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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1시 성균관대 경영대학 지하 3층 소극장에서 '전세사기 예방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경영대학 신입생 190여명이 참석했다. 박종서 기자
지난 1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지하 3층 소극장은 신입생 190여명으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무대 위엔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고, 신입생들은 설렘과 긴장감이 섞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불이 꺼지고 무대 중앙에 위치한 화면에 ‘전세사기 예방 교육’이란 글씨가 띄워졌다.

이날 오리엔테이션에선 경영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전세사기 예방 교육이 진행됐다.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한 이 교육은 학생회 요청으로 이뤄졌다. 강연에선 ▶전세계약 단계별 유의사항 ▶주요 피해사례 ▶전세사기 피해지원 정책 등을 다뤘다.

국토부 관계자가 ‘전세계약 단계별 유의사항’을 설명하던 중 질문을 던졌다. “선순위 근저당(변제받을 권리가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하는 근저당)이 2억원이고 주택 시세가 6억원인 집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5억이면 임차인은 얼마나 돌려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한 남학생이 “4억원”이라고 답했다. 강연자는 “정답”이라고 외쳤다. 주택 시세인 6억에서 근저당액 2억원을 빼야한다는 취지다.

한편 아무도 답하지 못하는 ‘킬러 문항’도 있었다. 강연자가 “채권최고액이 뭔지 아냐”고 묻자 적막이 흘렀다. 한 학생이 조심스레 손을 들고 답변했지만 정답이 아니었다. 강연자는 “(채권최고액은) 생소한 단어지만 꼭 알아가면 좋겠다”며 “자취생은 보증금에서 채권최고액을 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권최고액은 근저당권 설정 시 채권자가 최대한도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을 뜻한다.

30분간의 교육이 끝난 뒤 무대에 오른 윤호준 성균관대 경영대학 학생회장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전세사기 예방 교육을 하는 게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다”면서도 “많은 자취생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대학과 정부에서 함께 전세사기 예방에 나선 건 대학생을 비롯한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전세사기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전체 전세사기의 74.3%가 20~30대 청년층을 상대로 벌어졌다. 지난해 한국외대와 경희대 등이 위치한 동대문구에선 110억 원대 전세사기가 발생했고, 지난해 서울대 등이 위치한 관악구에서도 30억 원대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지난 13일 서울시립대 미래관에서 진행된 ‘퀴즈 풀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학생 10여명이 줄 서 있는 모습. 국토부 관계자는 “정답률이 5%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청년층에서 다수 전세사기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중장년층보다 부동산 관련 지식과 계약 경험이 적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 13일 서울시립대에서 진행된 ‘퀴즈 풀기’ 행사에선 한 번에 정답을 맞히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답률이 5%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힌트가 있었기 때문이고 학생들이 생각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수 학생이 계약하는 매물의 형태도 청년층이 전세사기를 많이 겪는 이유다. 아파트는 신축이더라도 분양가가 정해져 있어 대략적인 전셋값이 정해져 있지만,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이 주로 찾는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의 경우 매매가가 형성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적정 전셋값이 아닌 매매가 수준에서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자취방을 구했다는 성균관대 신입생 이명욱(19)씨는 “월세 계약이 낯설어 해외에 사는 부모님이 입국해 도움을 줬다. 사기가 무서워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지만, 막상 부동산에 가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대학생 상대로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립대 미래관 대강의실. 신입생 75명 등이 전세사기 예방 교육에 참여했다. 박종서 기자
전문가는 지난 2023년 6월부터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대규모전세사기가 계속되고 있어 청년층을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한다. 3년째 전세사기 피해자를 상담하고 있는 장영권 법무사는 “대학에서 필수과목을 가르치듯 부동산 관련 교육을 짧게라도 가르치면 예방할 수 있다. (학생들이) 많이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전세사기가 많은 것”이라며 “학생들이 계약하기 전인 1월쯤 진행한다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자 상담을 넘어 스스로 예방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대학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대상 교육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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