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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과에서 수련하다 사직한 전공의 A 씨는 피부미용 시술을 주로하는 경기도의 한 동네의원에 재취업했다. 피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피부과 의원이 아닌 일반의(의사 면허 취득후 바로 활동하는 의사) 진료과 의원이다.

A 씨는 “일이 어렵지 않고 당직이나 야근이 없어 편하다”라며 “3년 정도 시술ㆍ운영 노하우를 배워서 개원하려 한다”고 말했다. 의정갈등 이전 A 씨는 위ㆍ식도ㆍ췌장 등을 보는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꿈꿨지만, 이제는 수련을 이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일반의로 개원한 선배 의사가 전문의ㆍ교수들보다 큰돈을 버는 걸 눈으로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박봉이라는 전공의 급여보다 적은 급여를 받지만, 개원 준비 과정이라 생각하고 감수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뉴스1

의정갈등으로 수련병원을 떠나 재취업한 전공의 10명 중 6명은 A 씨처럼 동네의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의원(조국혁신당)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련병원에서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전공의(레지던트) 9222명 중 지난달 기준 5176명(56.1%)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했다.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지난해 2월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같은 해 6월 정부가 이들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철회하면서 하반기부터 사직 전공의들이 일반의로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반의는 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의사다. 과목별로 인턴ㆍ레지던트ㆍ세부 전공 과정을 거쳐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가 된다.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사직 전공의를 위한 대한피부과의사회 연수강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재취업한 사직 전공의 58.4%(3023명)가 의원급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37%(1121명)는 특정 과목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가 개설한 ‘일반 의원’에 몰렸다. 이어 내과(12.6%), 정형외과(8.4%), 이비인후과(7.6%), 안과(7.1%), 피부과(6.8%) 순으로 나타났다.

사직 전공의들이 의원급, 그중에서도 일반 의원으로 몰린 건 개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한꺼번에 개원가로 쏟아지면서 급여도 급락했다. 최근 한 피부미용ㆍ비만클리닉은 의사 채용 사이트에 공고를 내면서 급여를 ‘세전 연봉 3000만~4000만원 미만’으로 표시했다.

수도권의 사직 전공의 B 씨는 “시세가 반 토막까지 떨어졌다”라며 “대부분 경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불러도 서로 가려 한다”라고 전했다. B 씨는 프롤로 주사(통증 완화 치료) 등을 주로 하는 동네 의원에서 월 400만원가량을 받는데, “박봉이긴 해도 빨리 배워서 개원해야지 생각하고 참는다”라고 말했다. 의정갈등이 해소되더라도 이들 중 상당수는 원래 수련병원에 돌아가지 않고 개원 대열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옥 기자

정재훈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원급에 나간 사직 전공의 상당수는 의정갈등이 끝나더라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라며 “특히 소아청소년과ㆍ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 복귀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문의 봉직의(급여받는 의사) 연 평균 급여는 1억9100만원으로 일반의 개원의(1억9600만원)보다 적다. 정 교수는 “대학병원에 남고 싶어도 교수 자리가 적고, 교수와 개원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커져 수련을 하고 병원에 남을 동기가 적어졌다“라고 말했다.

김선민 의원은 “사직 전공의 상당수가 의원급에 재취업했고, 필수의료가 아닌 소위 말해 돈 되는 진료과를 택했다”라며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의료개혁을 했지만, 실제로는 필수의료를 고사시키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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