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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재 KAIST 기술가치창출원장 인터뷰
기술사업화 이끌며 LED 마스크로 창업도
“논문보다 세상을 바꾸는 게 공학의 이유
창업 선순환 위한 생태계 만들어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으로 만든 기술이나 제품을 서비스로 만들어 시장에 판매하는 것을 기술사업화라고 한다. 한국의 기술사업화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조선비즈는 기술사업화 확산을 위해 성공적으로 기술이전이나 창업을 한 사례를 소개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R&D 금맥을 캐라’ 시리즈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이건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석좌교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2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연구자를 매달 1명씩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이 교수는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피부 밀착형 LED 마스크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마이크로 LED는 머리카락 두께 수준인 ㎛(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크기이다. 이 교수는 마이크로 LED와 접착면 전체에 고루 빛을 내는 면발광 기술을 접목해 피부에 달라붙는 미용 마스크를 개발했다. 이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휘어지는 유연 소자의 상용화에 성공한 첫 번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교원창업 기업인 프로닉스를 창업했다.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투자를 받아 기술력을 입증했다. 프로닉스는 아모레퍼시픽의 미용기기 전문 자회사인 퍼시픽테크와 마이크로 LED 마스크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 교수는 마이크로 LED 마스크가 기존 제품보다 피부 탄력을 340%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0월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이건재(오른쪽) KAIST 신소재공학과 석좌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의 R&D에는 한계가 있고, 대학이야말로 혁신적인 기술과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주체"라며 교원창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조선비즈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상아탑의 교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창업과 기술사업화에 나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작년 3월부터 KAIST의 기술사업화 기구인 기술가치창출원 원장도 맡고 있다. 2016년 창업한 프로닉스가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 교수는 보직을 내려놓는 대로 두 번째 창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안정적인 교수 자리를 두고 연쇄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뭘까.

–처음부터 창업에 관심이 있었나.

“미국 어배너-섐페인 일리노이대(UIUC)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지도교수가 10개 정도 기업을 창업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의 스타트업에 취업을 했다. 도시바에서 낸드 플래시를 발명한 도호쿠대의 마스오카 후지오 교수가 창업한 회사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학자가 돼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교수들의 창업을 유심히 지켜봤다. KAIST에 부임하고 연구를 통해 어떻게 세상에 공헌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기술사업화의 길을 찾았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논문은 공학적인 성과를 홍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 창업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마이크로 LED 기술 개발을 시작한 건 15년 전이다. 연구실을 4개 분야로 나눴고 그중 하나가 마이크로 LED 기술이었다. 창업은 교수 입장에서 리스크(위험)가 크다. 대학 연구의 리스크라고 하면 연구비 삭감일 수 있지만, 창업을 하는 순간 리스크가 비교할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상용화 기술이고, 이런 기술을 사업화하는 게 공과대학 또는 KAIST 같은 대학이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창업할 때 학교에서는 어떤 도움을 받았나.

“학교의 지원 시스템이 굉장히 좋다. 특히 이광형 총장이 부임하고 교원 창업의 걸림돌을 많이 없앴다. 예컨대 교수가 창업을 하면 월급을 삭감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업만 한다면 월급을 깎지 않고 보전해 준다. 교수가 학생을 가르친다면 창업을 통한 기술사업화도 연구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셈이다. 교원창업과 관련한 정부 규정이나 제도가 애매한 부분이 많은데, 총장이나 보직 교수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해결해준 덕을 많이 받았다. KAIST도 과거에는 논문이나 연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이제는 창업을 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교수가 창업을 안 하면 ‘아직 기술에 자신이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KAIST는 최근 4년 간 교원창업으로 47개사를 배출했다. 학생 창업까지 합치면 연평균 115건의 창업이 KAIST 캠퍼스에서 이뤄지고 있다. KAIST는 교원창업 승인절차를 간소화하고, 다양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KAIST 기술가치창출원이 작년 5월 2일부터 이틀간 대전 롯데시티호텔대전에서 개최한 DCM 행사 사진. KAIST는 소속 교수들과 주요 벤처캐피탈 대표들을 정기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KAIST

–작년부터 KAIST 기술가치창출원장을 맡고 있다. 기술사업화의 콘트롤타워를 맡아 어디에 가장 신경을 썼나.

“예전에 미국 스탠퍼드대의 학과장 한 명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학과 교수들이 1년에 한 번씩 벤처캐피탈(VC)을 만나는 걸 의무화했다고 하더라. 나도 교수들이 투자사나 외부 기업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대학 교수진과 VC 대표들을 만나는 모임을 만들었다. 여의도 자본시장에 있는 돈이 KAIST 딥테크에 투자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자본이 부족하면 망한다. 교수들끼리 학술 정보만 교류하지 말고 밖에서 민간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를 늘리고 있다.”

–한국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한국은 인수합병(M&A) 시장이 작고, 기업의 기술이전도 활발하지 않다 보니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창업의 성공 사례가 아직 미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많지 않고, 리워드(보상) 없이 리스크만 크다 보니 기술사업화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술이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세금 문제다. 기술이전이 근로소득으로 잡히다 보니 세금이 많이 부과된다. 책임이 많이 따르는 기술이전을 할 유인책이 부족하다.”

–R&D 정책에서 개선할 부분은 없나.

“정부 R&D 과제에서 실적을 위해 특허 내는 걸 줄여야 한다. 그렇게 만든 특허는 연구비를 낭비하는 것이다. 연구 제안서에 썼으니 특허를 내지, 창업을 통해 활용한다든지 기술이전에 쓰이는 특허는 많지 않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산학협력단과 논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특허를 우리보다 적게 내고 대신 실용화 비율이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는 특허를 많이 출원하지만 실용화 비율은 낮다. 일종의 실적용 겉치레라고 보는데, 평가 시스템을 고쳐야 이런 낭비를 없앨 수 있다.”

–창업과 기술사업화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199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SCI(논문인용색인)급 논문을 내는 대학은 극소수였다. 이제는 여러 대학에서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온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KAIST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 전 참석한 다보스 포럼에서 ‘경제의 근간이 대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업의 R&D에는 한계가 있고, 대학이야말로 혁신적인 기술과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주체라는 이야기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R&D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좋겠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면 노벨상이나 좋은 논문들도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후가 바뀌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연구나 논문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는 기술의 기반이 되면 좋겠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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