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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미 전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이 전하는
‘비동의강간죄 검토 철회’ 사태 전말
김종미 전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자택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성정책 후퇴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유엔 2018년부터 도입 권고

여가부, 2022년 연구용역

법무부 권고에 개정 → 검토로

2023년 총리 보고 후에 의결


‘무고죄 처벌 강화가 공약인데’

‘대통령실 전화 온다’ 말 나와

9시간 만에 당시 장관이 철회


감찰선 개인 신념 계속 따지고

야당 의원과 관계 캐묻기도

“숙원법 검토조차 않는다면

여가부의 존재 이유가 뭔가”


“향후 5년간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면 여성가족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 건가요? 추진도 아니고, 검토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2030세대의 의식 수준과 사회적 감수성이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할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김종미 전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60)이 지난 1~2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김 전 국장은 2023년 1월26일 여가부가 발표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총괄, 담당했다. 89쪽 분량의 전체 기본계획 중 단 한 줄이 문제가 됐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검토.”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법무부는 “법 개정 계획이 없다”고 입장을 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올렸다. 여가부는 9시간 만에 발표를 철회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위축된 여가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김 전 국장은 인터뷰에서 “여가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부처 간 조율도 거쳐 만든 기본계획인데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하는 것도 안 되냐고 물었지만 장차관은 답이 없었다”며 “제가 겪은 일들은 이 정부 안에서 여성정책이 어떻게 말살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당시 전말이 밝혀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숙원 논란 되자 철회한 여가부

양성평등기본법은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여가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라고 규정한다. 여가부 내부에선 2023~2027년 적용되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2022년 1월부터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각종 의제에 대한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이 시작됐다.

2022년 9~10월 여가부 내에서 1·2차 회의, 11월 3차 회의가 진행됐다. 의제 중 하나로 비동의강간죄가 들어갔다. 2015~2017년 적용된 제1차 기본계획에 이미 포함됐던 내용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8년부터 한국 정부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부부 강간 등 합의되지 않은 모든 성적행위를 포괄하는,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성적행위를 강간으로 정의하도록 형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여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법무부는 비동의강간죄 도입 등으로 개정하는 안에 대해 ‘수정의견’으로 “개정 검토”라고 기재했다. 법무부는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해외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며 “성폭력 범죄 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여가부는 ‘개정’에서 ‘개정 검토’로 안을 바꿨다. 2022년 12월 여가부 내 4차 회의와 외부 공청회, 2023년 1월 초 여가부 실무위원회가 진행됐다.

당시 여가부 내부 회의에선 돌봄, 가족 정책이 주된 논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비동의강간죄가 화두가 되진 않았다. 김 전 국장은 “여성폭력 담당인 권익정책국 쪽이나 장차관이 비동의강간죄 도입 검토를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한 적은 없다”며 “대통령실에도 기본계획을 3~4번 서면보고했다”고 말했다.

막상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해야 하는 양성평등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김 전 국장은 “여가부 쪽에서 양성평등위원회에 회의를 열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회의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정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폐지될 부처’ 처지인 여가부의 발언권이 크지 않은 터였다. 2023년 1월12일 이기순 당시 여가부 차관과 김 전 국장 등이 양성평등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찾아가 기본계획을 보고했다. 김 전 국장은 “국무총리가 한국의 저출생에 돌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가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돌봄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되겠느냐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양성평등위원회는 1월16~18일 서면 방식으로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1년여 과정을 거쳐 기본계획이 발표됐는데 갑자기 비동의강간죄 논란이 벌어졌다. 발표부터 철회까지의 9시간 동안 여가부 내 대책회의에선 ‘대통령실에서 자꾸 전화가 온다’ ‘대통령 공약이 무고죄 처벌 강화인데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김현숙 당시 여가부 장관은 국회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통해 협의했고, 상호 간 동의해 그런 의견(법 개정 계획이 없다)을 냈다”며 “한 장관의 입김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 전 국장은 “부처 간 조율과 절차, 양성평등위원회 심의 결과를 무시한 법무부의 통보였다”며 “비동의강간죄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지키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광화문 청사 사무실서 경위 조사

그 직후인 2023년 2월 초 김 전 국장은 기본계획을 담당한 과장으로부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조사를 받고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과장은 김 전 국장과 사무관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여가부 장차관에게선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상태였다. 김 전 국장은 2월6일 오후 1시부터 8시30분까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7층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나온 검사”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김 전 국장을 조사했다. 이들은 “변호사를 대동할 수 있다”고 고지한 뒤,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마음대로 추진하려고 했느냐’고 추궁했다. 김 전 국장은 “(조사관들이) 비동의강간죄 도입에 관한 개인의 의견이나 신념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물었다”며 “그래서 ‘개인적 신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정책국장으로서 절차대로, 문제없이 했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조사관들이)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난 적 있느냐며 야당과의 관계를 질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백 의원은 21대 국회 때 비동의강간죄 법안을 냈다.

2023년 3월 말 김 전 국장은 여가부 장관 명의로 경고조치, 담당 과장은 주의조치를 받았다. 경고장에 적힌 경고 이유는 3가지였다. ‘신중하게 기본계획을 수립했어야 하나 관리 및 검토를 소홀히 했다’ ‘중요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장차관에게 보고했어야 했다’ ‘정책 발표 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는 것이다. 부처 간 소통 미흡이 문제였다면 법무부도 조사 대상이지만 법무부가 이 건으로 감찰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고·주의는 공무원법상 징계는 아니지만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한다.

김 전 장관은 경고·주의 조치는 대통령실 감찰과 별개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은 통화에서 “기본계획이 엄청 길어 장관이 다 읽을 수 없는데 비동의간음죄(강간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며 “중요한 내용인데 장관이 모르고 기본계획이 나갔기 때문에 (경고)조치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국장은 “정책 추진 절차엔 아무런 하자가 없고, 언론에 혼돈을 준 것도 없었다”며 “공무원이 보고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비리 혐의가 포착된 것도, 부처 내부 감사도 아니고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개입해 여가부의 정책 추진 과정을 조사한 것은 여가부 폐지와 반성평등 정책 기조를 드러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가부 업무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비동의강간죄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계속 (도입하도록) 지적하고 있음에도 달성하지 못한 몇가지 중 하나”라며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세울 때 각 부처가 동의하지 않으면 (의제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인데, 직원에게 감찰로 내려올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다른 인사도 “감찰까지 갈 사안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2020년 11월 개방형 직위로 여성정책국장에 임용된 김 전 국장은 “부처로서 예산과 행정 집행을 할 수 있는 조직적인 틀, 20년 넘게 축적된 여가부의 경험만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에 버텼다”며 “울면서 상담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뜻이 있어 여가부를 선택한 직원들이 고민이 많았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국 여성혐오와 젠더 갈라치기, 극우 유튜브를 지지대로 삼은 윤석열 정부가 여가부 폐지라는 반성평등 정책을 시작으로 계엄이라는 극단적이고 반민주적인 결말과 조우한 셈”이라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여성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광장에 나온 2030 여성들이 그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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