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혐중' ]
지지층 결집 목적... 계엄 후 '혐중' 키워
동북공정 미세먼지 등 반중 정서 악용
보수 몰락 원인을 외부의 적으로 돌려
"혐중 이대로 가면 10배 혐한 부메랑"
지지층 결집 목적... 계엄 후 '혐중' 키워
동북공정 미세먼지 등 반중 정서 악용
보수 몰락 원인을 외부의 적으로 돌려
"혐중 이대로 가면 10배 혐한 부메랑"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인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사거리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부정선거 검증하라'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손팻말과 태극기, 성조기를 흔들며 함성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려 '중국 혐오' 목소리가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선 중국을 겨냥한 온갖 음모론을 담은 콘텐츠가 불티나게 소비되고, 2030세대 사이에서 '반중(反中)'을 넘어 '혐중(嫌中) 정서'까지 확산하고 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부정선거 개입설 등을 퍼뜨리며 '혐중의 이념화'에 앞장서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혐중 자극' 하루 747건... 유튜브선 조회수 두 배
한국일보는 이달 10일부터 16일까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청년층이 주로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대표 갤러리 3곳(국민의힘·미국정치·국민의힘 비대위)을 분석했다. 갤러리는 디시인사이드 내 하위 커뮤니티를 뜻한다. 1주일간 중국에 부정적인 게시글은 총 5,230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747건이다. 중국의 부정선거 개입이나 헌법재판관이 중국인이라는 등 중국 관련 허위·왜곡 정보를 담은 글들이 대다수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청년층이 많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중국 혐오 영상이 인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주장을 반박하는 영상으로 유명세를 탄 '그라운드씨'와 반페미니즘을 표방해 2030 남성들이 즐겨 보는 '신남성연대'가 대표적이다. 그라운드씨가 올해 초부터 이달 13일까지 올린 영상 29개 가운데 중국을 언급한 영상은 2개인데 중국 관련 영상의 평균 조회수(76만5,000회)는 전체 영상 평균(39만3,000회)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신남성연대에서도 39개 영상 중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등을 다룬 영상 4개의 평균 조회수는 다른 영상보다 8만 회 더 많았다.
2030에 깃든 반중 정서로 보수 위기 타개
이런 현상은 '12·3 불법계엄' 이후 극우 세력이 청년층이 품고 있던 반중 감정을 자극해 혐중으로 확대·전환해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과거 중국은 한국의 주요 수출국으로서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준 '윈윈 관계'였다면, 현재는 딥시크의 등장이 보여주듯 경쟁 상대로 자리 잡았다. 무협, 홍콩 영화 등 중국 문화에 향수가 있는 중장년층과 달리 청년 세대는 역사 왜곡(동북공정),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한류금지령'(한한령), 미세먼지 이슈 등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중 정서가 깃든 청년층에게 정치권과 극우 세력이 무분별하게 중국 관련 음모론을 주입시켜 혐중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김희교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반중은 국가 간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관계 회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반면, 혐중은 외부에 적을 만들려는 이데올로기"라며 "극우 세력이 두 번째 탄핵 국면에서 보수의 몰락 위기를 타개하려 혐중을 악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풍' '종북' 등 색깔론을 통한 갈라치기로는 젊은 층을 자극하기 힘들어 혐중이 먹혀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미일 관계를 중시하는 극성 보수 세력에게 체제가 다른 중국은 쉽게 적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짚었다. 중국을 '공공의 적'으로 삼고 더불어민주당의 친중 이미지를 부각하며 지지층 결집을 꾀할 구심점으로 삼는 선거 전략이란 시각도 있다.
대통령과 공당도 음모론으로 혐중 키워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여당 일부 의원은 혐중 정서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수시로 꺼내고 있다. 김민전·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등은 최근 "중국인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한다"는 낭설로 빈축을 샀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중국인의 간첩 활동 우려를 들더니 지난달 16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도 '중국인 간첩 90여 명 체포' 등 가짜뉴스를 거론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공개석상에서 음모론을 퍼뜨려 문화적 반감이 큰 청년 세대의 중국 혐오감이 강해졌다"고 풀이했다.
혐중 정서가 폭력·폭동 등 불법 행위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동 당시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시민들에게 "중국인이냐"고 추궁하고, 현장 경찰들을 향해 "중국 공안이니 걷어차라"라고 했다. 미국 마블 코믹스의 '캡틴아메리카' 복장으로 주한 중국대사관에 난입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혐중 여론을 깨달아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위험한 불장난 멈춰야"
전문가들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혐중을 방관할 경우 우리 사회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혐중은 필연적으로 중국인들의 혐한을 초래한다"며 "K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고 뷰티와 푸드 등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희교 교수도 "혐중이 10~20배의 혐한으로 돌아올 것은 자명하다"며 "위험한 불장난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혐중 확산을 막기 위해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정희 교수는 "경제단체 등에서 혐한 감정 확대로 인한 피해 사례와 수치를 집계해 혐중 확대가 어떤 피해를 야기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허위·왜곡 정보를 쏟아내는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심도있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종명 성균관대 글로벌융합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영국은 지난해 '2024 미디어법'을 제정해 유튜브 등 서비스에도 공영방송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며 "한국도 가짜뉴스 콘텐츠의 책임 소재를 플랫폼에 부여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문해력)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는 잘못한 개인과 전체적으로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한 혼동으로 발생한다"며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