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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나는 고령 장애인입니다 <5> | 세 자매의 ‘노노(老老) 케어’

90대 노모를 돌보는 세 자매. 오른쪽부터 큰 딸 조정희 씨, 어머니 한순덕 씨, 둘째 딸 조정님 씨, 셋째 딸 정희 씨. / 조정숙 제공

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다. 취재팀이 주목한 것은 ‘53.9%’라는 숫자였다.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중 65세 이상이 절반(53.9%)이 넘는다. 이는 고령화와 장애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고령 장애인의 삶은 우리 사회 의료와 복지 패러다임의 과감한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일 수 있다. 취재팀은 고령 장애인과 돌봄 가족, 의료진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작은 스피커를 달아보려 했다. [편집자 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작은 골목길 4층 상가 주택의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출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방 하나, 부엌 겸 거실 하나, 욕실 하나인 15평 남짓한 공간. 세 자매가 순번을 정해 90대 노모(老母)를 돌보는 별실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이었지만,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방 가운데 침대에는 1928년생, 세 자매의 어머니 한순덕 씨가 누워 있었다. 한 씨는 오랫동안 천식과 고혈압, 골다공증, 심장질환,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왔다.

기자의 인기척에도 한 씨는 큰 반응이 없었다. 한 씨가 자기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와상(臥牀) 상태가 된 지 수 년이 됐다고 한다. 다만, 96세의 나이에도 피부는 놀랍도록 고왔고, 머리칼은 단정하게 손질돼 있었다.

세 자매는 “큰 언니 집에서 막내 집으로, 4층에서 1층으로, 거처를 옮기며 엄마를 돌보다 보니 20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고 했다. 첫째 조정희 씨는 73세, 둘째 조정님 씨는 69세, 셋째 조정숙 씨는 63세다. 어느새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 가정이 된 것이다.

만 80세 이상 피부양자를 둔 60세 이상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고령층의 경제 활동 참여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그래픽 = 한유진

기자가 “동네에서 소문난 효녀라고 한다”고 했더니 막내 정숙 씨가 손사래를 쳤다.

그는 “큰 언니가 믿을 만한 요양원을 찾아서 엄마를 곧 그쪽으로 모실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저희끼리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라며 말끝을 흐렸다.

3개월씩 돌아가며 간병...지게까지 산 막내 사위

어머니 한 씨는 젊은 시절 이불 장사를 하는 큰딸 조정희 씨네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한 씨는 바느질 솜씨를 살려 이불에 수를 놓거나, 바쁜 큰딸을 대신해 사위와 손자들의 식사를 챙겼다.

그런데 오랜 지병인 천식이 심해진 후 한 씨는 막내딸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큰딸은 장사로, 둘째 딸은 뒤늦은 공부로 바빴는데, 그래도 막내딸이 여유가 있었다.

“2011년, 상가 주택 4층에 들어서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엄마를 부축해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지요. 나중엔 중간중간 쉬었다 가실 수 있게 계단마다 작은 나무 의자를 두었어요.”

정숙 씨는 “‘엄마와 딸’, ‘장모와 사위’, ‘할머니와 손자’라는 엄마와의 특별한 시간이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정희, 정님, 정숙 세 자매는 순번을 정해 어머니를 돌봤다. 정희 씨가 3개월, 정님 씨가 다음 3개월, 정숙 씨가 그 다음 3개월을 챙기는 식이었다. 대학 병원을 오가는 일은 막내 정숙 씨가 맡았다.

90대 돌보는 세 자매 이야기,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보기

세 자매가 ‘엄마’를 돌보는 데 애쓰는 이유가 있었다. 한 씨는 남편 없이 홀로 딸들을 키웠다. 참전 군인이었던 남편이 제대 직후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씨는 딸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 딸들을 가르쳤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세 딸을 반듯이 키워낸 엄마였다.

정숙 씨는 “엄마라도 다 같은 엄마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세 자매는 ‘남편한테 못 받은 사랑을 우리가 대신 해드리자’라는 마음으로 똘똘 뭉쳤다.

돌봄은 곧 ‘전쟁’같은 일상으로 치달았다. 2012년 한 씨는 밤중에 화장실로 가다 고꾸라졌다. 다음 날 해 뜨자마자 찾은 병원에서 가족들은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들었다.

“알츠하이머병 소견입니다.”

당시, 한 씨의 나이는 83세였다.

각종 만성질환에 치매까지 발병하자 한 씨의 거동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4층에서 ‘엄마의 외출’은 정말 큰 일이었다.

막내 사위는 한 씨를 안아 계단을 오르내렸고 나중엔 지게까지 동원해 한 씨를 업기도 했다. 계단 턱이 높아 오르내릴 때마다 가족들은 늘 불안했다.

“엄마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며 막내 사위를 좋아했거든요. ‘내 큰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막내 사위는 장모가 원하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모시고 나갔다. 얼굴을 찌푸리는 법도 없었다.

“2016년 10월 강릉 정동진에도 갔어요. 엄마를 업어 레일 바이크도 타게 해드렸지요. 그런데,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는 그때는 몰랐어요. 바로 두 달 뒤 엄마가 골절상을 입었거든요.”

한순덕 씨가 두 딸 내외와 함께 떠난 마지막 여행. 여행지는 강원도 강릉 정동진이었다. / 조정숙 제공

황토 바닥과 편백나무 벽으로 꾸민 방

한 씨의 골절상 이후 정숙 씨의 소원은 ‘엄마와의 자유로운 나들이’가 되었다. 4층 꼭대기 집은 거동이 불편해진 한 씨와 돌봄 가족에게 ‘감옥’과도 같았다.

