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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우주국·벨기에 겐트대 연구진 개발
아기 기저귀 수분 흡수 성분 ‘SAP’ 주목
물 다량 빨아들이면 가루서 젤리로 변신
젤리 속 물이 우주 방사선 차폐에 특효
액체 물 그대로 쓰지 않아 누수 사고 방지
‘초흡수성 고분자(SAP)’가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부풀어오르는 모습. 유럽우주국(ESA) 제공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린 미래, 승객 5000여명을 태운 대형 우주선 아발론호는 ‘터전 2’라는 이름의 외계행성을 향해 비행 중이다. 승객들의 직업은 작가, 엔지니어, 정원사 등 다양하다. 낯선 곳에 정착해 새 인생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다.

승객은 모두 동면 중이다. 생체 활동을 억제해 노화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굳이 동면까지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터전 2까지 비행 기간이 무려 120년이기 때문이다. 동면 없이는 살아서 도착할 수 없다.

그런데 아발론호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기계 고장으로 승객 중 한 명인 짐(크리스 프랫 분)이 지구에서 출발한 지 30년 만에 수면 캡슐에서 돌연 깨어난 것이다. 남은 비행 기간은 90년이나 된다. 이대로라면 아발론호 안에서 홀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짐은 다시 동면하려고 애쓰지만, 망가진 수면 캡슐은 그를 재우지 못한다. 미국 영화 <패신저스> 도입부다.

짐이 이런 상황에 놓인 이유는 아발론호가 비행 중 소행성과 충돌하며 수면 캡슐 제어장치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적 상상력이다. 우주는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우주선이 소행성과 맞닥뜨릴 가능성은 매우 작다.

사실 우주 비행 중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우주 방사선’이다. 우주 방사선은 태양 등 별이 전방위적으로 내뿜는 일종의 ‘독성 빛’이다. 암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지구에 있다면 자기장과 대기가 막아주지만, 우주에 나가면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최근 미래의 우주선 승객과 승무원을 우주 방사선에서 지킬 방법이 고안됐다. 뜻밖에도 그런 기술은 아기 기저귀에 있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초흡수성 고분자(SAP)’가 부풀어 올라 있는 모습. 유럽우주국(ESA) 제공


‘SAP’ 활용해 방사선 차폐

최근 유럽우주국(ESA)과 벨기에 겐트대가 구성한 공동 연구진은 미래 인류를 위한 우주 방사선 차폐 기술을 개발했다고 공식 자료를 통해 밝혔다.

우주 방사선은 장거리 유인 우주 비행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일례로 화성을 왕복하려면 우주선 안에서 아무리 짧아도 1년을 보내야 한다. 201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에 따르면 우주선 승객과 승무원은 이 기간에 약 660mSv(밀리시버트)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지구의 땅에서 1년간 보통 사람이 받는 방사선량은 약 3mSv인데, 이보다 200배 이상 많은 수치다. DNA 손상이나 암 같은 질병 발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강한 추진력과 넓은 탑승 공간을 지닌 우주선이 개발돼도 인간을 화성에 태워 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연구진이 우주 방사선을 막기 위해 활용한 핵심 물질은 ‘초흡수성 고분자(SPA)’이다. SAP는 폴리아크릴산나트륨 등 화학 물질로 만든 백색 가루다. 이런 SAP를 잔뜩 함유한 일종의 ‘에어캡(뽁뽁이)’을 우주선 내 각 부위의 모양에 맞도록 3차원(3D) 프린터로 출력해 우주선 벽에 고루 부착한다.

그리고 지구를 떠나 이륙하면 선내 수조에서 끌어온 물을 SAP에 접촉시키면 된다. 물은 수소 원자를 포함하는데다 밀도가 높다. 우주 방사선을 차단하는 데 특효약이다.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인공위성 등 우주 비행체를 담은 상상도. 우주 방사선은 유인 우주비행을 막는 주요 걸림돌이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자체 중량 200배 흡수

SAP는 자체 중량 200배의 물을 빨아들인다. 물을 빨아들인 다음에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젤리처럼 변한다. 힘으로 꾹꾹 눌러도 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SAP는 일상 생활에서 이미 많이 사용된다. 기저귀가 대표적이다. 아기가 오줌을 싸면 기저귀가 도톰해지는 것이 바로 SAP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진은 왜 물을 우주선 외벽에 직접 주입하지 않고 굳이 SAP에 흡수시키는 번거로운 방법을 택했을까. 액체인 물은 우주선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기 때문이다. 비행 중 우주선 외벽 어느 부위에는 물이 잔뜩 몰리고, 다른 부위에서는 물이 모자라는 일이 반복적으로 생길 가능성이 크다. 이래서는 방사선에서 우주선 전체를 고르게 보호하기 어렵다. 물을 먹은 SAP는 몽글몽글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본래 모습을 꾸준히 유지하는 젤리 형태이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없다.

방수 공사가 완벽하지 않으면 우주선 벽 안에 가둔 물이 언제든 샐 수 있는 것도 SAP를 써야 할 이유다. 무중력에서 누수는 치명적이다. 물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다 우주선 내 전자장치에 닿아 선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 물 덩어리가 승무원이나 승객을 삼킬 수도 있다. 익사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SAP를 사용하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

ESA는 “우주선 밖에서 활동하는 인간이 입을 우주복에도 SAP를 적용할 수 있다”며 “우주 유영 시간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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