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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바이두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3대 처세서(處世書)' 가운데 하나다. 고전에서 채집된 짧은 어록들이 각 장에 적혀있다. 전집(前集) 225장에는 도덕과 처세 관련 내용이, 후집(後集) 134장에는 자연과 우주의 이치가 주로 배치되어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도교와 불교를 수용한 구절이 많다. 현재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으나, 홍응명(洪應明)의 채근담이 먼저 나왔다.

채근담의 '채근'은 '만약 우리가 매일 채소의 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人就咬得菜根,則百事可成)'라는 송(宋)나라 왕혁어(汪革語)의 문장 가운데 두 글자를 취한 것이다.

이번 사자성어는 호행사병(虎行似病. 범 호, 다닐 행, 닮을 사, 병 병)이다. 앞 두 글자 '호행'은 '호랑이가 걷다'란 뜻이다. '사병'은 '병에 걸린 듯'이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호랑이는 먹잇감을 속이기 위해 마치 무슨 병이 걸린 것처럼 힘없이 걷는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응립여수(鷹立如睡)'가 비슷한 표현이다. '매는 마치 조는 듯 서 있고, 호랑이는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 걷는다.' 채근담 전집 200장 첫 구절이다.

사상가 겸 저술가 홍응명의 자(字)는 자성(子誠)이다. 그는 명(明)나라 말기 태어나 평생 은자로 살며, '채근담'과 '선불기종(仙佛奇踪)'을 저술했다. 아쉽게도 그의 생몰연도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선불기종. 바이두
그가 태어난 명나라 말기는 환관들이 권력을 쥐고 국정을 좌우하던 매우 암울한 시기였다. 망국의 조짐이 만연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깊은 산속에 은거했다. 벼슬길에 나섰다가 혹시 환관들의 미움을 사게 되면 이유도 모르고 삼족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가 처세에 관한 서적을 집필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런 특수한 시기의 수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채근담'을 완성하고 서문(序文)을 한 지인에게 부탁했다. 서문을 쓴 우공겸(于孔兼. 1548~1612)의 기록에 기대어, 우리가 홍응명의 활동 연대와 그가 교제하던 지인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홍응명에 대한 일화들은 전해지고 있다. 그가 지금의 난징(南京) 인근의 한 고을에 머물며 '채근담'을 저술하던 무렵의 일이다. 그 지역은 토양이 좋지 않아 채소가 쓴맛이 강했다. 게다가 당시 채소의 뿌리는 제거하고 판매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어서 농민들은 더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식인 신분의 홍응명은 시장 바닥에 그냥 버려지는 '채근'을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하곤 했다. 구입한 채소 뿌리는 직접 요리하여 무슨 특별한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즐겼다.

채근담. 바이두
하루는 지인 우공겸이 홍응명의 집을 방문했다. 홍응명은 자신이 요리한 채소 뿌리와 죽을 대접했다. 우공겸이 처음 본 '채근' 요리의 맛을 보니 쓴맛도 없어지고 먹기에 전혀 불편한 요리가 아니었다. 홍응명이 그에게 레시피를 알려준다. 먼저 ‘채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후 씻어 햇볕에 말린다. 이어 향신료와 함께 버무리고 다시 숙성한다. 이런저런 과정이 필요하지만 따로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사실, 홍응명은 이 '채근' 요리를 통해 깨우친 이치와 평생 섭렵한 고전에서 꾸준히 익힌 이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가 '채근담'이라고 책의 이름을 결정한 이유다.

우공겸은 '채근담'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채근'이라고 명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청렴한 생활을 바탕으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면서, 또 한편으로 세상 진리를 깨치고 인격을 수양했을 것이다.' '채근담'의 저술 취지도 저자를 대신해 밝혔다. '내가 부족하지만 서문을 기록해, 세상 사람들에게 '채소 뿌리' 속에도 인생의 참맛이 담길 수 있음을 알리고 싶다.'

'호행사병'. 힘이 세고 위험한 맹수라서 관련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 급히 호출하여 읊조리며 되새겨볼 가치가 충분한 네 글자다. 최강자인 호랑이도 한 번의 사냥을 위해 거들먹거림을 뒤로하고 이처럼 최선을 다한다. '채근담'의 뼈대 가운데 하나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홍장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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