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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키자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각자 수사에 뛰어들어 경쟁했다. 윤 대통령의 방패는 형사사법제도의 혼란이었다. 윤 대통령이 법적 허점을 공격하면서 내란죄 수사는 위태로운 순간을 여러 차례 맞이했다.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불법 수사’ 논란도 의문점을 남긴 채 법원으로 넘어갔다.

범죄를 엄단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바람직한 형사사법제도의 모습은 무엇일까.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을 수사한 공수처 검사,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조정 논의에 참여한 검찰·경찰 간부, 공수처법을 설계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 시민사회에서 검경 개혁을 이끈 변호사, 공수처를 반대한 진보 성향 정치인, 전직 검찰·경찰·공수처 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직인 수사기관 간부들의 입장은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

수사권 조정안 당론에 반대해 징계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은 통제 없이 수사했던 검찰과 똑같이 자기 마음대로 수사하겠다는 것”


검·경·공 협력 시스템 절실

계엄 수사는 공수처가 검경에 윤 대통령 사건에 대한 ‘이첩요청권’을 행사하면서 세 갈래로 찢어졌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검찰이 군 지휘부를, 경찰이 경찰 지휘부를 주로 수사했다. 공수처와 경찰은 검찰을 제외해 ‘공조수사본부’를 꾸렸고, 검찰은 군검찰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경쟁했다. 체포영장 집행 지원, 구속기간 협의, 수사자료 제공 등을 두고 기관 간 신경전이 계속됐다. 경찰과 공수처는 신속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자평했지만, 검찰은 수사 과정이 비효율적이었다고 비판했다.

공수처 비상계엄 수사팀의 주임검사였던 차정현 수사4부장은 “공수처의 이첩요청권 행사로 검경 수사가 효율적으로 분업돼 제1피의자(윤 대통령)가 54일 만에 신속히 구속 기소됐다”며 “일사불란한 수사가 어려워 일부 잡음이 생긴 면이 있지만 상호 견제와 협력으로 투명·신속·공정한 수사가 진행된 면이 훨씬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은애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총경)도 “수사 초기 혼란이 있었지만 국가적 사건에서 특정 기관(검찰)이 수사를 독점해 발생하는 사건 왜곡·축소의 가능성은 줄었다”고 했다.

반면 최지석 서울고검 감찰부장(차장검사)은 “검사의 수사지휘를 폐지하고 직접수사 기능을 대폭 제한해, 계엄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형사사법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정밀한 법리 검토와 집약적·체계적 수사가 필요해도 검찰의 역량을 활용할 수 없었고 여러 수사기관의 권한 유무가 쟁점이 되면서 효율성과 신속성이 저해됐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사이 권한이 충돌해 혼선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협력 체계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은 “수사기관 간의 협업 시스템을 전혀 설계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기관을 난립하게 만든 것이 혼란의 원인”이라며 “계엄 수사의 난맥상은 ‘수사기관 간 협업·소통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검경개혁소위원장도 “검찰, 경찰, 공수처가 조직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협력하도록 법률에 절차와 권한 배분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수처 ‘이첩요청권’ 어쩌나

윤 대통령 사건에 욕심을 내던 검경이 공수처에 사건을 넘겨준 이유는 공수처가 ‘이첩요청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24조는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구하는 경우 다른 수사기관은 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검경에 없는 공수처만의 권한이다.

김후곤 전 서울고검장

검수완박 추진 당시 전국 지검장회의 반대 입장 발표


“수사권 조정 후 ‘빛나는 사건’은 서로 수사하려 경쟁하고, 하기 싫은 사건은 다른 기관에 떠넘기는 경향 심화”


공수처 측은 이첩요청권이 과도한 권한이 아니라고 본다. 여운국 전 공수처 차장은 “이첩요청권이 없는 공수처는 동네 경찰서만도 못한 수사기관이 될 수 있다”며 “규모가 작은 공수처에 수사기관들의 경합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고유권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애 총경도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전문적인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라며 “현행 형사소송법이 검경이 동시에 수사했을 때는 검사에게 수사 우선권을 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첩요청권 발동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법무·검찰개혁위 위원으로 공수처법 설계에 참여한 이윤제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 공수처법상 이첩요청권은 객관적으로 비합리적이라도 공수처장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면 사건을 빼앗을 수 있게 돼 있다”며 “개혁위 권고안에선 ‘특별한 상황’이라는 제한 요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수처가 권한을 남용해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지석 차장검사는 “다른 기관에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나 피의자 조사를 진행해 상당 부분 수사가 이뤄진 사건이나 수사가 마무리 단계인 사건은 공수처가 이첩 요청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운국 전 공수처 차장

‘고발사주’ 의혹 수사


“이첩요청권은 규모가 작은 공수처에 수사기관간 경합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


검찰은 수사권을 내려놓아야 할까

검찰 측은 권력형 부패범죄나 복잡한 금융범죄에 전문적 역량을 쌓은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면 부작용이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한 수사권 조정에 대해선 ‘책임 수사’를 사라지게 했다고 비판한다. 과거에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이 모두 송치받아 ‘자기 책임’으로 보완했는데, 지금은 검사에게도 경찰에게도 ‘자기 책임’이 없어 서로 사건 처리를 떠넘긴다는 것이다.

