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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산업공단의 한 공장에 임대를 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현주 기자

울산 매곡산업단지에서 금형 전문업체인 한국몰드를 운영하는 고일주 대표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대기업 발주 물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대기업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져서 발주량을 우선 줄이고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미국 수출도 문제다. 현재 매출의 10%를 미국 수출로 충당하고 있지만, 관세가 부과되면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마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고 대표는 “발주처 대기업들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겠다고 하니 주문량이 다시 늘어날 것 같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리스크’ 파장이 중소기업까지 덮쳤다. 미국발(發) 관세 장벽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기업이 신중 모드에 돌입했고, 이게 중소기업으로 여파가 미친 것이다. 특히 내수 비중이 높은 제조업은 국내 대기업 발주 물량이 줄어들면 당장 공장을 멈춰야 할 상황이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 현지 생산 체제로 돌아서면 중소기업들은 공급망 내에서 납품 기회도 잃게 돼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기계업체 A사도 지난 3개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0% 줄었다. 1년치 물량을 연말에 한꺼번에 주문했던 대기업이 1개월 단위로 물량을 쪼개 발주하면서다. 이 회사 대표 윤모씨는 “대기업들이 연간 사업 계획을 미리 공유하면 그에 맞게 원자재 수급·인력 채용 계획을 세워 왔다. 현재는 대기업도 미국 관세가 어찌 될지 몰라 사업 계획을 짜지 못하고 있으니 재촉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전체 입주업체의 95% 이상이 중소기업인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지난 19일 찾은 이곳은 곳곳에 ‘현위치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을 내놨지만 거래가 이뤄지지 않자 직접 공장 정문 앞에 현수막을 붙인 것이다. 남동공단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꼭 필요한 환경 허가증은 10년 전만 해도 웃돈이 5000만원까지 붙어 거래됐지만 지금은 남아돈다.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모씨는 “폐업한 업체들이 두고 간 허가증이 수두룩하다”며 “불확실성이 커서인지, 임대 문의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남동산단 입주 제조업체는 7536곳으로, 가동률은 74.1%다.

공단 내 도금업체가 모여 있는 한 공장은 2475㎡(약 750평) 중 825㎡(약 250평)가 비어 있었다. 임대료는 20년 전 수준인 3.3㎡당 2만5000원에 내놨고, 원하는 크기만큼 쪼개서 사용해도 된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지만 입주하겠다는 곳이 없다. 이 공장 운영업체 경영실장인 이모씨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대개 대기업 한 곳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고 매출의 절대비중을 차지한다. 요새처럼 대기업이 발주를 줄이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폐업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대기업을 따라 멕시코‧베트남‧중국 등 해외로 생산설비를 옮긴 중소기업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원칙에 따라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납품가격 인하 압박에 놓일 수밖에 없어서다. 전자기판을 제조하는 C사는 2년 전 대기업이 베트남에 신규 공장을 지으면서 베트남으로 생산설비를 옮겼다. 이 회사 대표인 이모씨는 “대기업이 원가 절감도 하고 원활히 소통하자고 해서 따라 옮겼는데 날벼락을 맞은 것 같다”며 “이럴 거면 고장난 기계 고치는 데도 몇 달씩 걸리는 베트남으로 올 이유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은 관세 직격탄의 우려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캐나다‧멕시코에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800달러(약 115만원) 이하 물품에 대한 면세제도 역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다. 미국에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수출하는 D사 관계자는 “평균 영업이익률이 4% 안팎”이라며 “아마존을 통해 개별 발송해서 무관세로 팔았는데 현재 판매 가격을 유지하며 관세 부담까지 감수한다면 적자로 돌아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경기도 안 좋아 원자재 가격이 올랐지만 대기업들도 불확실성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어서 판매가(납품가)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낙수효과가 사라져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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