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사교육 카르텔’ 무너진 공교육
동료와 팀 만들어 학원 교재 제작
학교에서 버젓이 정례회의까지
출제위원 되자 “단가 올려라” 압박
동료와 팀 만들어 학원 교재 제작
학교에서 버젓이 정례회의까지
출제위원 되자 “단가 올려라” 압박
감사원에 적발된 교사 문항 장사의 93.4%(거래액 기준)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집중됐다. 서울에서도 강남구와 송파구, 양천구 등 대형 학원이 몰린 지역에서 ‘부당 거래’가 유독 많았다. 학원과 비밀 전속 계약을 맺고 수천만원대 뒷돈을 연봉처럼 받거나, 동료 교사들과 팀을 짜 학원 판매용 교재 집필에 나선 교사들도 있었다.
18일 공개된 감사원 보고서에는 교육을 돈벌이 창구로 인식한 교원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대학 동기인 학원 강사와 계약을 맺고 학원 교재에 들어갈 문항을 만들어줬다. 이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매년 3000만~4000만원씩 모두 2억여원을 챙겼다. 서울 강남구와 종로구의 고교 수학교사는 같은 해 대학 동문으로부터 모의고사 문항 제작을 의뢰받고 거래에 나섰다. 일반 문항은 1개당 10만원, 고난도 문항은 20만원씩으로 단가를 매겼다.
양천구의 한 고교 수학 교사는 동료 2명과 팀을 꾸려 학원에 팔아넘길 교재를 만들었다. 이들은 학교에서 판매용 교재를 위한 정례 회의까지 연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고교 수학 교사는 학원 강사와 거래 수익을 늘리기 위해 수능·모의고사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교원 8명을 섭외, ‘문제팔이 조직’을 구성했다. 이들은 2019~2023년 5월 모두 6억6100만원을 벌어들였다.
서울 강북구의 한 지구과학 교사는 2020년 자신이 거래하던 업체에 “10월 한 달간은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자신이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하게 됐으니 ‘단가’를 올려 달라는 의미였다. 실제 이 교사는 이후 문항 20개당 300만원이던 단가를 350만원으로 올렸다.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 수능과 모의평가 검토위원에 참여한 서울 노원구의 한 고교 영어 교사는 4개 사교육업체와 문항 거래를 해 6956만원을 챙겼다.
수능에 출제됐던 ‘킬러 문항’이 검토위원들조차 풀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대로 제출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수능 수학 영역 공통과목 22번 문항은 검토위원 전원이 오답을 제출했다. 예상 정답률 2.85%에 불과했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은 ‘논리적 오류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출제했다.
2023학년도의 수능 영어 지문 사전 유출 의혹과 관련한 감사 결과도 나왔다. 수능 출제위원이었던 국립대 교수는 본인이 감수한 EBS 교재에 A교사가 실었던 지문을 무단으로 가져와 수능 영어 23번 문항으로 출제했다. 그런데 유명 일타 강사는 EBS 교재를 집필했던 B교사로부터 같은 지문이 담긴 문항을 구매한 뒤 그해 수능 직전 학원 사설 모의고사에 사용했다. 결국 영어 23번 문항은 사전 유출 논란을 야기했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이후 해당 문항과 관련한 이의 신청이 126건이나 접수됐는데도 이의 심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