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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을 두고 촉발된 의정갈등이 1년이 돼가는 18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인이 잠시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절망하는 마음은 한참 전에 지나갔어요. 올해 수련에도 복귀할 마음은 없고, 그저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말, 1만여 명의 전공의가 일제히 의료 현장을 떠났다. 수도권 한 대학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3년차로 일했던 A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A씨는 필수의료에 해당하지만 일이 힘들어 ‘기피과’라 불리는 외과를 택해 수련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 1년 간 정부가 여러 차례 수련 특례를 내놓았지만 A씨는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당직의로 파트타임 근무를 하며 군 입대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고 있다. 지난 10일 A씨를 만났다.

A씨는 1년 전 사직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온 이유를 ‘의사 2000명 증원 반대’로만 요약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목적(필수·지방의료 위기 해결)은 좋았으나 방법이 너무 틀렸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의료전달체계 왜곡, 대학병원 환자 쏠림, 지역의료·필수의료 위기’ 등 정부가 언급한 의료 문제들은 젊은 의사들이 현장에서 느끼고 고민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2000명 증원’만으로는 이 문제들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A씨는 정부의 지난 1년 간 소통 방식은 “강경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점차 강경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사직서를 제출한 지난해 2월20일, 병원 앞에는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사복 경찰들이 돌아다니며 중환자실에서 전공의들이 근무하는지 확인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병원을 나와 있는 1년 간 면허를 취소하겠다, 전공의를 구속한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지난해 12월3일 계엄 포고령에는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이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는 말까지 담겼다.

“1년 동안 저희가 얻어낸 건 없는데, 강경한 말에 계속 노출됐어요.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폭력적이었죠. 의료계가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는데, 이런 대화방식을 받아들이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태가 길어지면서 생계의 어려움을 겪은 이들도 많았다. 지난해 7월 사직서 수리가 되기 전까지는 의사 면허로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없었고, 언제 수련병원으로 돌아갈지 몰라 다른 진로를 택할 수도 없었다. A씨도 이 기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직서 수리 이후에는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있게 됐지만, 좋은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A씨는 “미용병원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은 옛말”이라며 “프리랜서 계약을 맺길 원하는 병원들이 많아서 대출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A씨는 “임상경험이 적은 저연차 사직 전공의들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취직하기 어려워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련을 재개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A씨는 “전공의 7대 요구안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져야 돌아갈 계기가 마련되겠지만, 그렇다 해도 병원으로 돌아갈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의료 정책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졌기 때문이다. “본과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서 전문의를 취득하는 일종의 ‘헤리티지’(문화 유산·여태껏 이어져 오던 전공의 수련 문화)가 무너졌어요. 10년 후를 봤을 때 로컬(개원가)로 나가는 것보다 전문의가 더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필수의료에 ‘낙수과’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보람 하나로 필수의료를 선택하던 사람들을 더 돌아오지 않게 만들었죠.”

A씨는 여전히 외과 의사의 길을 가고 싶다. 인턴 시절 수술을 보조하던 날 외과 선배가 “이거 한 번 꿰매볼래”라고 해서 혈관을 묶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A씨는 “필수의료를 택하는 사람들은 좀 덜 자고, 좀 더 고생하면 환자가 나아지는 느낌에 이 길을 걸어온 것”이라며 “지난 1년의 경험으로 그 ‘무형의 가치’가 많이 훼손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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