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민상일 교수가 신장이식환자 이석준씨를 진료하고 격려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주에 열이 37.5~38도로 올랐어요."(환자 이석준씨)
"열이 나거나 숨이 차는 감염 의심 증세가 생기면 즉시 응급실로 와야 해요."(민상일 교수)
17일 오전 서울대병원 이식외과 민상일 교수(장기이식센터장)가 신장 이식 환자 이씨를 진료했다. 민 교수는 "단백뇨·염증 수치가 호전되면서 상태가 괜찮네요"라고 진단했다. 이씨는 모니터 화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이게 저의 신장인가요"라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석준(31)씨는 지난해 12월 24일 민 교수한테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13년의 기다렸던 일이다. 이식 후 약간의 고비가 맞았지만 한 달 반의 입원 치료를 받고 잘 넘겼다. 이씨는 6,7세 무렵에 신장에 병(만성사구체신염)이 났고 2011년 신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 그 무렵 혈액투석을 시작했고 얼마 안 돼 소변이 끊겼다.
고령화 쓰나미 닥친 장기이식
50~74세가 전체 이식 68%
장기 공급 줄고 대기는 늘어
"연명의료중단 후 이식 도입"
이씨는 수술 후 간호사가 소변량을 체크하는 걸 보고 이식받은 걸 실감했다. 수술 5일 차에 소변줄을 제거했다. 13년여 만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배설이라는 걸 느꼈다. 지금은 소변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씨는 그동안 이식받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앞선 순위에서 이식되거나 본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받지 못했다. 주 3회(회당 4시간) 투석 받느라 자주 입원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쳤다. 병 때문에 바나나·복숭아를 못 먹고, 고구마·감자를 많이 먹지 못했다. 물도 맘대로 못 마셨다. 이씨는 "이제 잘 될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서울대병원에서 지난해 12월 신장을 이식받은 이석준씨. 누군지 모를 기증자에게 고마움과 죄송함을 표했다. 장진영 기자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마" 그러나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그는 "저한테는 (이식이) 좋은 소식이지만 누군가(기증자 가족)에게 결코 아니다.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살린 것"이라며 "최대한 잘 관리하고 아껴 쓰겠다. 회복하면 일자리를 구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8일 이런 소식을 전했다. 다운증후군을 앓아온 김준혁(22)씨가 지난달 13일 뇌사 상태가 됐고, 간·신장(좌우)을 기증해 3명의 생명을 살렸다. 어머니 김미경씨는 "엄마가 곧 보러 갈 테니까.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잘 놀고 있어"라고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준혁이가 장애인으로서 20년 동안 나라의 혜택을 받아왔으니, 당연히 감사한 마음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의료진에게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냈다”고 말했다.
이석준씨는 누구의 신장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씨의 '죄송한 마음'은 김미경씨 같은 가족의 아픔을 공유해서 나온 감정이다. 장호연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장은 "장기 기증은 기적과도 같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2023년 483명의 뇌사자가 1953명(안구 포함)의 생명을 살렸다.
최고 의료가 이식대상 늘려 2023년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의 53%가 50~64세이다. 65~74세를 더하면 68%이다. 고령화로 인해 장기 이식이 필요한 중·고령층과 젊은 노인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이식외과 전문의)은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대여명이 늘고, 오래 살면서 당뇨병 같은 성인병이 늘어나고, 이식 대기자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이동형 대한신장학회 일반이사(부산 동구 범일연세내과의원장)는 "고령화로 인해 당뇨병 인구가 는다. 말기 콩팥병 원인의 50%가 당뇨병이며 말기가 되면 신장 이식이 필요하게 된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투석 치료 기술도 이식 대기자 증가를 불러온다.
김명수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장기이식이 필요한 사람이 불가피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신장 이식 대기 기간은 2021년 6.23년에서 2023년 7.37년으로 늘었다. 심장은 212일에서 262일로 늘었다. 이동형 이사는 "종전에는 투석한 지 5년 지나면 대부분 사망했지만 요즘은 60% 산다. 10년 생존율도 40%이다. 오래 살면서 이식대기자가 된다"고 말했다. 신장 이식 후 11년 생존한 비율이 86%, 간은 68%, 심장은 61%에 달한다.
하지만 장기 공급은 제자리다. 생존자의 장기 이식이 점점 준다. 2019년 2698건에서 2023년 2338건이 줄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출산율 감소 등으로 형제가 줄기 때문이다. 남은 길은 뇌사자 이식이다. 하지만 뇌사자가 매년 400명대에서 오르내린다. 지난해는 의정 갈등 여파로 397명으로 줄었다.
"가족보다 본인 의사 존중해야" 한국의 인구 백만명당 뇌사자 기증 이식은 9.32명이다. 스페인(49.38명), 미국(48.04명), 영국(22.35명)보다 적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늘릴 수 없는, 예민한 이슈이다. 우리는 장기 기증을 전제로 뇌사를 인정한다. 심장 정지 직후 이식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민상일 교수는 "스페인·미국처럼 심정지 직후 기증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고 말한다. 이삼열 원장은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경우 심정지 이후 장기를 기증하거나, 본인이 장기 기증을 등록한 경우라면 가족이 반대해도 기증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한다. 이런 안을 담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동형 이사는 "당뇨병으로 인한 콩팥병을 조기에 찾아내 말기로 가는 걸 막아야 한다. 건강검진을 빼먹지 말되 검진 결과지를 잘 보고 사구체 여과율 점수가 60점 이하이면서 단백뇨가 있으면 당장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수 교수는 "장기 기증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인 합의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