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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사진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국방비 지출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압도적인 국방비를 써 왔던 미국이 “이제는 다른 곳에 돈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중이다.

포문을 먼저 열어젖힌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국방 지출을 미래에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서로 지출을 줄이자는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군방예산을 쓸 필요가 없다”며 “이 예산을 다른 분야에 쓰자”고 했다.

‘절반 감축’은 다소 과도하지만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국방비에 손을 대려는 움직임은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의 2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향후 5년간 매년 8%씩 국방예산 삭감 계획 마련을 지시했다. 다만 주한미군이 소속된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이번 예산 삭감 지시에서 빠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최근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2월 24일까지 삭감된 예산안을 만들어서 보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WP는 전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부에 대한 임무는 분명하다. 힘을 통한 평화를 달성하라는 것”이라며 “준비 시간은 끝났다. 우리는 전사 정신을 되살리고 우리 군을 재건하고 억지력 회복을 위해 긴급히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예산을 통해 필요한 전투력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국방비 지출을 중단하고 과도한 관료주의를 거부하고 감사 진행을 포함한 실행 가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경 봉쇄 및 불법 이민 차단을 위한 남부 국경 작전 예산, 주한미군이 소속된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예산 삭감 대상에서 제외됐다. 핵무기 및 미사일방어 현대화 예산과 일방향 공격용 드론 예산, 기타 탄약 예산도 예외 처리하기로 했다.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우주 관련 예산은 오히려 강화돼야 할 대상으로 꼽혔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담당해 온 유럽 사령부와 가자 등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중부 사령부, 아프리카 사령부는 삭감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약 8950억 달러(2024 회계연도 기준, 약 1300조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조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연방정부 전체 예산(6조7500억 달러·약 9715조원)의 13%가량을 차지한다. 이 중에서 8%는 결코 적지 않다. 716억 달러(약 104조원) 수준이다.

WP는 헤그세스 장관의 이런 지시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의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국방비와 사회복지비용을 제외하고 연방정부 예산 지출을 효율화한다면 사실상 큰 변화를 만들기는 힘들다.

나아가 이런 변화는 세계 안보에서 미국의 위상 축소를 예고하고 있다. 케네디재단이 운영하는 매체 에미서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미국이 가입한 모든 다자간 기구와 조약에서 탈퇴를 검토하는 등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들어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의 죽음’이라고 평가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해 20분에 걸쳐 유럽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러한 “내부로부터의 위협”이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의 위협보다 더 크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칭한 것도 과거의 질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 감축은 필연적으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일대에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수반하게 된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포린폴리시는 “중국은 트럼프의 정책이 해롭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며 “미국의 글로벌 후퇴는 중국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대만을 둘러싸고 ‘큰 거래’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이컵 그리기얼 전 국무부 선임고문 인터뷰 “미국은 환상 좇았다, 이제 사회복지에 힘써야”
제이컵 그리기얼 미국 카톨릭대 교수(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 선임고문).


“유럽 등 미국의 동맹국은 이제 국방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 사회복지 지출을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실 선임고문으로 일했던 제이컵 그리기얼 미국 가톨릭대 교수는 2월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은 지금까지 세계를 위해 대규모 안보비용을 지출하느라 자국민의 사회복지에는 충분한 여력이 없었다”며 “이제는 거꾸로 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지정학 전문가인 그리기얼 교수는 전 세계가 그동안 3가지 ‘환상’을 좇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무역을 강화하고 부를 창출하면 세계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환상, 어떤 국가든 다국적기구 등의 회원이 되면 책임 있게 규칙과 절차를 따를 것이라는 환상, 나쁜 지도자를 제거하면 우방국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 있다고 그는 짚는다. 첫 번째는 유럽과 중국에, 두 번째는 중국에 특히 적용된다.

그리기얼 교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북미 회원국은 미국과 캐나다 둘뿐이고 나머지는 유럽대륙인데 (러시아) 방어의 최전선을 담당해야 할 유럽은 1990년대 이후 손을 놓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 방위비 분담에 대한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19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해왔던 것처럼 사회복지 지출을 국방비로 전환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문제에 대해 “(미국의 승인이 문제가 아니라) 유럽 내부의 반대가 커서 실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순간 관련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창설을 계기로 ‘유럽 군대’를 운영하자는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각국의 (돈 낼) 의지가 부족하다”며 “완전한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이고 현재 유럽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반성 없는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꿈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하나를 지킬 비용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데 유럽 전체를 지킬 군대에 대한 비용 부담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관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서 국방비 지출을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하겠다고 말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와 관련해 그리기얼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줄이면 나도 줄이겠다는 ‘상호성의 원칙’에 의거한 이야기”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군비를 확대하면 미국도 오히려 늘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국방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이런 불확실성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수십 년 동안 예상했어야만 했던 것”이라며 “해야만 했던 일(국방비 지출 증가)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0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킨 미국 등의 결정이 궁극적으로 “나쁜 생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온 (미국 주도의) 시스템에 관련된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비용과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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