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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빌앤드멜린다게이츠파운데이션, 뱅크오브아메리카, 구글, 일론머스크파운데이션…. 빌 게이츠부터 일론 머스크까지 전 세계 유명 기업과 기업인들이 후원을 아끼지 않는 곳이 있다.

무료 교육 사이트 ‘칸아카데미’다. 2004년 유튜브의 무료 교습 동영상으로 전 세계 교육 불평등 해소의 시작을 알린 칸아카데미가 최근 다시 교육 혁명의 중심에 섰다. 칸아카데미는 AI 기술이 교육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장. 유튜브 강사

“내가 원격으로 가르쳐 줄게.”

2004년 살만 칸은 그의 사촌동생 나디아에게 무모한 제안을 했다. 6학년 마지막에 치른 수학 배치고사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은 그녀를 돕고자 한 제안이었다.

당시 칸은 가르친 경험도, 효과적인 학습 방법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그저 인도와 방글라데시 출신의 미국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잘나가는 헤지펀드 매니저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춘기 소녀의 좌절감을 덜어주기 위해 인터넷 전화 강의를 시작했다.

교육은 효과적이었다. 나디아는 아주 높은 성적으로 합격했고 그 즈음 친척들과 친지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서 칸의 제자는 10명쯤으로 늘었다. 학생 수가 늘자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고 수업도 일대일로 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없었다. 한 친구가 ‘수업을 녹화해 유튜브에 올려두고 학생들 각자가 편할 때 보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획기적이지만 무모한 제안이었다. 지금이야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올라오는 곳이지만 당시 유튜브는 재미있는 영상이나 동물 콘텐츠 등이 올라오는 플랫폼이었다. 진지하고 체계적인 교육 콘텐츠를 올리는 이는 없었다. 유튜브 규정에 따라 교육 영상은 10분으로 제한됐다. 나디아를 가르칠 땐 둘 중 하나가 자리를 뜰 때까지 교육했지만 유튜브의 규정에 맞추자니 강의 시간도 10분으로 바뀌었다. 집중에 적당한 영상 시간은 이 규정 때문에 만들어진 셈이다.

2008년 즈음엔 수만 명의 학생이 그의 영상을 봤다. ‘교육계의 록스타’, ‘최고의 수학교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사촌들을 위해 강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 뜻하지 않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해 칸은 무료 교육 사이트이자 비영리 교육재단인 칸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의 목표는 ‘모든 곳의, 모든 이들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무상교육’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보잘것없었다. 칸아카데미에는 개인용 컴퓨터 한 대와 20달러짜리 화면 캡처 프로그램, 80달러짜리 펜 태블릿이 전부였다. 교수진, 기술팀, 지원 인력, 관리직 등이 필요했지만 인력은 칸 단 한 사람. 그가 모든 역할을 맡았다. 비영리 교육재단이기에 헤지펀드 직업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가르치는 일에 매료됐지만 그저 취미일 뿐이었다.
2장. 후원자와의 만남“당신의 유튜브 페이지에 여름을 통째로 썼습니다. 흑인들은 학교에서 두 팔 벌려 환영받지 못합니다. 어떤 선생님도 내게 잘해준 적이 없습니다. 수학 배치고사를 봤을 때 나는 우등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내 인생과 가족 모두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이듬해 칸이 학생에게서 받은 메일 한 통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꿨다. 잘나가던 헤지펀드를 박차고 나와 칸아카데미 업무에 몰두했다. 후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 그의 재단에 후원하는 이는 없었다. 생계의 압박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할 무렵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가 수백만의 관중을 앞에 둔 강연에서 “칸아카데미의 팬”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었다. 그는 “영상 강의를 통해 나는 일에 대한 영감을 얻고 내 아이들은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곧 블로그와 트위터 등 인터넷에 퍼졌다. 유력 언론인 포춘지엔 ‘빌 게이츠가 가장 좋아하는 교사’란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칸아카데미 얘기였다.

2010년 9월엔 게이츠재단에서 150만 달러(약 22억원)의 후원을 제안했다. 또 400만 달러(57억원)를 추가 지원했다. ‘세상을 바꿀 다섯 가지 아이디어’를 골라 후원하는 구글의 프로젝트에 칸아카데미가 선정된 것이었다.
3장. 1억7000만 사용자‘모든 곳의, 모든 이들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무상교육’. 칸아카데미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목표는 창대했다. 칸은 전 세계 가난한 시골마을 아이들에게 실리콘밸리에 사는 아이들이 누리는 것과 거의 같은 경험을 주는 목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저가의 태블릿 컴퓨터가 인도 시장에서 100달러 이하로 판매된다고 가정할 때 이 기기를 소유하는 연간 비용은 약 50달러에 불과하다. 칸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하루 1~2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간단한 접근법 덕분에 태블릿 한 대로 하루에 최소 4명에서 많게는 10명의 학생이 학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4명이 함께 태블릿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한 학생의 연간 비용은 5달러로 떨어진다. 칸은 이에 대해 “기술은 더 나아지고 더 저렴해질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칸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대학에 가려면 해야만 했죠. 10년 전 칸아카데미를 만났고 미적분에서 만점을 받았어요. 그후로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엔지니어가 되었어요. 칸아카데미가 제 인생을 바꾼 거예요.”(@) “저는 영어권 국가에 가본 적도 원어민도 아녜요. 그치만 지금은 영어를 할 수 있어요. 칸아카데미로 세계 모든 연령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완전 무료로 양질의 콘텐츠를 배우고 있어요.”(@)

현재 칸아카데미는 수학, 과학, 독서, 컴퓨팅, 역사, 미술사, 경제학 등 유치원부터 대학, 성인까지 모든 연령층을 위한 학습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등록 사용자만 1억7000만 명에 이르며 콘텐츠는 한국어를 포함한 50개 언어로 번역되어 190개국 이상에서 사용된다.

