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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의 서재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 들어가 봅니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가 경기 수원시 영통구의 자택 서재에 앉아 턱을 괴고 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3년 동안 책 1,000권을 읽고 난 후 다시 일어섰다. 정다빈 기자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최고의 리더십 훈련입니다."

육아휴직을 하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육아휴직을 경력 단절로 보는 사회적 편견을 깨부수는 이 CEO는 "육아는 정서적 인지 감수성은 물론 배려심과 포용력, 세상에 대한 메타인지를 기르게 된다"고 역설하며 육아휴직을 '육아근무'로 바꿔 불렀다. CEO의 '육아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합계출산율 0.75명' 시대. 직원이 200여 명인 이 회사의 사내 출생률은 2.7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회사 매출은 지난 10년간 20배 이상 성장했다.

육아휴직을 리더십 훈련으로 보는 이주호(53)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 얘기다. 14일 경기 수원의 자택에서 만난 이 대표는 "출산과 육아가 회사에서 존재할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공동체의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하기보다 성장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와 직원이 서로를 지키며 함께 성장한다는 그만의 경영 철학, 이른바 '프로텍터십'의 요지다.

공장으로 쫓겨나 3년간 1,000권 읽었다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의 자택에는 생활용품 수납을 위해 짜 넣은 거실 붙박이장도 책으로 가득차 있다. 이 대표가 붙박이장에서 꺼낸 책 한 권을 읽고 있다. 정다빈 기자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초고속 승진을 하던 30대의 그는 "나 잘난 맛에 사는 에고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나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빛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엑스트라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니까요." 나이 마흔 무렵, 시련이 닥쳤다.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은행과 잘못된 환 계약으로 입은 회사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장으로 좌천됐다. 흰 와이셔츠를 입고 일하다 갑자기 장비 조립 일이 맡겨진 것. 시련은 계속됐다. 그는 다시 계열사 공장 발령을 받고 결국 쫓겨났다.

"회사에서 가장 못난 존재가 되어 보니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계속 승승장구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왜 그것밖에 못하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겠죠."

공장 생활 3년은 "그 강했던 에고가 다 깨지고 부서지면서 깨진 틈 사이로 어떤 빛이 들어왔"던 시기가 됐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시간을 통과했다. 좌식 책상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공장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면서 매일 성경책 읽듯 본 책 중 하나가 영국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다.

"인류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라는 내용인데요. 강의 범람 등 자연과 환경 변화의 역경에 맞서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문명이 발생했더라는 거예요. 당시 굉장히 많은 위로와 용기를 받았어요. 지금의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나한테 이런 시기가 온 거구나, 그런 생각으로 버텼죠."

"모두가 존재를 유지하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는 "회사와 직원이 서로를 돌보며 일해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예진 기자


3년간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어림잡아 하루에 한 권을 독파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읽었던 책을 '인생 책'으로 꼽는다. 인문학을 경영학에 접목시켰던 변화경영 사상가인 구본형의 대표작 '익숙한 것과의 결별'도 그중 하나다. 이 대표는 저자를 두고 "최초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스승 같은 분"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읽는 전작주의 독서를 하면서 그는 "구본형 선생에게 영향을 준 세계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을 만났고 칼 융, 프리드리히 니체, 바뤼흐 스피노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읽었다"고 했다.

캠벨의 '신화와 인생'을 읽고는 "그래, 나는 여기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고 마음먹었다. 고난 끝에 깨달음을 얻고 귀환해 세상을 구하는 책 속 영웅서사에 매료됐다. 그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당시 읽기 가장 어려웠던 책이라고 했다. 책에서 딱 하나 건진 게 있다면 '코나투스'라는 개념이다. 단순한 노력을 넘어 존재를 유지하고 실존을 이어가려는 근원적 욕망을 일컫는다.

"내 욕망에만 충실해 살다가 이 책에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욕망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 있겠어, 무슨 욕망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모두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잖아요."

여전히 독서를 취미로 꼽는 그는 "책에서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전율이 느껴진다"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카타르시스, 지적 희열이 주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프로텍터십, 회사와 직원은 서로의 버팀목"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주호 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 자택의 서재. 강예진 기자


이 대표는 회사 창립자인 안건영 명예회장의 이직 제안을 받고 2014년 최고운영책임자로 합류했다. 이전 회사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직 후 그가 처음으로 한 업무는 회사 임원들의 연봉을 동결하고 그 돈으로 전 직원의 의자를 새 것으로 바꾼 일이었다. 그가 일으킨 변화에 직원들은 호응했다.

책에서 배운 내용들이 리더십의 바탕이 됐다. 이 대표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다 각자의 분투를 하고 있다"며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회사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때 "리더의 역할은 이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십 관 역시 확고하다. "리더는 '어떻게 하면 내가 돋보일까, 더 위로 올라갈까'가 아니라 반대로 '이 사람들을 도와서, 이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게 할까, 더 빛나게 할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리더의 진정한 목표는 과업의 성공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성장"이고, 이를 위해 "수단과 정보, 지식을 제공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프로텍터십·이주호 지음·세이코리아 발행·256쪽·2만 원


그의 경영철학은 '프로텍터십'으로 결실을 맺었다. 보호자나 후원자의 신분을 뜻하는 기존 영어 단어 '프로텍터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회사가 직원을 지키고 그들의 성장을 도울 때, 직원도 회사를 지키고 회사의 성장을 돕는다는 선순환의 개념. '서로가 서로를 지키며 성장하는 관계'다. "직원은 '비용'이 아니라 '자산'이다. 회사의 성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회사가 구성원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고 그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저는 참기름을 짜듯 사람들을 쥐어짜지 않아도, 서로를 지켜주고 존중하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회사는 '일요일 오후 3시에도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는 회사'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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