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그런데 이러한 범죄에 대한 공포는 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엔 빈틈이 많습니다.
MBC가 지난 10년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했더니, 유족이 정부의 구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감형된 사례가 50여 건에 달했는데요.
범죄 피해 연속기획, 오늘은 감형통로가 된 유족구조금 제도를 남효정 기자가 단독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생후 16개월밖에 안 된 서원이가 몸 여기저기에 주사관과 기계장치를 붙인 채 겨우 숨을 쉬고 있습니다.
"서원아, 얼른 일어나자."
일을 나간 부모를 대신해 위탁모에게 맡겨졌던 서원이는 지속적인 학대로 뇌사 상태에 빠져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같은 위탁모에게 맡겨졌던 다른 두 아기도 화상을 입고 물고문을 당하는 등 학대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체포된 위탁모가 1심에서 받은 형량은 징역 17년.
서원이 가족이 정부로부터 받은 유족구조금 중 4백만 원을 위탁모가 갚았다는 이유로 법원은 위탁모에게 유리하게 판결했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위탁모가 국가에 유족구조금을 백만 원 더 상환한 점 등이 더해져 형량이 2년 더 깎였습니다.
범죄 피해자 유족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가 먼저 구조금을 준 뒤, 나중에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유족구조금 제도가 오히려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는 통로가 돼버린 겁니다.
[김대근/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국가에 의해서 구조된 혜택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관계의 피해 회복으로 간주하는 것은 법의 취지나 양형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MBC가 지난 2015년부터 10년간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했더니 이렇게 유족이 정부의 구조금을 받았다가 가해자가 감형된 사례는 54건에 달했습니다.
그중 7건은 피해 유족이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요청했고, 9건은 가해자가 유족의 용서를 받지 못했거나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심지어 가해자 본인이 아닌 주변 사람이 일부를 변제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량에 유리하게 반영된 경우도 7건에 달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상당수의 유족이 갑작스런 범죄 피해로 삶이 파괴되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유족구조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흡연장 살해 사건' 피해 유족]
"가해자 측에서 돈을 갚으면 합의한 것처럼 좀 양형이 된다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이 제대로 벌을 못 받고 그렇게 되면 저희는 앞으로 살아갈 때 더 얼마나 후회하겠어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가해자를 돕는 모순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양형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MBC 뉴스 남효정입니다.
영상취재: 우성훈 / 영상편집: 김지윤 / 자료조사: 조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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