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인터뷰
“윤 정부 출범 뒤 극우 주류화 심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통도 커져”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마련된 ‘위안부’ 피해자 추모관에서 최근 별세한 길원옥 할머니 추모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고인을 떠나보내는 길까지 그렇게 무도하게 굴었네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지난 19일 열린 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사흘 전 별세한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를 겸했다. 길 할머니의 뜻을 기리는 자리 옆에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인사가 “길원옥은 돈 벌러 자진해서 (위안소로) 갔다”는 등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는 구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이들은 전국 ‘평화의 소녀상’에 ‘철거’ 단어를 쓴 마스크나 검정비닐을 씌우며 모욕하는 ‘소녀상 철거 챌린지’도 2년여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배상은 요원한 상황에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다. 반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3·1절을 앞두고 24일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무실에서 만난 이나영 이사장(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지난 5년 동안 수요시위에서 마주한 역사부정세력은 지금 (서울서부지법 폭동 등으로) 목도하는 극우 부상의 징후였다”며 “더는 이 문제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다.

2020년 5월 임기 시작 때부터 역사부정세력을 목격한 이 이사장은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이들이 ‘위안부와 노무동원 노동자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동상반대모임) 등으로 조직된 게 2019년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해 7월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을 비롯한 뉴라이트 이론가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반일 종족주의’를 출간한다. 이 책 공저자인 이아무개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동상반대모임을 주도했으며 2023년 ‘위안부사기청산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시위 현장에서 일장기·욱일기를 흔들고 욕설을 내뱉는 ‘아스팔트 극우’, 국내 학자·연구단체, 극우언론뿐 아니라 일본 정부와 일본 우익 단체 및 연구자 등을 통해 글로벌 역사부정세력 네트워크를 봐야 해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이용수 할머니가 2024년 5월22일 서울 중구 주한 독일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 기자회견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선 극우세력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외치고 있다. 김가윤 기자

이 이사장은 202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 교수 논문 사건이 “갑자기 튀어나온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일본발 극우 네트워크가 미국까지 확대된 결과”인 것처럼 국내 역사부정세력의 부상도 장기간에 걸친 조직화의 결과물로 본다. 그는 “국내 극우의 ‘역사전쟁’은 2004년 뉴라이트가 공식화했을 때부터 20년 이상 이어져왔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등판한 뉴라이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건국절’ 기념 추진(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15일을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3·1운동으로 건립된 1919년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한다고 비판받음), 역사교과서 수정 등을 시도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주도한 이승만학당 창립이 2016년, 유튜브 채널 ‘이승만티브이(TV)’ 개설이 2017년이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인사 다수는 12·3 내란을 옹호하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공식적인 창녀촌” 등 망언을 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대표적이다. 엄마부대, 신자유연대, 국민계몽운동본부 등도 있다. 2022년 수요시위에 참여한 정의연 활동가들에게 “북한의 기쁨조가 되고 싶은 아가씨” 발언 등을 해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윤아무개씨(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는 서부지법 폭동 현장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선동한 혐의로 구속됐다. 4년 전부터 위안부사기청산연대 집회 등을 생중계하며 피해자들을 공격해온 유튜버 최아무개씨도 서부지법에 침입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 이사장은 “특정 기억을 없애버리려는 극우 역사부정세력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내란범과 같다”고 했다.

더불어 “윤 정부 출범 뒤 극우 세력의 주류화가 심각해졌다”고 설명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박이택 독립기념관 이사,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등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한 인사들이 대거 등용됐다. 대일 외교도 문제적이었다. 이 이사장은 “윤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국내 기업 등이 출연한 재단 기금으로 변상해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밀어붙이는 등 자국 피해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일본 정부 편을 들며 극우 역사부정론에 편승해왔다”고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도 커졌다. 이 이사장은 “시민들이 수요시위에 참여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등을 거치며 (극우 세력) 공격이 갈수록 거세졌다”고 했다.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은 피해자들을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가 아님에도 거짓 증언을 하고 보조금을 부정 수령했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고발하는 괴롭힘(모두 각하)에까지 나아갔다.

전국 ‘평화의 소녀상’에 ‘철거’ 단어를 쓴 마스크나 검정비닐을 씌우며 모욕하는 ‘소녀상 철거 챌린지’를 인증한 사진 일부. 에스엔에스(SNS) 갈무리

