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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추락 등 중증 외상 환자 전담
10년 전 한 곳서 전국 17곳 권역센터으로 확대
수술 가능한 닥터카로 의료진이 환자 이송
환자 상태 제각각이라 여러 과 의료진 총동원

지난 17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가천대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이 환자 이송 요청을 받고 닥터카로 출동하고 있다./이호준 기자


“60대 남성 교통사고로 인한 골반 골절 환자입니다. BP(혈압) 40에 출혈 심해 어레스트(심정지) 있었습니다. 부천 병원에서 처치가 어렵다고 이송 요청해 왔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30분 인천 남동구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구급대원의 전화를 받은 최윤희 수간호사가 현성열 센터장(응급의학과 교수)에게 환자 상태를 알렸다. 현 센터장은 바로 “재익(외상외과 전임의)이랑 박 간호사가 혈액 2개 싣고 닥터카로 출동해”라고 말하며 수술복을 입었다.

수술실 간호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심폐소생술(CPR) 기기, 혈관 조영 장비, 수술 기구 등을 준비했다. 대기하던 유병철 외상외과 교수도 수술 채비에 나섰다. 지난달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가 방영한 ‘중증외상센터’가 수시로 보여주던 장면 그대로다.

지난 17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가천대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의 의료진들이 환자 이송 요청을 받고 닥터카에 실을 혈액과 헬멧을 챙기고 있다./이호준 기자

1시간 내 생사 결정되는 환자 전담
권역외상센터는 담당 지역에서 교통사고, 추락, 둔기손상, 자상 등으로 다발성 골절, 과다 출혈 등이 발생한 중증외상 환자가 바로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365일 24시간 상시 운영되는 기관이다. 전국에 지정, 운영된 권역외상센터는 가천대 길병원(인천) 아주대병원(경기 남부), 단국대병원(충남) 등 17곳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일반 응급실과 제도, 운영 등 차이가 있다. 일반 응급의료센터(응급실)는 구급차가 응급 환자를 이송하거나, 환자가 직접 방문한다. 경증부터 중증·중등증까지 환자 상태도 다양하다. 이 중 심각한 중증 외상 환자로 분류되는 환자는 5% 수준에 그친다. 응급실에 온 환자들은 기본적인 검진부터 받는다. 환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권역외상센터는 중증 외상 환자를 전담한다.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구급대원과 타 병원 등으로부터 이미 환자 정보를 전달받고, 각 환자에 필요한 처치·수술 채비를 한다. 환자가 도착하면 즉각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환자가 생사를 좌우하는 1시간의 골든아워 안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한다.

이날 의료진은 닥터카를 타고 부천으로 출동해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닥터카는 외관은 일반 구급차와 비슷한데 구급대원 대신 외과 전문의와 간호사가 타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의료 차량이다.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플라스틱 관을 넣는 기관 삽관과 혈액 수혈 외에 실제 수술까지 이뤄져 ‘달리는 응급실’이라고도 불린다. 사고 접수 5분 만에 출동하고 30분 내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일반 구급차보다 더 과속할 수밖에 없다. 탑승자 모두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

지난 17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가천대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의료진들이 도착한 외상환자에 대한 응급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다양한 사고 환자 잇달아 수술대 올라
닥터카는 환자를 데리고 이곳 외상센터에 오후 12시 도착했다. 환자는 이송 중에 또 심정지가 왔다. 의료진은 환자의 생명줄을 붙잡고 처치를 이어갔다. 출혈량이 많아 수혈 팩을 여러 개 달았고,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수술대로 옮겨졌다.

현 센터장과 유 교수, 장 전임의와 간호사 7명 등 의료진 10명이 총출동해, 심폐소생술과 출혈을 막는 응급 수술을 30여 분간 지속했다.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날 환자는 수술 도중 사망했다. 현 센터장은 “일반적으로 골반 골절은 과다 출혈로 어려운 케이스인데, 어레스트(심정지)가 계속돼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환자 가족에게 향했다.

수술대를 정리도 하기도 전인 오후 1시, 다시 외상센터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번엔 용접 작업 중 1.7m 높이 사다리에서 추락한 60대 남성 환자였다. 현 센터장은 즉시 신경외과 교수를 센터로 불러 함께 대기했다.

