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광장서 무사귀환 염원…'아들 포로' 어머니 "아들은 조국을 지키고 싶어했다"
우크라 패싱 논란 종전협상에 분노…"사랑하는 사람 잃은 가족들, 무기들게 될것"
우크라 패싱 논란 종전협상에 분노…"사랑하는 사람 잃은 가족들, 무기들게 될것"
가족을 기다리며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둔 시민들이 펼침막을 들고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둔 시민들이 펼침막을 들고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전쟁 발발 만 3년을 나흘 앞둔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는 많은 시민이 나와 사랑하는 가족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2월 20일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이다. 2014년 2월 친러시아 정부를 무너뜨린 유로마이단 혁명 당시 정부군과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했던 날이 바로 이날이다. 당시 유혈 사태로 시위대 107명이 사망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한 날이기도 하다.
추모의 날을 맞아 유로마이단혁명의 중심지였던 독립광장에 모인 이들은 사랑하는 아버지, 아들, 친척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원했다. 일부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국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두고 종전 협상을 벌이는 현실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
"아버지, 살아서 돌아오세요"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리우바 씨(오른쪽)가 이복동생들과 함께 양아버지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들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리우바 씨(오른쪽)가 이복동생들과 함께 양아버지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들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이날 독립광장에서 만난 리우바 씨는 제20 기계화 여단, 4689 군부대 소속이었던 양아버지 콘드라티우크 비탈리이 바실리이오비츠흐(47) 씨가 1년 전 실종된 이후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군에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군에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상의 점 하나만을 알려줬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리우바 씨는 눈물을 흘렸다.
비극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양아버지가 실종되기 4개월 전, 남동생이 전사했다. 남동생도 아버지와 같은 여단에 속해 있었다. 아들에 이어 남편까지 잃은 어머니는 충격에 정신을 놓았다고 리우바 씨는 울먹였다.
우크라이나 중부 빈니차 출신으로 빅토리아 등 이복 여동생들과 함께 독립광장을 찾은 그는 "제발 아버지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빈니차에서는 매주 주말마다 거리에 나간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 협상에 대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여기 보이는 모든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가족은 만약 트럼프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합의한다면, 누구라도 무기를 들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가 치른 대가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사 귀환 염원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테티아나 씨가 사촌(왼쪽 아래)과 그의 전우들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들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테티아나 씨가 사촌(왼쪽 아래)과 그의 전우들의 사진이 담긴 펼침막을 들고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테티아나 씨는 지난해 8월15일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에서 실종된 사촌과 그의 전우들을 대신해 독립광장에 섰다. 어릴 적 함께 자라 친형제보다 가까웠던 사촌은 작년 8월13일 마지막 통화에서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사촌은 상황이 매우 어렵다고 했어요. 음식과 물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저는 그에게 꼭 살아남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돌아올 이유가 있다며 살아남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촌은 13살 딸, 8살 아들을 위해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약속했지만, 두 자녀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테티아나 씨는 "나는 그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며 "그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테티아나 씨는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의 땅이 그들에게 무기 실험장이 됐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종전 협상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군인들이 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 생환 기다리는 모정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스비틀라나 씨(왼쪽)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펼침막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아들의 여자친구.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독립광장에서 스비틀라나 씨(왼쪽)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펼침막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아들의 여자친구. 2025.02.20 [email protected]
스비틀라나 씨는 하나뿐인 아들 바스 데니스 겐나디이오비츠흐(34)가 지난해 9월12일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고 했다. 아들의 안전이 걱정돼 하루가 멀다고 군을 찾아갔지만, 돌아온 것은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아들이 전쟁 직후인 2022년 4월 자원입대해 그동안 하르키우, 루한스크 지역에서 전투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얼마 전 포로로 잡힌 아들의 사진을 확인한 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러시아 측에서 아들을 테러리스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는 소식에 안도했던 마음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그는 "아들은 프로그래머다. 전쟁이 시작되자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자원입대했다. 아들은 조국을 지키고 싶어 했다"며 "아들의 가장 큰 꿈은 여자친구와 함께 세계 일주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아들은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루겠다고 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종전 협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 전쟁은 이미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며 "이제 정치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우리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추모의 벽'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성미카엘 대성당을 둘러싼 '추모의 벽'에 전사자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성미카엘 대성당을 둘러싼 '추모의 벽'에 전사자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여져 있다. 2025.02.20 [email protected]
지금, 이 시각에도 전쟁의 최전선에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키이우의 성미카엘 대성당을 둘러싼 '추모의 벽'에는 전사자의 사진이 숨 막힐 정도로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2022년 초 담장 한쪽 구석에 몇 장씩 붙으며 늘어나던 전사자의 사진은 지금은 100여m에 이르는 담장 전체가 모두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의 사진으로 도배돼 더 이상 사진을 붙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국군 4만5천100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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