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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③ 중국 물고늘어지는 전광훈 무리
자유통일당 0석 현실 부정…전, 당원 탓하다가
‘북한·중국이 선거조작 세력’ 황당한 가설로 확장
전광훈 목사가 지난해 1월 서울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자유통일당 0석’이라는 변방의 사건에서 ‘민주당의 선거조작’ ‘중국의 선거 개입’이라는 중심 서사로 뻗어나갔다. 궤변을 짜맞추려 통계를 동원하고 허점을 숨기려 적을 지목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의 추종세력이 부정선거론을 내세운 방식이다.

이들의 궤변은 결과적으로 극우세력에 통했다. 이제 이름난 교수며 집권여당 의원들까지 부정선거를 합리적 문제제기인 양 거론한다. 한겨레21은 4·10 총선 이후 전광훈과 그의 추종세력이 광화문광장에서 쏟아낸 발언을 분석했다. 소수정당의 선거 참패가 어떻게 외부세력의 선관위 탈취 서사로 확장됐는지 살펴봤다.

열성 당원 사는 지역구에서 0표

전광훈 무리가 부정선거론을 꺼낸 계기는 보수 개신교 정당의 원내 진입 실패다. 전광훈이 이끄는 개신교 정당은 2016년 기독자유당(득표율 2.63%), 2020년 기독자유통일당(1.83%), 2024년 자유통일당(2.26%)의 이름으로 세 차례 총선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24년 총선의 경우 ‘자유통일당 득표율이 5%를 넘길 것’이라는 여론조사(리얼미터·4월1일자)에 한껏 고무됐지만 결과는 달랐다. 원내 진입 최소 요건(득표율 3%)을 못 채워 미끄러졌다.

분노한 전광훈은 처음엔 당원들을 비난했다. 우리 당원 350만 명이 또 그 병에 걸렸다. 우파끼리 싸우다가 국민의힘 망한다니까 거기 찍어서 우리 정당이 망한 거다. 이 돌대가리들아”(4월11일 뉴스앤조이 보도)라며 화를 냈다. 그러다 4월 말부턴 아예 부정선거론을 펼쳤다. 광화문 국민대회를 열어 “4·10 총선 부정선거는 사전선거 전산 프로그램 조작 때문에 촉발됐다”(4월29일 스카이데일리 보도)며 목청을 높였다. 당원 늘리기 등 민주주의 틀 안에서 승부를 못 보자 아예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자유통일당 0표’인 행정동을 특히 문제 삼았다. 예컨대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열성당원이 사는데 그곳 행정동에서 어떻게 0표가 나오느냐는 주장이다. “금정구 장전1동 제4투표소에서 자유통일당 표가 빵(0)이 나왔어요. (…) (당원들이) 당일 투표했다는데 어떻게 0표가 나옵니까.”(장학일 목사·2024년 6월1일 광화문 국민대회) 사랑제일교회 간부들은 당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자유통일당 투표 여부도 물었다고 한다. 비밀투표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다.

2024년 6월1일 전광훈 목사 주도로 열린 ‘광화문 국민대회’ 전광판 화면에 자유통일당 0표가 나온 행정동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제일교회 등은 당원을 찾아가 일일이 확인한 결과 10표를 확인했다고 주장한다. 전광훈TV 갈무리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 실패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거대 양당 구도로 인해 녹색당 등 많은 정당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선거제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전광훈은 달랐다. 부정선거를 전면에 내세우며 선거 결과를 부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 부정선거 수사를 명령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 우리는 윤 대통령을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8월15일 국민대회)며 엄포를 놨다.

육사 출신이 꾸민 부정선거론

물론 자유통일당의 선거 참패만으로 부정선거론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 큰 전선을 구축하려면 공통의 적이 필요하다. 전광훈 무리가 ‘민주당 선거조작’을 꺼내든 이유다.

육사 출신 장재언씨는 통계적 수사로 부정선거론을 그럴듯하게 꾸민 일등공신이다. 그는 매주 광화문 국민대회 단상에 올라 사전투표율과 본투표율 차이가 큰 지역구를 들며 ‘ 원래 두 지표는 차이가 많이 나면 안 된다. 이는 모두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 수원에 출마했던 이수정 교수 등도 피해자로 호명했다. 이수정 교수는 부정선거론을 공개 지지한 인사 중 하나다.

이는 ‘ 큰 수의 법칙’(대수의 법칙)을 잘못 적용한 전형적인 부정선거론이다. 큰 수의 법칙은 동전을 한두 번 던질 땐 앞면이 연달아 나올 수 있지만 무한히 반복하면 결국 50% 확률에 수렴한다는 법칙이다. 마찬가지로 큰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은’ 작은 표본집단도 같은 실험을 무한히 반복하면 큰 모집단의 확률과 비슷해진다.

