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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소·극·장] #24 경기 가평군
마을공동체 만들어 주민끼리 축제
상인 중심 마을에 눌러 앉는 외지인
'귀촌귀농학교' '한 달살이'로 정착 유도

편집자주

지역 소멸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토요일 상영합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 묵안1·2리 주민들이 함께 진행하는 '전통혼례' 이벤트에서 한 부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초롱이둥지마을 제공


행정안전부는 2021년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기초지방자치단체 89곳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했다. 경기도에서는 가평군과 연천군이 여기에 포함됐다. 두 지역 모두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사망 노인 증가 등 인구 소멸 지자체의 특징(?)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그런 가평군에 인구 유입 바람이 불고 있다. 사망 노인 증가로 인구가 감소한 읍면이 있는 반면 축제와 관광, 귀촌 등으로 가평에 터를 잡는 이들이 늘어난 곳도 다수다. 물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영향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최근 10년 동안 인구가 증가한 곳들을 들여다보니 그 중심에는 끈끈한 공동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민 화합이 인구 증가로... 초롱이둥지마을

지난해 9월 경기 가평군 초롱이둥지마을 주민들이 체육대회를 하고 있다. 초롱이둥지마을 제공


지난 15일 도심권인 가평군 가평읍에서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40분 정도 달리자 설악면 묵안1리와 2리에 도착했다. 가평군에서도 인구 증가로 주목받는 마을이다. 2013년 132가구, 253명에 불과했던 마을 주민은 2023년 말 기준 266가구에 412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날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인구 증가의 이유로 너 나 할 것 없이 '초롱이둥지마을' 공동체를 꼽았다. 주민들이 공동체로 하나가 돼 축제와 체육대회, 먹거리와 놀거리 등을 향유하는 행복한 마을로 입소문이 나며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화합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40억 원이 투입된 '초롱이 도농복합센터'가 묵안2리에 조성되면서 묵안1리와 2리는 등을 돌리기도 했다. 두 마을 사이에는 '먹바위'가 있어 예부터 단절된 마을 이미지가 있었는데, 센터가 두 마을을 완전히 단절시킨 상징이 됐다. 두 마을에서는 웃음과 생기도 사라졌다.

지난 15일 초롱이둥지마을 김영희 사무국장이 도농복합센터에 게시된 마을행사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역설적으로 갈등의 골을 판 초롱이 도농복합센터가 '만남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2015년 이사 온 김영희(53) 초롱이둥지마을 사무국장이 두 마을 주민들을 하나둘 끌고 나와 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마을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게 단초가 됐다.

영화를 상영하고 부녀회, 어르신, 남성 모임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각각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즐겼다. 2018년 고작 2, 3명이 참석했던 단출한 모임이 2022년에는 1리와 2리 주민 대부분이 참여하는 마을 행사로 발전했다.

주민들은 18년째 이어온 '두릅산나물 축제'를 필두로 모두가 신랑신부, 어우동, 노비, 선비 등이 돼 그에 맞는 옷을 입고 진행하는 '전통혼례', 직접 빚은 술을 내놓는 '막걸리 축제' 등 끊임없이 축제를 열어 즐기고 있다. 축제가 사람을 불렀고, 그렇게 찾은 이들이 주민 화합을 보고 주민이 된 셈이다.

김 국장이 안내한 도농복합센터 벽에는 '20~30년 전과 후 같은 장소에서 찍은 내 모습'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아빠의 모습을 따라 한 아들, 결혼식을 다시 올린 부부 등의 사진은 주민들이 화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 없이 설명했다.

김 국장은 "현재 마을 노인회장 삼형제가 10년 전 축제를 보고 감동해 마을에 이사 온 사람들"이라며 "주민 화합과 축제로 생동감 넘치는 마을을 경험한 프리랜서 작가 등도 마을에 눌러 앉았다"고 했다. 윤태균 묵안1리 이장은 "처음에는 외지인들이 오면 거부감이 많았지만 그분들이 오히려 마을의 활력소가 됐다"며 "주민 화합이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며 생기가 돌아 너무 좋다"고 했다.