2018년, 정숙 씨 부부는 1층 가게 자리를 반으로 줄여서 낸 15평 공간을 ‘어머니의 방’으로 만들었다. 화장실을 뜯어내고 보일러 공사를 새로 했다. 황토 바닥과 편백나무 벽으로 공간을 꾸몄다.

언제나 깨끗하게 단장하길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방 안에 세면대를 설치했다. 수도꼭지엔 길게 뽑아 쓸 수 있는 호스(hose, 관)를 달았다.

몸을 편히 들거나 내릴 수 있는 의료용 침대를 들였고 바로 옆에는 보조 침대도 놓았다. 침대보와 이불은 순면으로 깨끗하게 빨아 빳빳하게 새 것처럼 준비하고 내부 온도는 25~26도(°C)를 유지했다.

막내 사위는 원목으로 ‘한순덕 님’이라는 문패를 만들어 현관문에 달았다.

“이 작은 공간을 엄마는 ‘내 집’이라며 행복했어요. 문패를 보고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하셨고요.”

정숙 씨의 회상이다.

90대 돌보는 세 자매 이야기,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보기

장애로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의 집에는 화장실과 계단 등에 손잡이나 난간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한순덕 씨의 거주 공간에도 안방에서 욕실로 가는 벽면에 긴 손잡이가 설치돼 있어 이동을 돕는다./ 김홍구 객원 기자

한 씨의 체중은 40kg도 채 안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한 씨를 부축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정숙 씨는 “엄마를 일으키고 눕히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배변을 위해 변기에 앉히다가 엄마를 떨어뜨릴 뻔한 일도 있었어요. 엄마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엄마의 머리를 어깨로 받쳐 들고 몸을 살살 돌려야 간신히 엄마의 자세를 바꿀 수 있었거든요.”

낮에는 방안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화면을 들여다 보느라, 밤에는 보조 침대에서 엄마를 지키느라 세 자매는 늘 가슴을 졸였다. 세 자매도 나이가 들다보니 하나둘씩 아픈 곳이 생겼다. 정숙 씨는 오랜 간병으로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다.

“밤을 새우며 엄마를 지키는 동안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시는 표정을 지으시면, 그게 참 기뻤습니다. 전쟁통에도 행복이 있더라고요.”

한 씨는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저수지에서 오리 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휠체어를 타고 동네 산책할 때 손에 쥔 꽃을 놓지 않았다. 딸이 손수 준비한 팥죽과 묵, 삭힌 홍어를 먹을 때는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결정의 순간이 왔다

치매는 무서운 병이었다. 한 씨는 꽃을 봐도 무심해졌고, 오리나 철쭉을 보고도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열 아들 안 부럽던’ 막내 사위를 대하는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막내 사위를 도둑인 양 경계하고 소리를 쳤다. 한 씨는 거동이나 배변도 전혀 하지 못했고 잦은 섬망(의식 장애)으로 힘들어 했다.

세 자매에게도 가정 요양을 포기해야 할 ‘결정의 순간’이 왔다. 결국 한 씨는 2024년 11월 19일, 서울시 광진구의 한 소규모 요양원에 들어갔다. 함께 살아온 가족 모두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한순덕 씨는 2024년 12월 30일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24년 11월 15일 가정 요양 중인 한순덕 씨 모습. / 김홍구 객원 기자

기자는 12월 초 다시 정숙 씨를 찾았다. 이제 ‘어머니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도, 손잡이도, 보조 변기도, 성인 기저귀도, CCTV 카메라도, 켜켜이 쌓아둔 이불도 깨끗이 정리해 둔 상태였다.

정숙 씨는 결국 엄마를 요양원에 모셨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간병 생활을 하며 엄마와 보냈던 행복한 하루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엄마의 손을 비벼주며 ‘이쁘다, 이쁘다’ 말해주던 순간들이 매일 떠오르네요. 엄마가 요양원에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하니, 가슴이 미어지고요.”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부음(訃音)이 전해졌다. 2024년 12월 30일 한 씨는 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한 씨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한 달 하고도 보름만이었다.

세 자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그들에게도 닥쳐올 미래를 걱정했다.

“언젠가 나와 남편, 그리고 미래의 사돈들도 나이가 들 텐데, 자식들이 우리를 돌보느라 고생하지 않을까 벌써 걱정이 돼요.”

그들 스스로 가슴 사무치도록 겪어보았기에 미래에 자신과 자식들에게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듯 했다.

정숙 씨는 일찌감치 아들, 딸에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두라고 신신당부해 두었다.

“우리 세 자매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회 지능형 분석 서비스 ‘아르고스’에 따르면, 각종 미디어에서 2024년 3분기 초고령 사회와 노인 돌봄 관련 언급량이 2019년 3분기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 아르고스는 뉴스, 엑스,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다. / 그래픽 = 한유진

정숙 씨는 “부모님을 남에게 맡기는 요양 시설도 좋지만, 자녀들이 직접 부모님을 모시며 간병하는 가족 중심의 요양 시설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그랬다면, 집에서 엄마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로봇 공학자들이 고령 장애인들을 쉽게 들고 내릴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주길 간절히 바란다”라고도 했다.

기자는 단정하게 누워 있던 한 씨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가지런히 정돈된 머리카락, 고요한 얼굴 뒤에서 가족들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정숙 씨의 다음 말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남의 일이 아니에요. 이 동네에만 아파서 누워 있는 노인이 스무 명이 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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