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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헌법불합치 결정 후 대체 입법 등 후속 조치 사실상 방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주간경향] 매서운 겨울 추위만큼이나 헌법재판소(헌재)는 최근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결정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연일 탄핵 반대 시위가 헌재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난 2월 17일에는 무려 40여명의 여당(국민의힘) 의원이 헌재를 방문해 탄핵심판 중인 윤 대통령에게 방어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19일 서울시의회 시정 질문에서 “헌재에 굉장한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재판관이 재판을 진행한다”며 특정 재판관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헌재를 흔들려는 시도는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극우 군중이 헌법재판관의 개인적 성향까지 문제 삼고 있다. 문 권한대행의 SNS 행적을 뒤져 문제를 제기했고, 이런 가짜뉴스에 국민의힘에서 공식 반응을 내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 권한대행의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군중도 생겼다. 온라인에 특정 헌법연구관이 중국인이 아니냐는 가짜 소문까지 퍼졌다.

헌법불합치 17건 사후 조치 안 해

이들이 헌재를 흔들수록, 헌재의 위상은 오히려 더욱 올라가고 있다. 언제 헌재가 이렇게 화제의 중심에 섰을까 싶을 정도다. 몇 달 전만 해도 임기가 끝난 세 명의 재판관을 국회에서 즉각 추천하지 않았지만, 이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갑자기 태풍의 핵이 된 셈이다.

헌재는 탄핵심판 결정을 내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주요 법률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넘어와 결정해야 할 때만 위상이 올라갈 뿐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 헌재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국회나 행정부는 입법 공백에 대해 사실상 방치에 가까운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에서 최근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헌재에서 내린 위헌 법률 결정 18건에 대해 대체 입법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재판소가 판결대상 법률을 위헌이라 인정하면서도, 해당 법률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헌법불합치 17건에 대해서도 국회는 아무런 사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사이 개정시한이 지난 법률은 모두 7건에 이른다.

이중 낙태죄 처벌(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 조항은 지난 2020년 말 개정시한이 지나버렸다. 22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 결정이 난 야간 옥외집회 금지(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및 제23조 제1호) 헌법불합치는 이미 2010년 개정시한이 지났지만, 개정안이 겨우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면서도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규정하지 않은 녹색성장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개정안도 발의되지 않았다. 개정시한은 딱 1년이 남았다.

“헌재 결정이야 나든지 말든지”

헌재가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든 말든 국회나 행정부가 제대로 사후 대응을 하지 않는 것에는 물론 복잡한 이유가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의 경우 여성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개정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련 일부 종교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모두의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 제정과 모자보건법 전부 개정을 촉구했다. 또한 정부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보장 체계에 임신 중지 관련 항목 전면 적용 등의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 위헌 소송을 이끌었던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정부가 그동안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 종교계에서는 태아생명보호법 제정을 내세워 낙태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찬반의 틈바구니에서 여야는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국회 법사위에서 활동한 한 관계자 A씨는 “매번 선거에서 표심을 신경써야 하는 정치권은 예민한 이해관계 때문에 섣부른 입법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정치권이 서서히 사회적 충격을 완화시킬 궁리만 하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을 곧바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은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회에 입법을 강제할 권한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헌법재판소법에 헌법불합치에 대한 명시적 조항을 만들어 입법부에 개정 시한까지 입법 의무를 부여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이런 의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정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면 관련 단체나 사람들이 헌법 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장(변호사)은 “헌재는 작은 조직이고 강제집행 수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헌재의 결정을 국회나 정부가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헌정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입법부나 행정부가 곧바로 법 개정에 나서지 않는 것과 헌법재판관 정치 성향을 문제 삼거나, 판결에 대해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행위는 차원이 다르다. A씨는 “최근 일부 정치권이 헌법재판관을 비난하면서 국회도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지 않았느냐고 양비론을 꺼내고 있다”며 “대통령 탄핵 결정과 위헌·헌법불합치 판결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 결정을 문제 삼는다면 헌법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조유진 소장은 “외국에서는 헌법재판관의 판결을 뒤흔드는 행위를 하면 사법방해죄로 엄벌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정지웅 위원장은 “헌법재판관 개인의 히스토리를 뒤지고 신상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면서 “헌재는 헌법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실질적인 기관이자, 민주화운동 이후 1987년 헌법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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