경기 가평군 가구수 및 인구 변화. 그래픽=이지원 기자


상인 중심으로 인구 늘어... 어비계곡마을

가평군 설악면 어비계곡마을 상인과 주민들이 '놀기 놓은 날' 행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어비계곡마을 제공


가평에는 원주민보다 이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도 있다. 설악면 가일2리다. 이 마을 120가구 중 이주민은 89%를 차지한다. "1970년대 이주민 1세대 할머니가 정착한 곳에 어머니에 이어 나까지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는 어비계곡마을 공동체 정진희(55) 기획이사도 그중 한 명이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 집을 찾았던 정 이사는 2016년 이주민 3세대가 됐다.

그가 터를 잡은 후 실감한 것은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마을이었다. 어린 시절 방학 때 봤던 시끌벅적한 장터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던 거리도 모두 그림 속 풍경처럼 정지 상태. "유명산이 있는 마을이 유명하지 않은 마을이 됐다"는 푸념이 절로 나왔다.

서울에서 홍보마케팅 업무를 했던 정 이사에게 정체된 마을은 용납할 수 없는 일. 우선 시골이라고 해서 모두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마을에 농사를 짓는 가구는 120가구 중 1가구에 불과한 것을 확인하고 2022년 군청이 공모한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상인회를 결성해 상인들을 중심으로 조경을 바꾸고 꽃과 나무를 심었다. 어비계곡의 빙벽도 신의 한 수가 됐다. 수려한 풍광을 보기 위해 지난 3개월 동안 마을을 다녀간 외국인만 6만 명이다. 공영 주차장에서 올린 수익은 1,000만 원을 웃돌았다.

어비계곡에 마을 주민들이 만든 빙벽은 관광객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어비계곡마을 제공


정 이사는 "여러 곳을 찾아다녀보니 지역에 해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 콘셉트로 마을 주민과 상인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꾸렸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가장 시골다운 시골' 만들기에 동참했고, 상인들은 공구를 빌려주고 경관을 바꾸는 등 주민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2022년 30개였던 점포는 지난해 말 42개로 늘었다. 점주 중 3명은 가평군으로 아예 전입을 했다. 지난해 가평군민이 된 박성일(58)씨는 "캠핑장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어비계곡마을을 찾았는데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호의적이어서 정착을 결심했다"며 "많은 지역을 다녀봤지만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귀농귀촌' 아닌 '귀촌귀농'의 사회적협동조합 공감21

가평군 청평면 귀촌귀농학교에서 자연농법으로 텃밭가꾸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공감21 제공


청평면의 사회적협동조합 공감21도 가평 인구 유입에 한몫을 하고 있다. 공감은 21은 가평군의 요청으로 '귀농귀촌센터'도 운영하는데, 농촌 생활을 꿈꾸는 이들을 지원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바로 '귀촌귀농학교'다.

채성수(65) 대표는 "일반적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마을이나 농촌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고 살려는 분들이 귀농을 선택한다"며 "하지만 그런 분들은 농촌을 제대로 몰라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설픈 지식과 유튜브 등의 잘못된 정보, 그에 따른 막연한 기대감으로 '현재의 농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채 대표는 '귀농귀촌'이 아닌 '귀촌귀농'을 강조한다. 농사가 우선이 아니라 농촌, 농촌 마을, 농촌 주민을 이해하는 방법,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 등을 먼저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결과가 증명한다. 조합이 운영하는 귀촌귀농학교를 지난 8년간 1,400명이 이수했는데 그중 160명이 가평에 머물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가평을 포함해 이수생 360명이 귀촌귀농에 성공했다.

귀촌귀농학교를 거쳐 지난해 4월 가평군민이 된 김종선(56)씨는 "30년 넘게 군생활을 한 뒤 전역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마침 귀촌귀농학교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며 "가평이 아내 고향이기도 해서 작은 목공소를 운영하면서 밭도 일군다"고 했다. 그러면서 "팍팍한 도시보다 공기 좋은 이곳에 오니 마음의 여유가 넘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공감21의 한 달살이 프로그램 중 하나인 공유양조장 술지움 체험. 공감21 제공


공감21은 2020년부터 귀촌귀농을 체험할 수 있는 '한 달살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농촌에 거주하면서 주민들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원하는 작물을 직접 재배하면서 농촌을 알아가는 체험 위주로 구성됐다. 막연히 한두 번 둘러보고 귀촌귀농을 선택하지 말고 장시간 지내면서 농민들의 진짜 삶을 느껴보라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5년 동안 한 달살이를 한 사람은 125명이고, 그중 20명이 가평군으로 이주했다. 채 대표는 "농업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농촌을 알고 농업을 알아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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