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3년…전장이 된 고향을 떠난 이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노인·장애인 요양시설에 있는 유리(52)가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전황과 관련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email protected]
2차 세계대전 종전을 1년 앞둔 1944년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조냐(80)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한 요양시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조냐 가족이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에 정착한 건 10살 때였던 1954년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많은 노동자들은 광산업이 발달한 돈바스로 향했고, 조냐의 가족도 도네츠크에 정착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인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지역을 말한다. 조냐는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와 함께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하며 우크라이나 국적이 됐다. 2014년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성향 반군 사이 돈바스 전쟁을 목도했다. 숱한 전쟁이 조냐의 삶을 휩쓸었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조냐는 도네츠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조냐는 “2차대전 시기 태어난 내 삶의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전쟁을 겪어야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일어난 전쟁이 3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 사이 종전 협상이 시작됐다.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양국 외교장관은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뺀 채 종전 협상을 개시했으며, 미-러 정상회담도 곧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이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양보를 강요당하는 종전을 수락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종전이 된다 해도 삶의 기반을 빼앗긴 이들의 아픔이 치유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겨레는 지난달 31일부터 10일까지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에서 피란을 온 이들을 만나 3년의 세월을 들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노인·장애인 요양시설에 머물고 있는 유리(52). 우크라이나 수미 출신인 그는 전쟁이 시작된 뒤인 2023년 4월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되었다. 이후 수미의 요양원에 살기 시작했지만, 지난해 9월 러시아가 이곳을 폭격해 키이우 요양시설로 옮기게 됐다. 당시 러시아의 유도폭탄 공격으로 요양원에서는 한 명이 사망하고 최소 12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키이우 요양시설에서 만난 유리(52)도 전쟁 초기 격전지였던 북부 수미 지역에서 평생 나고 자랐다. 러시아는 침공 첫날인 2022년 2월24일 국경과 가까운 이곳을 공격해 일시적이지만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유리는 시민들이 직접 러시아군에 맞서 싸워야 했다며 “건강이 좋은 남자들은 바로 싸움에 나섰다. 근처 군부대에서 무기를 받기도 했고, 화염병을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리도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유리병 등을 모아 갖다주고, 아수라장이 된 마을에서 노숙자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자원봉사를 했다. 유리는 “한 80대 할아버지가 얼음 가르는 도구를 가져와 러시아인이 오면 한 명이라도 죽이겠다”고 말했던 일을 기억했다.
유리의 아버지는 현재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출신이지만 자신은 완전한 “우크라이나 사람”으로 생각한다. 러시아는 자국의 질서를 우크라이나에 주입하려는 침략자라고 생각한다.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친러 반군이 세운 자칭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에도 친척이 살고 있지만, 전화로만 소식을 듣고 있다. 유리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엔 러시아 말을 듣는 사람이 있지만, 수미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우리를 ‘해방시키겠다’고 하지만, 우린 이미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러시아의 의도는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고 말했다.
1944년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 태어난 조냐(80)는 10살이 되던 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로 이주한 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현재는 전쟁을 피해 수도 키이우에 있는 요양시설에 살고 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반면 조냐는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 광산에서 일했던 조냐는 산업이 발달했던 도네츠크에 자부심이 있다. 조냐가 살고 있던 곳은 러시아의 점령지 바깥에 있었지만, 늘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를 마주했다.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유리와 달리 러시아어로 말하는 조냐는 “소련 시절부터 우리는 한 나라였는데 왜 전쟁을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난 말 할 것이 없지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됐다.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조냐는 2018년부터 도네츠크주의 요양시설에서 지냈다. 요양원은 동부 지역 최대 격전지인 포크로우스크 지역으로부터 고작 2㎞ 떨어져 있는 탓에 포격을 받아 시설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조냐는 결국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2022년 9월 키이우 요양시설로 전원했다. 처음엔 2∼3개월이면 다시 도네츠크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조냐는 지금도 도네츠크 시설에 있는 의료진과 연락을 하는데, 수화기 너머 듣는 포격 소리에도 익숙해 졌다.
