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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키이우' 밤새 달린 버스…2시간마다 휴식, 버스기사도 교체
지친 승객들로 만원…"전쟁 피해 바르샤바서 돈 벌지만 여기가 내고향"
"키이우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아시나요? 빨리 전쟁이 끝나야죠"


인적 없이 휑한 바르샤바 버스 터미널
(바르샤바=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7일 밤(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 옆 버스터미널에 인적이 끊겨 휑한 모습. 2025.02.17 [email protected]


(바르샤바·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본 적 있나요?"

전쟁 발발 3주년을 일주일 앞둔 지난 17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 옆의 버스터미널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행 버스를 기다리던 중, 라비브 사피르(31) 씨가 말을 걸었다.

당연히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본적은 없었다. 그게 어떤 체험이고 얼마나 피곤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장시간 버스도, 키이우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답하자 사피르 씨도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호주 태생으로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다닌다는 그는 키이우에서 열리는 회의 참석차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밤 10시10분에 출발하는 키이우행 버스를 타기 위해 밤 9시부터 야외 버스터미널에서 서성거렸지만 5∼7번 플랫폼에 온다는 버스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였고, 어두컴컴한 버스터미널은 인적도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다.

버스 운행정보를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었다. 도착하는 버스마다 쫓아가서 키이우행 버스인지 묻는 일을 반복했다.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반가웠던 것인지 사피르 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같은 목적지라는 것을 확인한 뒤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기다린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 함께 안도했다.

키이우로 향하는 버스 안
(바르샤바=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7일 밤(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 옆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향하는 버스 안. 2025.02.17 [email protected]


버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8분 늦게 도착했다. 사피르씨와 농담으로 "승객은 우리 둘뿐일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버스에 올라타니 45인승 대형버스는 거의 만석이었다.

여성이 열에 아홉이고 남성은 노인이거나 아이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총동원령으로 징집 가능한 연령대 남성의 출국이 금지된 현실을 새삼 실감했다. 어디서부터 출발했을지 모를 승객들은 피곤한 표정으로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빈자리를 겨우 찾아 몸을 구겨 넣었다. 버스는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달렸다. 구간마다 전광판으로 현재 기온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수은주가 내려갔다. 영하 13도의 밤이었다.

버스는 2시간 간격으로 휴게소에 멈췄다. 대부분 여성 승객이라 여자 화장실 앞엔 긴 줄이 늘어섰다. 깨어난 어린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자 엄마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여줬고, 거짓말처럼 울음이 멎었다.

5시간여를 달린 뒤 국경 검문소가 나왔다. 군인들이 버스에 올라 여권을 수거해갔다. 기자는 우크라이나군이 발급한 취재증 덕분에 쉽게 통과했지만 사피르 씨는 아니었다. 군인 2∼3명이 둘러싸고 방문 목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바깥에서는 버스 짐칸이 열리고 짐 하나하나를 검사했다.

우크라이나 간이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
(키이우=연합뉴스) 18일 새벽(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간이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 2025.02.18 [email protected]


1시간이 넘는 검문 끝에 다시 버스는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를 향해 출발했다. 지명도 알 수 없는 지역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는 꼬박꼬박 정차했고 내리고 타는 승객이 있었다. 여기에서 르비우나 체르니히우로 버스를 갈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버스 운전자도 바뀌었다.

키이우의 중앙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8일 오후 3시 20분이었다. 바르샤바를 떠난 지 17시간 만이었다. 샤워한 뒤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인 키이우도 이렇게 힘든데, 동북부 맨 위 도시인 체르니히우로 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키이우 시내의 모습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8일 오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내 모습. 2025.02.18 [email protected]


전쟁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은 육로뿐이다. 버스든 기차든 긴 시간과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버스에서 만난 줄리아(39) 씨는 키이우에서 폴란드로 떠난 가족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키이우에서 혼자 산다는 그는 "버스를 오래 타야 해서 외국으로 나갈 때면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며 "전쟁 전엔 비행기가 얼마나 편한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달씩 바르샤바와 키이우에 오가며 일한다는 미용사 발레리아(25) 씨는 "바르샤바에서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키이우를 떠날 생각은 없다"며 "여기가 내 고향이고 가장 편한 곳"이라고 말했다.

전쟁으로 독일과 폴란드에는 많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이 살고 있다. 남편이 우크라이나에 남아 참전하고, 여성과 어린이들이 타국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꼬박 3년을 채울 정도로 장기화하면서 가족 간의 교류가 점점 줄어들고 떠난 가족이 타국의 생활에 정착하면서 결국 가족이 해체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보니 이러한 이동의 어려움이 가족 해체의 한 원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키이우 중심가의 파괴된 비즈니스 센터.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8일 오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중심가의 파괴된 비즈니스 센터. 지난달 18일 폭격으로 파괴돼 흉하게 드러났던 건물 중앙 부분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2025.02.18 [email protected]


키이우는 화창했다. 도로 옆에는 최근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신속한 복구로 전쟁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고 있었다.

취재를 도와준 올렉산드라 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사일 폭격을 당한 곳엔 빨리 치워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정부의 늑장 처리도 문제였다. 하지만 요즘은 정부가 신속히 복구해서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키이우 외곽에 있는 자기 집 근처가 피격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12살 딸이 공포에 질려 울었지만 그는 키이우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키이우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아세요? 봄이면 초록이 번져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됩니다.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지만, 정말 멋진 곳이에요. 빨리 전쟁이 끝나야겠죠."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의 파괴된 두 건물
(키이우=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8일 오후(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의 두 건물이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2025.02.18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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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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