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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 앞둔 봉준호 신작 SF '미키 17'
우주 식민지 시대 복제 반복하는 남자 이야기
자본주의 비인간성, 파시즘 비판까지 더해져
여전한 블랙 유머와 섬세한 묘사가 눈길 잡아채
'미키 17'은 동시에 존재하게 된 복제 인물 둘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겪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죽는 게 직업이다. 우주 식민지 개발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신체 절단 구경이 취미인 악덕사채업자의 전기 톱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갖은 위험한 일을 해내며 목숨을 잃으면 바로 똑같이 ‘프린트’된다. 식민지 행성에 정착하기 전까지 자원을 아껴야 하니 일회용품처럼 쓰이고 복제돼 다시 죽다가 복제되기를 반복하는 ‘익스펜더블’이 필요하다. 보육원 출신에 기술은 없고 빚내 차린 마카롱 가게는 쫄딱 망한, 2054년의 젊은 흙수저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에게 ‘선택’은 사치품이나 다름없다.

2054년 배경 ‘흙수저’의 서러운 삶

미키가 타고 있는 우주선은 독재자 케네스 마샬이 이끌고 있다. 그는 종교와 결탁된 인물로 아내와 함께 사람들을 선동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28일 개봉)은 미래의 지옥도를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낸다. 봉 감독은 살벌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데 미키라는 붓을 활용한다. 미키는 인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생체실험에 쓰이거나 위험한 작업에 나섰다가 10번 목숨을 잃는다. 15분가량도 채 못 살고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지만 단지 ‘직업’이라는 이유로 미키는 제대로 죽지 못하면 일주일에 7일, 하루 14시간씩 초과 근무에 시달린다. 그에게는 산재보험도 노동조합도 연금도 없다. 29년 뒤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나 오늘을 사는 관객들 뒷목이 서늘해지는 묘사다. ‘자본주의의 단맛’이 아닌 ‘쓴맛’을 절감하게 된다.

한국 현실 정치 떠올리게 하는 설정 눈길

'미키 17'에는 봉준호 감독 이전 작품과 달리 남녀 사이의 로맨스가 주요하게 다뤄진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7(17번째 미키라는 의미다)이 식민지 행성 ‘니플하임’에서 외부 업무에 나섰다가 계곡에 떨어지면서 이야기는 본궤도에 오른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에 돌아오나 너무 늦었다. 미키 18이 프린트 돼 자신의 방을 차지하고 있다. 복제된 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들키면 ‘영구 삭제’될 처지에서 미키 17과 18은 예상치 못한 모험을 겪게 된다. 아찔한 사각 사랑이 끼어들고, 우주선 독재자 케네스(마크 러팔로)·일파(토니 콜레트) 마샬 부부와의 갈등이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대치가 발생하는 가운데 미키는 혁명을 꾀하기도 한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시턴의 소설 ‘미키 7’(2022)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나 원작과 결이 많이 다르다. 역사학자 미키를 주인공으로 한 원작은 복제에 따른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주로 던졌다.

봉 감독은 자신의 세계관을 반영해 원작을 창의적으로 개조해낸다. 원작보다 미키를 10번 더 죽이며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다. 원작과 달리 독재자 부부 캐릭터를 등장시켜 정치성을 더했다. 종교와 결탁한 독재자 부부는 “니플하임을 순수한 백색 행성”으로 만들겠다고 사람들을 선동한다. 인종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풍자일 텐데 지금 한국에 사는 관객으로서는 현실 정치를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봉 감독이 예언자는 아니겠으나 그의 탁월한 상상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봉 감독의 특유의 독설 어린 유머는 여전하다.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세상을 묘사한다. 필요 이상으로 꼼꼼한 묘사는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이런 식. 미키가 보육원 친구 티모(스티븐 연)와 마카롱 가게를 동업하며 맞춰 입은 티셔츠 위에 이런 글귀가 있다. ‘마카롱은 죄악이 아니다(Macarons Is Not a Sin)’이다. 다이어트의 적처럼 여겨지고, 섭취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마카롱을 변호하는 말에 유머가 스며있다.

‘설국열차’와 ‘옥자’ ‘기생충’ 떠올리게 해

'미키 17'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현실 세계를 응축해낸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기시감을 일으키는 대목이 적지 않다. 미키는 우주선에서 천민 취급을 받는다. 그는 ‘설국열차’(2013) 속 꼬리칸 인물 커티스(크리스 에번스)의 또 다른 모습이고, ‘기생충’(2019) 속 반지하 삶을 사는 기우(최우식)의 닮은 꼴이다. 어쩌면 우정을 나눈 슈퍼 돼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옥자’(2016)의 시골 소녀 미자(안서현)일 수 있다. 독재자 역시 ‘봉준호 월드’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케네스 마샬 위로 ‘설국열차’의 윌포드(에드 해리스), ‘옥자’의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턴)가 겹쳐진다. 피지배계층의 봉기 역시 봉 감독 영화에서 반복된 소재다.

새로운 면모가 있기도 하다. 봉 감독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그의 영화 최초로 사랑이 등장한다. 미키를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나샤(나오미 애키)는 봉 감독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가 미키에게 “너의 잘못은 아니야”라고 말할 때 세상의 수많은 ‘미키’들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 모른다. 봉 감독이 이전보다 약진했다 할 수 없으나 그는 적어도 반보 앞으로 나아갔다. 15세 이상 관람가. 미국(3월 7일)보다 일주일 앞서 개봉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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