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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갈등 1년] ② 돌아오지 않는 의사들
뉴시스

‘빅5’ 병원의 필수과에 근무하던 전공의 A씨는 지난해 2월 19일 집단 사직에 동참했을 때만 해도 의·정 갈등이 해를 넘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환자 곁을 떠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1~2개월 안에 돌아올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업무개시명령, 면허정지 경고 등을 내건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점점 기대를 접었다.

A씨는 “언젠가는 병원에 돌아가야겠지만 의료 현장이 원상복구되긴 힘들어 보인다”며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진 만큼 뭐라도 더 얻는 게 있어야 한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3만여명에 달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사직과 휴학이라는 집단행동을 1년째 이어가며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이들은 의대 증원 철회를 내세우면서 버티기 전략을 펼쳤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뒤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는 1만2356명에 달한다. 전체 전공의 1만3531명 중 남은 1175명(8.7%)만 의료 현장을 지키는 상황이다. 의대생도 다르지 않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전국 39개 의과대학에서 휴학한 의대생은 1만834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재적생 1만9373명의 95%에 해당하는 수치다.

‘12년’ 의사 교육이 만든 단일대오

지난해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정부와 의료계는 강경 대치를 이어갔다. 정부의 진료유지명령, 정부 인사의 ‘의새’(의사를 비하하는 표현) 발언 등으로 의료계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포고령에 담긴 ‘미복귀 전공의 처단’ 문구는 현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되돌릴 수 없는 불신을 불러왔다.

사직 전공의 B씨는 “전공의 단일대오의 가장 큰 동력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라며 “의료계를 비판하는 정부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집단행동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태 초기에는 의료계 내에서도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이 몇 주 안에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2020년 문재인정부의 의대 정원 400명 증원 당시에도 총파업 사태는 2주 안에 마무리됐다. 전공의 당사자들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의·정 갈등이 흘러가고 있지만 ‘의대와 병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강하게 결속된 이들은 이견을 드러내거나 함부로 복귀를 상상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의과대학 본과·예과 6년과 수련병원 인턴·레지던트 6년, 총 12년이란 긴 시간을 선후배, 동료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간이 의대 내 동아리다. 긴밀한 선후배 관계를 형성하는 동아리 활동은 2~3주 단위로 치러지는 시험 ‘족보’가 공유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의대를 졸업한 뒤 수련병원에 지원하면 선배 전공의들을 통해 평판 조회가 이뤄지고, 수련평가에서도 함께 일하는 선배 레지던트와 치프(레지던트 대표)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수도권의 한 의대 교수는 “상명하달식인 의대 트레이닝 시스템에 갇히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다”며 “의대 선배와 교수들에게 찍히면 의사로서 살아가기 힘들다. 누구 한 명이 이런 권력 구조를 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사직 전공의 C씨는 “복귀를 생각하는 전공의들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고민조차 주변에 나누지 못했다”며 “내부에서 의견 취합을 하는데, 전공의 4년차 선배에게 복귀 의견을 내라는 것은 직장 상사에게 내부 고발을 하는 것과 똑같다”고 토로했다.

전공의 단일대오라지만 속내는 복잡

의대생·전공의들이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의대생의 경우 일부는 이번 학기에 복학하지 않으면 유급·제적을 당할 수 있다. 개원가로 향한 전공의들도 지난해 한꺼번에 전공의가 밀려들면서 ‘몸값’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병원을 떠난 전공의 10명 중 6명은 일반의로 의료기관에 재취업했다.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중 지난달 기준 5176명(56.1%)이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한 것이다.

이달 재계약을 앞둔 일부 개원가에선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으로 계약을 이어가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개원가에 취업한 한 사직 전공의 D씨는 “하루 10시간 주5일 근무하는데, 지난해 8월에 비하면 임금이 반토막났다”고 하소연했다.

군 복무를 앞둔 전공의 3000여명은 입대까지 최대 4년을 꼬박 대기해야 하는 처지다. 의무사관후보생 서약을 맺은 전공의는 수련을 중단하거나 마친 뒤 군의관과 공보의 등으로 입대해야 하는데, 지난해 집단 사직 여파로 현재 대기자만 연간 수요(1000여명)의 3~4배에 달한다. 입대를 앞둔 사직 전공의 E씨는 “의사단체가 군 미필 전공의를 위해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는 불안감도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가 뒤섞이고 있지만 의료계가 전향적 입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사직 전공의들은 공통적으로 복귀할 명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2026학년도 정원에 대해선 증원된 1509명에 상응하는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또 의대 증원과 같이 정부가 의료계 동의를 얻지 않고 의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직 전공의 F씨는 “의대생·전공의들이 이번 의대 증원과 같이 정부에 뒤통수를 맞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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