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는 이도훈 기관사가 경남 양산시 동면 호포역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기관사는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지하철을 타보라”고 말한다. 본인 제공

“철길 주변의 검은 비닐봉지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게 한때 불문율이었습니다. 기관사가 ‘급똥’을 참을 수 없을 때 검은 비닐을 쓰레기통에 씌워 해결하고 기차 밖으로 투척했거든요. 그럼 순찰하는 직원들이 그걸 치워주는 게 관례였어요.”

지난 11일 통화한 이도훈 기관사(34)는 업무 중 가장 곤란한 점으로 ‘용변 문제’를 꼽았다. “열차에 화장실이 없잖아요. 운행하는 2시간30분이 2박3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알람 강박증’도 직업병 중 하나예요. 늦잠을 자서 열차를 제때 출고시키지 못하는 악몽도 종종 꿉니다.”

잠깐 정차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조금 늦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는 “기관사들의 최우선 목표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차가 정시에 도착·출발하고, 스크린도어 앞에 출입문이 자로 잰 듯 정확히 맞춰지면 승객들은 지하철을 ‘자동 기계’라고 생각한다. ‘기관사’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은 문제가 생겨 안내방송이 나올 때”라는 것이다.

이 기관사는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했다. 응모작 8800편이 몰린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뚫었다.

그의 책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에는 8년 차 기관사인 그가 부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매일 3744개의 출입문을 여닫으며 겪고 들은 천태만상이 담겼다.

“‘쟈철(지하철) 에페’, 지하철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우산을 문 틈새에 꽂아넣는 분들을 보고 제가 생각해낸 종목이에요(웃음). 닫힌 문에 발길질하며 화를 내던 아저씨, 일행이 안 왔다며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버린 아주머니, 답답하다며 달리는 지하철의 문을 열어버린 청년, 코로나19 당시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역무원에 화를 내던 할아버지, 추위를 피해 열차로 들어온 노숙인도 계시고….”

이 난리통에도 지하철이 ‘자동 기계’처럼 운행되는 비결은 ‘볼트와 너트를 자처하는 투명인간들’ 덕분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시에 스크린도어 앞에 출입문을 맞추는 기관사, 승객의 토사물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청소요원, 운행 중 고장 상황에서 패닉에 빠진 기관사를 구해주는 검수 직원, 마스크 착용 권유에 주먹을 휘두르는 승객 앞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역무원, 이들을 조율하고 지휘하는 관제사…. 그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지하철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통해 보는 세상도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쓰러진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워주고 갈 길 가던 ‘쿨한’ 아저씨, 졸고 있는 승객이 휴대전화를 도난당할까 봐 역무원이 올 때까지 그 옆을 지키던 학생…. 누군가 주목하지 않아도 할 일은 하시는 분들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그가 기관사를 지망한 이유는 ‘워라밸이 좋아보여서’였다고 했다. 그런데 ‘용변의 자유’조차 못 누리는 삶을 사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기다리는 대부분의 것들은 더디 오거나 결국 오지 않잖아요. 지하철만은 돈이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모두에게 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누구나 원하는 곳에 데려다줘요.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지하철은 제법 공평하잖아요. 저 역시 그 일부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지하철을 타보라”라고 했다. “심각한 고장이라도 그 시작은 볼트 하나, 너트 하나 때문”이라며 “볼트와 너트에 불과하다 해도 세상에 필요치 않은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박용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