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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힌 기관들 사실상 폐쇄 절차…사법부 ‘일시 중단’ 명령도 무시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 인근 노동부 청사 밖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정부효율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위 참석자들은 “머스크 대통령을 멈춰야 한다”, “아무도 억만장자를 선출하지 않았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간경향] 미국 연방정부에 ‘해고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공무원 인력 감축과 채용 제한을 명령했다. 근무 기간이 1년 미만인 수습사원부터 모조리 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지 며칠 만에 공무원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쓸모없는 조직’으로 찍힌 기관들은 간판을 내리고 사실상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야당의 협조도, 의회 입법 절차도 생략한 일방통행식 개혁이었다. 사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등을 지적하며 ‘일시 중단’을 명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는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정부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주무르며 권한을 늘려가고 있다. 의회와 사법부를 ‘패싱’한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은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세계 최고 부자의 ‘연방정부 대수술’, 명분도 절차도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연방정부 대수술’을 예고해왔다. 그는 연방 공무원을 “swamp”(고인 물 또는 적폐라는 의미)라고 부르며 ‘적폐 몰아내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세계 최고 부자인 머스크에 정부 구조조정을 맡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가 “기업가적 접근방식”을 정부기관들에 적용해 “대대적인 개혁”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업 운영 경험이 풍부한 머스크가 연방정부 운영도 더 효율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정부 개혁은 전격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 원조 부처인 국제개발처를 시작으로 교육부, 국방부, 소비자금융보호국 등에 잇따라 업무 중단을 지시했다.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e메일로 강제 휴직 처분을 받았다. 지난 2월 11일(현지시간)에는 연방정부 기관마다 인력을 줄이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아직 법적 지위가 불안정한 수습 직원들부터 해고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식 구조조정이 연방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매슈 카바나흐 조지타운대학 글로벌 보건정책연구소 소장은 CNN에 “미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명시한 제1·2조에서 정부기관 설립과 폐지를 결정하는 게 의회 권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부 기관을 폐지하는 건 명백히 위헌”이라고 말했다.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 공무원들을 충분한 사전 설명 없이 해고하거나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돌연 면직한 사례들 역시 헌법에 명시된 권력 분립 원칙을 묵살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의 명분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는 구조조정이 ‘미국인들이 선거를 통해 요구한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1월 AP통신이 NORC 공공업무연구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대량해고를 지지한다는 응답(29%)보다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40%)이 1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줄이기 위한 개혁이라는 설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도 계속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하는데도 관련 부처 공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거나, 핵무기를 감독하는 국가핵안전청(NNSA) 직원들을 충분한 검토 없이 해고했다가 뒤늦게 복직을 요구한 일 등이다. 겉으로는 개혁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눈엣가시였던 기관들에 ‘찍어내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선출직이 아닌 머스크가 정부 개혁을 주도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민주당 측은 최근 “아무도 머스크를 선출하지 않았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연방공무원과 시민단체들도 “머스크를 축출하라”, “미국에는 왕이 없다”고 외치며 연일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머스크가 기업 운영 경험은 많아도 정부기관을 다룰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점, 구성원과 역할조차 불분명한 DOGE가 각종 정부 기밀에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러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머스크가 정부 예산을 손보는 건 이해충돌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스페이스X, 뉴럴링크 등 머스크 소유 회사들이 구조조정 작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기관들의 고위직이 교체되거나 권한이 축소되면서 머스크의 기업들이 연방정부 조사나 규제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머스크의 방대한 사업 제국은 이미 혜택을 보고 있거나,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헌법마저 무시하는 대통령 처음”…헌정 위기 우려

이런 상황에서 미 사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독주에 일시적으로나마 견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연방정부는 대규모 퇴직 프로그램 시행, 연방정부 부처 폐쇄 등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인 개혁 작업에 줄줄이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법원 판결마저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조짐은 여러 번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 등에 정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의회 예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가로막히자 “정치 판사들”이라며 반발했다. J. D. 밴스 부통령은 “판사가 행정부의 합법적 권한을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머스크도 “부패한 판사가 부패를 옹호하고 있다. 당장 탄핵당해야 한다”며 사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에 재판부가 직접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공개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권력을 상호 견제해야 할 행정부와 사법부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헌법학자 등 전문가 사이에선 사법부와 헌법마저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가 헌정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패멀라 칼란 스탠퍼드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이 뭐라고 하건 대통령이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헌정 위기”라며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개별적으로 위헌적 행위를 한 적은 있었지만, 헌법이 사실상 무의미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윈 체메린스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도 “우리는 헌정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는 임기 동안 너무나 많은 위헌적·위법적 행위를 저질렀다.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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