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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이 지난해 말 러시아·북한군의 시신이라며 공개한 사진.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캡처, 연합뉴스
러시아에 2차로 대규모 파병을 한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망한 자국 군인들의 시신 인계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민심 동요를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북한 해외 주재원이 시신을 급속 냉동해 분쇄하는 빙장(氷葬) 설비를 알아보는 동향도 감지됐다.

26일 해당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은 "그간 러시아군이 북한군 전사자 시신의 이송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북한 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1월 파병된 북한군 중 사망자가 3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의 시신 인계 거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로부터 받아낼 대가에만 집중한 나머지 파병으로 인한 내부적 동요, 사상자 처리 및 보상 방안 등은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특히 전사자 처리 문제는 아직 표면화하지 않았을 뿐 북한 내부적으로는 큰 동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포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생포되기 전 당국의 지시에 따라 자폭한 전우의 온전치 못한 시신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다. 신원 확인을 막기 위해 사망한 북한군의 얼굴 등을 훼손한다는 보도도 다수 있었다.

북한 당국은 사망한 북한군의 유족에게 전사증을 나눠주는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는데, 이런 끔찍한 상태의 시신을 인도할 경우 내부 동요나 민심 이반 가능성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하늘'이라고 적힌 쿠르스크 나무 아래에서 발견된 북한군 시신. 사진 우크라이나의 군사 전문 텔레그램 채널 '브라티 포 즈브로이'
이와 관련, 한 소식통은 "해외 주재 북한 상사원이 유럽 지역에서 시신을 급속 냉동시켜 분쇄하는 빙장 설비를 조사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조사의 목적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지에서 북한군의 시신을 처리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추진하는 종전 협상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북한군 문제 역시 종전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다양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액화질소를 이용해 시신을 가루화하는 빙장은 일부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는 장례법으로, 국내에서도 입법이 시도된 적 있다. 친환경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이 현지에서 전사자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빙장 시설을 알아보는 것이 맞다면, 이는 방법과 무관하게 반인권적 조치로 간주될 여지가 크다. 사실상 '대내외적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파병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전장에 투입됐는데, 사망한 뒤 가족 품으로 돌아갈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격리한 파병 장병 가족에게 TV와 식료품을 선물하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한다. 일종의 임시방편식 회유책을 쓰는 것으로, 그만큼 당국이 파병과 관련한 내부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군이 수습한 북한군 전사자 유류품. 앞서 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해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우위원장의 신년 메시지와 동일한 문서가 보인다. 사진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군(SFO)
또 다른 소식통은 "파병 급여가 러시아군이 고용한 용병들이 통상 받는 수준인 2000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로 책정됐다"며 "이런 탓에 개별 병사에게는 급여를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소액의 북한 돈을 쥐여 주는 방안을 당국이 짜내는 중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군 포로도 언론 인터뷰에서 "파병 급여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2차 파병까지 결정한 건 러시아로부터 더 큰 반대급부를 받아내려는 목적이지만, 종전 뒤 송환될 북한군의 존재 자체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북·러 모두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유령 군인' 신분으로 사선에 투입된 이들이 살아남아 다시 북한 내부로 유입될 경우 그 자체로 체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리더십 공고화와 선대와 차별화된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선택한 대규모 파병이 역설적으로 체제 불안과 혼란을 가져오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며 "앞으로 3·4·5차 추가로 파병을 보내더라도 김정은에게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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