이 이사장은 이런 공격의 확산에 맞서 “이제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할 때”라고 했다. 평균 나이 95.7살인 고령의 피해생존자나 그 가족이 모욕·명예훼손 등에 일일이 법적 대응을 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사자명예훼손죄는 친족만 고소할 수 있는데 많은 피해자가 유가족이 없어 고소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의연은 2021년 법률정책자문위원회를 거쳐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위안부’피해자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위안부’피해자법상 피해 정의를 정비하고 피해를 부정하는 허위사실 유포자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22대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돼 있는데, 일부는 홀로코스트 부정을 법으로 금지·처벌한 국외 법률을 참조해 소녀상 훼손 금지·처벌 조항을 담았다. 이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독재를 겪어서 표현의 자유에 민감하다”며 그러나 이런 법 개정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시민 5만여 명이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해 관련 청원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역사부정세력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기억의 힘’이 강함을 드러낸다. 정의연이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에 매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사장 취임 뒤 아키비스트(기록관리사)를 여러 명 고용했다. 2023년 ‘전쟁과 여성인권 아카이브’ 누리집을 만들고 디지털화가 완료된 자료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역사를 기억하자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왔을 때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재발 방지’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실천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트는 역사부정론에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역사, 정치, 외교, 젠더, 인종 등의 문제가 다 얽혀있는 데다가 80여 년 축적된 이야기가 있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역사부정세력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기억의 힘’이 강함을 드러낸다. 정의연이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에 매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사장 취임 뒤 아키비스트(기록관리사)를 여러 명 고용했다. 2023년 ‘전쟁과 여성인권 아카이브’ 누리집을 만들고 디지털화가 완료된 자료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역사를 기억하자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왔을 때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재발 방지’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실천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비트는 역사부정론에 대응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역사, 정치, 외교, 젠더, 인종 등의 문제가 다 얽혀있는 데다가 80여년 축적된 이야기가 있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김효실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군 성노예제 역사부정론 현황과 반박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정의연 누리집 정리 자료(womenandwar.net/againstrevisionist) △정의연 유튜브 채널 ‘역사부정론 반박 플레이리스트’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회계 부정 논란 그 뒤…시민 후원금만으로 운영

일본군 성노예제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커질 무렵인 2020년 5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실 회계 논란이 불거진다. 검찰은 그해 9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전 대표이자 정의연 전 이사장 윤미향 당시 의원을 7가지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2024년 3가지 법률 위반 혐의 유죄 확정) 기부금·보조금을 빼돌려 윤 의원 가족을 지원했다거나 정대협·정의연이 같은 사업으로 보조금을 중복해 받았다는 등 논란이 컸던 의혹은 불기소 처분했다.

정의연은 2020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학자·법률가·회계사·시민사회 인사 등으로 ‘성찰과 비전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꾸려 개혁안을 마련한다.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회계 처리를 위해 위원회는 국가·지방 보조금을 받지 않고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정의연은 시민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정의연은 1990년 발족한 정대협과 201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화를 위해 시민들의 참여로 설립된 정의기억재단을 통합해 2018년 출범했다. 그러나 정대협이 정리되지 않아 운영상 혼선을 초래했다고 위원회는 진단했다. 대표 개인 역량에만 기대지 않도록 이사회 정비도 주문했다. 현재 정대협은 해산돼 청산 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사회는 각 이사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734 퇴사 후 치킨집은 옛말?… '3高'에 작년 음식점·주점 창업 감소세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33 中, 트럼프 10% 추가 관세 예고에 “필요한 모든 대응 조치 취할 것”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32 검찰, '계엄 가담' 김현태 707단장 등 군·경 9명 불구속 기소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31 북촌 한옥마을 ‘레드존’ 관광 시간 알고 있나요?···3월부터 위반 땐 과태료 10만원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30 [속보] 검찰, 김현태 등 군경 책임자 9명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기소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9 학내 성폭력 제기 후 전보된 교사 해임 철회 요구하다가···23명 연행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8 이재명 재판 늘어지지 않을 듯… 대법, 형사재판 갱신 간소화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7 비트코인, 8만달러선 붕괴… 작년 11월 이후 처음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6 한국 ‘완전한 민주주의→결함 있는 국가’…영국 이코노미스트 분석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5 ‘재판부 변경 따른 재판 지연 없도록’ 절차 간소화···이재명·윤석열 모두 영향 가능성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4 “김계리 계몽 전”…박근혜 탄핵집회 가고 통진당 해산 비판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3 할리우드 전설 진 해크먼 부부 사망 원인 미궁…일산화탄소 중독?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2 국민의힘 의원 76명, 헌법재판소 공정 평의 촉구 탄원서 제출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1 檢, ‘내란 혐의’ 1공수여단장·방첩사 수사단장·정보사 계획처장 등 9명 불구속기소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20 비트코인 ‘패닉’인데…여기는 왜 50만 달러 간다고 했을까 [지금뉴스]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19 자주포 다음은 로켓… 노르웨이 공략하는 한화에어로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18 여야, 내일 삼일절 탄핵 찬반 집회로 나뉘어 세 대결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17 “33억원 있어야 부자”…상속세 낮춰야 52%[갤럽]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16 [속보] 檢, ‘내란 혐의’ 1공수여단장·방첩사 수사단장·정보사 계획처장 등 9명 불구속기소 new 랭크뉴스 2025.02.28
48715 [2보] 검찰, '계엄 가담' 김현태 707단장 등 군·경 9명 불구속기소 new 랭크뉴스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