선거는 동전 던지기가 아니다

문제는 사전투표 집단이 유권자 모집단의 무작위 추출 표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전선거를 갈지, 동네 밖에서 투표할지, 어떤 정당을 찍을지 등은 유권자가 매번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것이지 뽑기 기계처럼 임의로 추출하는 게 아니다. 특히 사전투표의 경우 부정선거론 여파로 ‘보수표는 당일에’ 던지는 경향이 강하다. 엄격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도출한 법칙을 각종 변수가 범람하는 현실 선거의 전제로 삼는 건 무리라는 뜻이다.

“사전투표를 하러 가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젊거나 투표 성향이 명확한 등 다른 특성이 있을 수 있어요. 그들이 매번 동전 던지기로 사전투표 여부를 정하는 게 아닌데 무작위 추출을 전제로 한 ‘토이 모델’(과학적 메커니즘을 간결하게 설명하려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모델)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의 말이다.

이는 2012년 김어준씨가 제기한 ‘케이(K)값 논란’의 유사품이다. 당시 김어준씨는 ‘미분류표와 분류표의 후보 간 득표율이 다르면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분류표는 고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통계적으로 무작위 추출한 표본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원호 교수는 이런 논쟁이 결국 ‘겸허함’의 부족이라고 본다. “사회과학 연구자의 겸허함이란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델과 현실은 다르고 훨씬 더 풍부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거든요. 선거는 무작위 추출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걸 무시하고 숫자만 보면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024년 12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수성향 단체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과 중국이 선관위 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이유

논리적 틈새를 메우는 화룡점정은 북한과 중국이다. 전광훈 무리가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선관위 전산에 접근해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사전투표 결과를 조작한다. 전국의 개표원은 조직적으로 민주당 표를 다른 표와 바꿔치기하고 자유통일당 표는 사표로 만든다. 강력한 외부세력이 아니고서야 선뜻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때아닌 북한과 중국이 선관위 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이유다.

“이것은 제가 고발한 선관위 다섯 명 컴퓨터 실력 갖고는 안 되는 레벨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100% 외부세력, 세계적인 조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희가 알고 검찰에 그렇게 (고발장) 내용을 다 썼습니다. (…) 우리 선거 관리 시스템에 북괴나 중국이 들어와서 우리 모든 시스템을 해킹하듯이 열어주고 같이 협조하든가 했으면 이거는 국가 공안 차원이지요.”(장재언, 2024년 6월1일 광화문 국민대회)

2024년6월1일 광화문 국민대회에서 ‘성호스님’으로 불리는 인물이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고 적힌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전광훈TV 갈무리

황당한 가설에 지지자들은 왜 열광할까.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음모론을 연구한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가 말했다. “(내용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도 그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겪는 부당함을 표현하겠다, 내 앞의 적과 싸움을 벌이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써도 된다는 사고방식이겠지요. 혹은 비밀스러운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이나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소속감을 추구할 수도 있고요. 그런 목적으로 음모론을 믿는다면 진실 여부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거예요.”

적을 지목해 전쟁을 벌이는 건 전광훈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2011년엔 종북좌파 척결 운동을, 2016년엔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반대 운동을, 2019년엔 문재인 전 대통령 하야 운동을, 2024년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적은 매번 달라지지만 쓰는 언어는 돌고 돈다. 냉전과 혐오, 양당 갈등의 이분법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전상진 교수는 전광훈 등 음모론 생산자들도 기회주의적 기업가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신념에 따라 알린다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실은 (음모론으로) 세를 결집해 돈과 정치권력을 잡”고자 한다는 것이다.

적을 찾은 전광훈 무리는 노골적으로 폭력을 사주했다.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를 미화하며 ‘ 5·16 (쿠데타) 정신을 따르자’ ‘혁명만이 답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국회의원을 감방에 넣자’거나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며 폭력 선동도 했다.

비주류의 궤변을 주류로 끌어들이다

변방의 선동꾼이 유통하던 논리는 집권여당을 만나 순식간에 주류 논리로 격상했다. 제도권 후광을 입고자 했던 음모론자와 표가 필요했던 국회의원이 만난 결과, 우스꽝스러운 ‘중국 선거 개입설’이 국회에서 진지하게 거론된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전광훈 무리를 비주류의 자리에 눌러놓던 “캡을 따버린” 국민의힘 책임이 매우 크다고 지적한다. “전광훈류의 주장은 원래 보수 안에서도 대중적 지지를 받진 못했어요. 반중 정서만 해도 중국을 경제 교류의 장으로 바라보는 국내 기업가들이 선호하지 않았고요. 그렇게 끝까지 비주류로 남을 수 있었던 이들을 국민의힘이 손잡고 중앙으로 끌어준 거죠. 집권여당이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보수 지지층을 만들지 못하자 낡은 ‘반공’ 세력이라도 붙잡고 표를 얻어보려 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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