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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적 채용 비리 의혹을 담은 감사 보고서를 27일 오전 공개했다. 비슷한 시각, 헌법재판소는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 감찰이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실과 법의 영역이 충돌한 것이다. 일각에선 “법리적 적합성만 따지다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한 선관위가 더 성역화되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관위와 각 시·도 선관위가 지난 10년(2013~2023년)간 실시한 291회 경력 채용(경채) 전수조사에서 878건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 채용공고를 내지 않고 서류·면접 심사 위원을 내부 사람으로만 구성하거나 채용 청탁과 증거 은폐 시도도 적발됐다. 감사원은 자녀 채용에 관여한 김세환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전현직 선관위 직원 32명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했다.

선관위에 만연했던 ‘아빠 찬스’ 의혹은 2020년부터 경고음이 울렸다. 인사담당자들은 사내 메신저로 “경북도선관위 상임위원이 딸을 경채로 넣으려고 한다”(2020년 11월), “간부들이 자식들 데려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경채하면 진흙탕 튈 거다”(2021년 1월) 등의 대화를 나눴다. 채용 특혜와 관련한 투서도 이어졌지만 중앙선관위는 “문제가 없다”며 자체 감사를 종결했다. 그러자 직원들 사이에선 “선관위는 가족회사다” “친인척 채용이 전통이다”는 말까지 오갔다. 선관위 고위직·중간 간부들은 인사 담당자에게 거리낌 없이 연락해 채용을 청탁했고, 눈을 감아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특히 김세환 전 총장은 2019년 아들 A씨의 인천시 강화군선관위 채용과 교육·전보·관사 제공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A씨는 선관위 직원들 사이에서 ‘세자’로 불렸다.



“선관위는 가족회사”…막을 대책은 셀프감사뿐
헌법재판소는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소속하에 편제된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의 모습. 김현동 기자
송봉섭 전 차장은 2018년 딸의 임용을 위해 충북도선관위 담당자에게 채용 청탁 전화를 했다. 김 전 총장과 송 전 차장은 현재 부정 채용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선관위 채용 특혜 의혹은 2023년 5월 중앙일보 보도로 점화됐다. 이후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한 대대적인 직무감찰에 나섰고, 선관위는 그해 7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고유 직무에 대해 감사하는 건 선거 사무에 대한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차준홍 기자
이에 대해 헌재는 27일 “선거제도의 핵심은 독립성”이라고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수행 권한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선관위에 대해 “선거관리사무 및 그 주체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에 맡긴 것”이라며 “외부 기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선거사무는 물론 인사 등에 관한 각종 사무 등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권한이 부여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헌재는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며 선관위 자체 감사의 실효성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헌재의 선관위 권한 침해 결정으로 감사원이 이미 실시한 직무감사 자체가 취소되는 건 아니다. 다만 선관위로선 전현직 공무원 중징계 등 감사원의 후속조치 요구를 따를 필요가 없어졌다.

김영희 디자이너
감사원은 입장문을 내고 “감사원법의 입법 취지와 감사 관행, 선관위의 현실에 비춰 납득하기 어려우나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중앙선관위도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지 않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더욱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중앙선관위는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영원히 상실할 것”이라고 했고, 서지영 원내대변인은 “온갖 부정부패 의혹을 받아 온 선관위의 폐쇄성이 더욱 강화됐다”고 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법률적으론 흠결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무소불위의 선관위를 누가 감시해야 하느냐는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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