칸은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방식에서 비극적으로 어긋나 있으며 효율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 세계가 변화를 맞이하고 있지만 교육만은 현 상태에 머물러 있고 그 결과 상황은 날마다 악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유일한 일은 현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용은 부도덕적으로 높고 그 대가는 달러나 유로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으로 치러진다”고 강조했다.


4장. 오픈AI와의 협업이제 그의 교육 혁명은 다음 장을 열고 있다. AI를 통해 ‘모든 곳의, 모든 이들을 위한 세계적 수준의 무상 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이러한 비전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던 칸에게 2022년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서 온 연락은 그의 꿈을 현실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때는 챗GPT가 세상에 공개되기 4개월 전이었다. 칸과 오픈AI팀은 GPT-4에 대학 수준의 생물학 문제를 풀도록 했고 테스트가 끝난 후 칸은 말했다. “세상 모든 걸 바꿔놓겠군요.”

2024년 4월 칸아카데미는 챗GPT 4.0을 접목한 AI 기반 개인화 학습 도구인 ‘칸미고(Khanmigo)’를 선보였다. 쉽게 말해 ‘AI 교사’다.

칸미고는 학생들에게 개인화된 학습 경험을 제공하며 기존 교육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분수 문제를 어려워하는 중학생에게는 각 문제를 단계별로 나누어 소화하기 쉽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 추가 설명과 연습 문제를 제공해 이해력을 높인다. 이뿐만 아니라 AI를 통해 역사적 인물과 대화하거나 소설 속 등장인물과 직접 토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칸은 AI가 학생들에게 친구 같은 안내자로, 교사에게는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교사로, 학부모에게는 학습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상담 선생님으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AI가 교육을 저해하고 무너뜨릴 것이라는 일반적인 우려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이다. 칸은 “AI 도구와 교사는 결코 교사를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해서는 안 된다”며 “AI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지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5장. 칸의 AI 실험무엇보다 칸이 주목한 부분은 학습 공백을 채우는 개인 맞춤형 교육이다. 일대일 개인지도가 학습 성과를 크게 향상시킨다는 것은 1984년 벤저민 블룸의 ‘2시그마 문제’ 연구에서 증명됐다. 일대일 개인지도로 평균적인 학생을 예외적인 학생으로 만들 수 있고 평균 이하의 학생을 평균 이상의 학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그러나 현재 교육의 가장 큰 한계는 일대일 교습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수업에서는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칸은 “모든 학생에게 전담 교사를 제공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AI 교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의견에 강력한 지지를 보낸 이가 바로 칸아카데미의 후원자 빌 게이츠다. 그는 2024년 5월 자신의 블로그에 “모든 변혁적 혁신에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썼다. 게이츠는 “수십 년 동안 기술이 교육을 혁신하겠다고 했지만 교실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며 “에드테크 운동을 한동안 지켜본 이라면 (AI 교육에) 회의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게이츠는 “하지만 마침내 모든 학생에게 개인화된 학습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며 칸아카데미의 칸미고가 그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나친 디지털 의존, 문해력 저하, 교사의 역할 축소 등을 걱정하는 시대, 칸의 실험이 또다시 교육 혁명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박스> 칸아카데미 한국 버전은
칸아카데미 한국은 2016년 출시됐다. 네이버에서 만든 비영리교육재단인 커넥트재단이 국내에서도 세계적 교육 콘텐츠인 칸아카데미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버전의 칸아카데미를 열었다.

한국어 버전에서 수학 과목은 국내 학년별 수업을 제공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수학Ⅰ, 수학Ⅱ, 미적분, 확률과 통계까지 전과정을 아우르며,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강의는 학년별로 세분화되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0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있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부담 없이 학습할 수 있다. 문제 풀이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바로 점검할 수 있는 기능도 있어서 학습 진도를 직접 관리하며 실질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성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초수학, 연산, 대수학, 기초 기하학 등 6가지의 수학 주제로 커리큘럼을 추가 구성했다.

한국어 버전에서 제공하는 컴퓨팅 교육과 애니메이션 제작 콘텐츠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픽사 인 어 박스’ 프로그램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칸아카데미가 협력해 만든 특별한 교육 과정으로, 실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배우며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예술가, 프로그래머, 애니메이션 분야를 꿈꾸는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4050세대에게도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커리어를 찾거나, 단순히 취미로 시작해도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의 한계로 한국어 버전은 현재 수학과 컴퓨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추후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예정이다. 한국어로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는 유튜브의 번역 기능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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