언니와 다시 여의도로 갔”다. “완강하게 닫혀 있던 국회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쨍쨍한 겨울 햇볕을 받으며 국회 안뜰을 걸었”다. 불과 몇시간 전 내란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생경하고 낯설었”다. 함께 지켜낸 일상이 “찬란하고 따뜻했”다. “가슴이 떨렸”다.

“역사적인 순간을 내가 살고 있구나. 우리가 함께 그 순간을 만들었구나.”

이준형은 ‘그 순간’의 증언자가 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그날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려도 불이익이 없겠다”고 판단했다. “목격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기록이 쌓일수록 민주주의도 두꺼워졌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록을 남겨 보존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진실의힘의 믿음이기도 했다.

※진실의힘 인터뷰 신청: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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