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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후 확 바뀐 정치지형

트럼프, 민주당 전통 지지층 흡수
100여년 만에 최대 표차 승리해
미국 ‘프레지던트 데이’였던 지난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노 킹스 데이’ 시위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연방정부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시위였지만, 거꾸로 뒤집힌 성조기는 트럼프 이후 정치 지형이 뒤바뀐 미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AP연합뉴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당시 현직이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했다. 수십년간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강세 주)였던 조지아와 애리조나에서 승리를 가져온 덕분이었다. 하지만 바이든도 바꿀 수 없었던 현상이 하나 있었다. 미국 제조업 전진기지로 노동계층이 몰려 사는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는 대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구에서 트럼프에게 패한 것이다. 오랫동안 민주당의 최대 지기 기반이었던 노동계층이 부유층과 기업가 편인 공화당에 표를 몰아준 결과다.

노동계층의 민주당 이탈 현상은 2016년 대선에서부터 감지됐다. 러스트벨트의 이상기류로 인해 전 대통령 부인에 국무장관까지 지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뉴욕 부동산 재벌이란 이력 외에 정치 경력이 전무했던 트럼프에게 완패한 것이다. 미국 정치의 근본적인 지형 변화는 201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노동자 손 놓은 민주당의 오판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어떻게 민주당은 미국 노동계층의 지지를 잃어버렸나’라는 분석기사를 통해 “1994~2002년 8년간 집권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 민주당의 오판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노동조합의 파업과 인건비 상승으로 기업들이 고통받자 로널드 레이건식 친기업 정책을 더욱 강화한 것이 오판이라는 지적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연방정부 예산의 사회간접자본(SOC) 및 사회복지 시스템 투자를 외면한 채 중국의 부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던 미국 제조업의 숨통을 아예 끊어버렸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러스트벨트는 하루아침에 미국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로 전락했다.

당시 클린턴이 이끈 민주당은 노동계층의 지지보다 중도 성향 백인 중산층과 지식인, 자유분방한 기업가집단 등의 지지에 더 의지했다. 이들의 지지를 견인한 것은 값싼 생필품과 불법 이민자 포용 정책이었다. 임금 수준이 높은 자국 노동자 대신 값싼 노동력의 중남미 이민자들이 3D산업 현장을 채웠고,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면서 미국의 2차 산업 생태계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당시 8년간의 미국 경제 고공행진은 ‘진짜배기’ 미국 산업이 성장한 게 아니라 제조업은 죽고 서비스산업과 금융업이 주도한 성장이었다. ‘제조업=중국, 서비스산업=미국’이란 등식에 더한 세계 경제의 분업화 체계가 고착된 시기였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정치를 넘어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부터였다. NYT는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장관의 분석을 인용해 “미국 노동계층이 점점 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동안 민주당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30년간 그들의 손을 잡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노동계층

민주당으로부터 외면받은 노동계층이 새롭게 찾은 안식처가 바로 트럼프의 공화당이다. 트럼프는 1970년대 이후 미국 대선 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문 닫은 미국 공장을 다시 열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정치인이었다. NYT는 “트럼프와 트럼피즘에 동화된 공화당의 성공은 모든 정책에서 민주당과 정반대 길을 가기만 하면 됐다”고 평했다.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 대신 미국 우선의 경제 시스템, 중국산 수입 대신 제조업 부활로 미국 상품시장 회복, 불법 이민 포용 대신 초강경 반이민 정책을 추진하는 식이다.

20세기 내내 서로를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여겼던 기업가와 노동계층은 트럼프라는 우산 아래서 이상하리만큼 서로의 이익이 일치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제조업 세계 1위로 부상하자 미국 기득권층은 세계 경제의 글로벌리즘에 심한 회의를 느끼면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열광했다. 사라졌던 공장의 일자리가 다시 생겨나 부자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된 노동계층 역시 트럼피즘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들이 트럼프를 향해 “정교하게 구축된 미국 사회와 경제, 더 나아가 국제 경제와 정치 역학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단아”라고 손가락질할 때도 미국의 풀뿌리 노동계층은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

중도층도 민주당 노선에 염증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나타난 미국 전체 표심은 “아무리 나쁘게 본다 해도 박빙”이라던 민주당 정치 엘리트들의 예측과는 완전히 달랐다.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패했고, 바이든이 이겼던 조지아는 물론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까지 전부 트럼프에게 내줬다. 100여년 만에 공화당 후보에게 가장 큰 표 차이로 패배한 민주당 후보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해리스가 완패한 최대 원인은 온건중도 성향의 중산층 표심이 공화당으로 확 쏠린 데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성소수자 인권 증진 등 진보 담론에만 집착해온 민주당의 노선에 중도층이 혐오감을 느끼게 됐다는 게 미국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윤리보다 소수자 인권 옹호를 앞세우고 미국보다 세계의 질서에 더 몰두하는 민주당보다는 트럼프식 자국 이기주의가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NYT는 “양당이 팽팽하게 세력 균형을 유지하던 미국 정치의 추가 지금은 공화당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졌다”며 “2016년 이후 전국 단위 각종 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노동계층으로부터 다시 지지받을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하지 않는 한 향후 선거에서도 현 추세가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예측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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