30분 뒤 도착한 환자는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컴퓨터단층촬영(CT) 촬영 결과, 경추 2번 외상과 뇌진탕을 진단받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현 센터장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마비 위험이 컸다”며 “당장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해당 과에서 정밀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오후 8시 30분. 한바탕 외상환자들이 수술을 받고 난 뒤 고요해진 센터 내에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뾰족한 도구로 자신의 가슴, 무릎, 허벅지 등 몸 수십 군데를 자해한 30대 환자를 외상센터로 이송하겠다는 연락이었다. 이날 당직 근무자인 현 센터장과 유 교수가 다시 수술복을 입었다. 잠시 후 도착한 환자는 몸 곳곳에 출혈이 있었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다. 본인 인적 사항을 말할 정도로 의식도 있었다. 유 교수는 “이 환자는 자해로 인한 출혈이 심하진 않지만, 정신질환 병력이 있어 해당 과의 후속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드라마와 달리 의사 혼자서 환자 볼 수 없어
원작 웹툰 작가가 의사여서 그런지 권역외상센터의 전쟁 같은 하루를 잘 묘사했다. 다만 몇 가지 판타지 요소는 있다. 주인공인 천재 외상외과 전문의인 백강현(주지훈 분)은 의료장비 하나없이 시각과 청각 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알아내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혼자 힘으로 여러 과의 일을 해내기도 한다.

현실은 달랐다. 한 명의 히어로(영웅)보다 팀워크가 핵심이었다. 가천대길병원, 단국대병원, 아주대병원 등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혼자서 외상환자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모두 한목소리로 “환자의 사고 경위를 듣고 환자의 외관을 보면 환자 상태가 대략 예상은 되지만, 정확한 처치를 하려면 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장비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드라마 속 중증외상센터는 백강현 교수와 항문외과 전임의(펠로), 외상외과 간호사, 마취과 레지던트 총 4명이 이끌어가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많은 의료진이 붙는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조교수는 “권역외상센터에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는 환자들이 온다”며 “이 때문에 모든 과가 다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의 경우, 흉부외과·정형외과·신경외과·응급의학과 등 외과 전담 전문의 21명과 협진 담당 코디네이터 5명, 외상외과 전담 진료 지원(PA) 간호사 16명, 외상외과 집중치료실 간호사 52명 등 100여명의 의료진이 원팀 체제로 움직인다. 환자 한 명에 보통 의사 3명, 간호사 7명이 붙는다.

실제 권역외상센터엔 전공의가 없는 것도 큰 차이다. 의정 갈등 사태와는 무관하게 전공의가 근무하지 않는 곳이다. 외상 전담 전문의는 의대부터 외과·흉부외과·정형외과·신경외과 전임의까지 10년 수련 기간에 2년을 더 수련받아야 한다.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단국대병원

일단 목숨만 살리고 치료는 각 과에서
중증 외상 환자의 치명률(사망률)은 54.7%로 절반을 넘는다. 이 때문에 외상센터는 환자의 생사를 좌우하는 골든타임(이국종 교수는 골든아워라고 칭함) 안에 목숨을 살리는 게 최우선 목표다. 현성열 센터장은 “우리 외상센터는 병을 고치기보다 일단 목숨부터 살리고 본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수술로 목숨을 건져도 다가 아니다. 현 센터장은 “당장 수술해서 살리더라도, 이후 각 과에서 제대로 치료받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협진 시스템이 중요하다. 현재 전국 권역외상센터는 외상 환자 발생 시 외상외과와 그 외 필요한 과의 협진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간호사를 두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 환자가 매일 센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실제 권역외상센터 현장은 드라마처럼 극적인 상황의 연속은 아니라고 한다. 권역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하루에 10명이 몰리는 날도 있고 아예 없는 날도 있다. 사고로 외상을 입었더라도 다행히 환자 상태가 심각하지 않아 곧바로 해당 과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현실 의료진이 더 편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외상 환자가 발생할지 몰라 의료진은 늘 대기한다. 그만큼 의료진의 긴장도와 압박도 심하다. 최윤희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수간호사는 “외상센터가 조용하다면 인근에 외상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참 다행인 일”이라면서도 “그래도 우리 외상센터 간호사들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언제 저 전화기가 울릴지 몰라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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