최지석 차장검사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폐지하면 수사부터 기소까지 정밀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고난도 중대범죄 대응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검사가 경찰 수사의 적법성을 판단하며 책임지던 검찰 수사지휘 체계가 국민에게 가장 효용이 컸다”고 했다. 김후곤 전 고검장은 “수사기관들이 빛나는 사건은 서로 수사하려 경쟁하고, 하기 싫은 사건은 관할 등을 핑계로 다른 기관에 떠넘기는 경향이 심화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전 법무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추진단 자문위원


“검찰 수사관들이 경찰로 넘어가야 진정한 의미의 수사권 조정”


경찰 측에선 경찰은 수사권자로, 검찰은 기소권자로 ‘완전한’ 분리를 주장한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관여하는 영장청구권도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온다. 이은애 총경은 “검찰이 기소권자의 역할만 하는 건 사회적 공감이 형성됐다고 생각한다”며 “영장 발부 권한도 법원에 있으므로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기각하지 말고 법적 보완만 거친 뒤 그대로 법원에 청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인력을 경찰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소·고발건이 몰리고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하며 보낸 사건이 쌓여 경찰의 민생사건 처리가 지연된다는 지적에 대한 해결책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외관상 수사권 조정은 됐지만 경찰 역할에 맞는 인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검찰 수사관들이 경찰로 넘어가야 진정한 의미의 수사권 조정”이라고 했다.

검찰이 역량을 쌓은 ‘특수수사’ 기능 일부만 남기고 검찰의 수사권을 대부분 폐지하는 대신 수사지휘권을 부활시켜 경찰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계 역사적으로 수사는 경찰의 업무이고 수사통제가 검찰의 업무”라며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은 통제 없이 수사했던 검찰과 똑같이 자기 마음대로 수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제 명지대 법학과 교수

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


“법무·검찰개혁위 권고안대로라면 공수처법에 모순이 생기지 않는데, 국회가 근본적 문제를 만들었다”


공수처 이어 또 다른 수사기관 논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현재 검찰이 가진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경찰, 공수처, 중수청이 수사를 담당하고 기존 검찰은 ‘공소청’으로 바꾼다는 구상이다. 중수청 신설에 대해선 검경 모두 달갑지 않아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검찰이 공소청으로 바뀌면 모든 수사권을 잃고 사건 서류만 검토해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기소 여부만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검찰 측은 경찰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기 어렵고 사건이 검경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핑퐁’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 주장한다. 최지석 차장검사는 “검사가 수사를 통해 혐의를 직접 검증할 수 없는데도 기소 여부 판단에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된다”며 “중수청 설치에도 수백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경찰과 역할이 중첩돼 수사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은애 경기북부경찰청 총경

수사권 조정 당시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


“일반적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고 다양한 전문분야는 특별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지휘 없이 수사하도록 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경찰 측에선 검찰 수사권 폐지에 대해선 동의하면서도 중수청을 설치하지 말고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은애 총경은 “중요 사건을 중수청만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 사건에 경중이 생긴다”며 “일반적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고 다양한 전문 분야는 특사경이 검사의 지휘 없이 수사하도록 해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권을 모두 잃는다면 경찰의 비대한 권한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이은애 총경은 “영국의 경찰 소청위원회(IPCC)처럼 경찰의 부패와 절차 위반에 대해 직권 조사하는 별도 기관을 설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웅혁 교수도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고 오작동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을 창설하거나 경찰위원회를 실효화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창민 민변 검경개혁소위원장

현 공수처 인사위원회 위원


“검·경·공수처, 조직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협력하도록 절차와 권한 배분 규정할 필요”


공수처 폐지론·강화론 충돌

금태섭 전 의원은 “공수처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라며 폐지를 주장한다. 금 전 의원은 “공수처가 지금은 무능하다고 비판받지만 수사력이 강해지면 무서운 권력기관이 된다”며 “권력자가 측근을 공수처장으로 세우면 사건을 빼앗아 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검경 수사를 뭉개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정현 공수처 수사4부장

윤석열 대통령 내란죄 사건 주임검사


“고위공직자 범죄는 일반 범죄보다 더 치밀하게 대응해야 하므로 수사·기소권 일치가 더욱 필요”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수처법을 개정해 수사·기소권을 일치시키고 검사·수사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검경과의 협조 관계, 피의자 구속기간,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 등 계엄 수사 과정에서 지적된 법률상 공백에 대해서도 서둘러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지석 서울고검 감찰부장

전 대검찰청 형사정책담당관


“검찰 직접 수사권을 없애선 안 돼. 검사가 경찰 수사의 적법성을 판단해 책임지던 수사지휘 체계가 가장 큰 효용”


여운국 전 차장은 “검경은 공수처의 최말단 공무원까지 수사할 수 있지만 공수처는 검사에 대해 극히 일부 범죄만 기소할 수 있다”며 “공수처의 수사·기소권이 일치해야 검경과 대등하게 상호 견제하는 수사기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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