조냐(80)와 같은 요양시설에 있다가 포격을 피해 키이우 요양시설로 오게 된 도네츠크 출신의 아나스타샤(86). 사진 장예지 특파원
조냐와 같은 요양원에서 함께 이동한 아나스타샤(86)는 도네츠크에서 태어나 전쟁 전까지 떠난 적이 없었다. 그의 딸과 손주들은 여전히 도네츠크주에 살고 있다. 아나스타샤는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한쪽 가방엔 서류 뭉치를, 다른 가방엔 옷가지를 넣어두고 언제든 피난갈 준비를 한다”며 “러시아는 처음엔 대도시나 산업 시설이 있는 곳 중심으로 공격했지만 지금은 주거지나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까지 공격하고 있다. 학교, 약국 모든 시설을 포격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러시아가 점령지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친우크라이나’ 세력을 색출하고, 강도높은 ‘러시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규탄한다. 특히 점령지 곳곳에서 주민들의 신상 관련 서류와 휴대전화 등을 검열하는 ‘심사 검문소’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러시아는 동부 점령지와 러시아 국경 일대에 대거 검문소를 세워 주민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신상 정보를 검열한다.
우크라이나 비영리기구 시민자유센터에서 활동하는 정치학자 미카일로 싸바는 지난 3일 한겨레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점령지에서의 검문은 러시아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찾고, 친우크라이나 세력을 걸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며 “러시아 헌법에도 이런 ‘필터링’ 과정을 인정하는 조항은 없다. 살던 곳에 머물고 싶다면, 그는 러시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검문소에서의 불법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검문은 특히 전쟁으로 황폐화된 점령지를 떠나기 위해 국경을 나선 주민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2022년 4월 고향인 헤르손을 떠나 현재는 두 아이와 함께 체코에 정착한 마리아 코잘로바는 검문소에서 생이별한 남편 이반 코즐로우와 3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수복돼 우크라이나 영토로 돌아왔지만, 헤르손은 2022년 3월 러시아에 점령당하면서 마리아 가족도 탈출을 감행했다. 마리아 가족은 크림반도를 거쳐 조지아로 빠져 나가는 피난 경로를 염두에 두고 크림반도 검문소에서 심사를 받게 됐다.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 고향 헤르손에서 찍은 마리아 코잘로바 가족의 사진. 코잘로바 가족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2022년 4월 우크라이나를 떠나기로 했지만, 그의 남편 이반 코즐로우가 러시아 당국이 운영하는 검문소에서 구금된 뒤 3년째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반 코즐로프는 간첩 혐의 등으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크림반도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사진 마리아 코잘로바 제공
마리아는 당시 러시아군이 이반을 가족들과 분리시켰고, 그 뒤로 마리아와 아이들은 이반을 볼 수 없었다. 마리아는 난민 인정을 받아 체코에 살게 된 뒤 변호인을 고용해 1년 가량 수소문을 하며 남편의 행방을 찾았고, 그가 크림반도 교도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반의 휴대전화를 검열한 러시아는 그가 우크라이나군에 러시아군 위치를 알렸다며 간첩 혐의 등으로 징역 11년을 선고한 상태였다. 지난 11일 한겨레와 화상으로 만난 마리아는 “남편은 전기충격과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고문 등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며 “헤르손이 러시아에 점령됐었다고 해도 그들의 영토로 정식 인정된 건 아니었다. 러시아 형법을 적용해도 11년은 과한 형이었다”고 말했다. 싸바는 이반처럼 재판 절차를 거쳐 수감되는 사례 역시도 소수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은 법적 조력이나 선고 없이 그저 구금 시설에 갇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시민자유센터는 점령지 밖 전선이나 마을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약 7000명이 구금 또는 수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여권을 사용하는 점령지 주민들은 검문소에서 보다 가혹한 심사를 받게 된다. 싸바는 “검문 과정이 끝나면 러시아 여권을 갖도록 압력을 가하고, 러시아 국적이 아니면 점령지 밖에 있는 재산 매매도 불가능하다”며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은 뇌물을 주거나 불법적인 탈출 경로를 택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격렬한 전투로 인프라가 무너진 점령지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싸바는 “도네츠크·루한스크에선 18살이 된 젊은이들은 러시아군으로 징집되고 있다. 러시아 여권 없이는 의료 시설 이용도 제한되고, 공장이나 농경지 인근도 지뢰가 매설돼 있어 갈 수조차 없다. (점령지에서의) 삶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보다 열악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키이우 어린이 병원(Okhmatdyt)의 모습. 사진 장예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