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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 50일-다시 찾은 비극의 현장]
가족에 못 돌아간 유류품 300여점 공항 보관소
"유품 하나라도 더"… '환갑' 엄마의 애타는 마음
경찰 신속 인도 위해 희생자 사진 수천 장 익혀
49재 엄수… 유족 "참사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현장. 희생자 범국민합동 49재를 하루 앞둔 14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 무안=박시몬 기자


35세 아들은 하늘로 먼저 갔지만 올해 환갑인 엄마는 차마 공항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48일째인 지난 1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나모씨는 나직이 말했다.
"혹시라도, 우리 아들 유품 한 점이라도 더 나올까 봐..."


한 번 매만져보고 싶은 아들의 흔적이 언제 새로 발견될지 모르기에, 청사 안에 설치된 유가족 임시 거처(텐트)에서 지금껏 버텼다. 나씨는 "아들 물건 중 품에 안은 건 슬리퍼와 운동화 한 짝이 전부"라고 했다. 아들 장례만 치른 뒤 다니던 직장도 관둔 채 공항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다.

참사 희생자 179명의 49재(2월 15일)를 앞두고 한국일보가 찾은 무안공항 현장의 시간은 그렇게 멈춰 있었다. 떠나 보낸 가족의 유품을 한 점이라도 더 수습하려는 유족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유품 속에 그날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가 차츰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 가는 모습을 보며 유족들은 말한다. "참사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그리고 또 외친다. "이 비극이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규명돼야만 한다"고.

유류품 찾기 위한 유족들 발길 이어져

14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유류품 보관소 내부. 주인을 찾지 못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물건들이 선반에 놓여있다. 유족 제공


참사 현장에서 수습된 유류품은 총 1,200여 점. 이 가운데 500여 점은 유족에게 인도됐고 주인을 찾지 못한 300여 점은 무안공항에 남아 있다. 나머지 400여 점은 기체 폭발로 심하게 훼손된 전자기기 등으로 복원이 불가능해 유족 인도가 사실상 어렵다. 염화칼슘 등을 보관하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무안공항 유류품 보관소는 유족 외엔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한국일보가 유족을 통해 받아본 보관소 내부 사진엔 희생자 흔적이 가득했다. 신발, 옷가지, 휴대폰, 가방 등이 비닐팩에 정갈하게 포장된 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3단 철제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부패로 인한 변질 등 훼손 방지를 위해 이곳의 온도와 습도는 늘 일정하게 유지된다. 고인의 유류품을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한 유족들의 발길이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끝내 유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유류품은 건조와 진공 처리 뒤 조만간 마련될 추모 공간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유족 아픔 헤아린 경찰

14일 전남 무안군 전남경찰청에서 이인환 전남경찰청 질서관리계 경위가 본보와 인터뷰에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유류품 수습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무안=박시몬 기자


유족의 이런 애타는 심정을 헤아린 경찰도 그동안 쉴 틈 없이 유류품 인도에 매달렸다. 잿더미를 일일이 헤집어 찾아낸 유류품을 유족이 식별할 수 있게 최대한 복원했고, 하나 남은 운동화 등 수백 개의 물품들은 일일이 사이즈 등을 대조해 짝을 맞췄다. 여행용 가방에 달린 이름표에 적힌 영문 이니셜을 보고 탑승객 명단을 뒤져 주인을 찾거나, 이동식저장장치(USB) 속 발표 자료(PDF파일) 작성자의 이름을 보고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혈흔 등으로 얼룩진 옷을 받아들고 "우리 애 냄새가 난다"며 오열한 유족을 본 뒤로 경찰은 옷가지 등을 세탁하지 않고 습기만 제거해 보관했다.


전남경찰청 질서관리계 이인환(44) 경위는 카카오톡 자신과의 대화창에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을 수두룩하게 올려놨다. 혹시 일치하는 유류품이 있는지 눈에 익혀두기 위해서다.
"결혼 반지만큼은 꼭 찾아달라"고 울먹이던 유족이 보낸 사진을 틈날 때마다 봐뒀던 그는 수색하다 발견된 반지를 한눈에 알아보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돌려줬다.
이 경위는 "고인의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가족에게 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더 오래 기억할게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희생자 범국민합동 49재를 하루 앞둔 14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무안=박시몬 기자


무안공항 활주로는 여전히 폐쇄돼 있다. 종잇장처럼 구겨졌던 사고 기체는 치워졌으나 여객기가 충돌한 활주로 끝자락에 위치한 비극의 둔덕은 사고 직후 모습 그대로였다. 흘러내린 흙더미 곳곳에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삐죽 솟아 있었다. 부근 갈대밭은 죄다 짧게 잘렸다. 희생자와 유류품을 신속히 찾기 위해서였다. 활주로 인근 철조망에 묶인 빛바랜 검은색과 분홍색 추모 리본들, 추모객들이 남긴 애도의 쪽지가 바람에 나부꼈다. 철조망 아래 놓인 추모 화환은 시든 지 오래였다. 이따금 추모객들이 차량을 세우고 철조망 너머에서 사고 현장을 향해 묵념했다. 목포에서 온 윤모(24)씨는 "많은 분이 희생된 참사인데 너무 빨리 잊히는 듯하다"며 "더 오래 기억하려고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들도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입을 모은다. 자녀를 잃은 60대 유족은 "사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도록 (국민이) 관심을 주셔야 한다"고 울먹였다. 유가족 대표 박한신씨는 15일 공항 분향소에서 엄수된 49재 합동위령제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원인을 밝혀내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를 잃은 조모(30)씨도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있어선 안 되니 부디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위령제에서 "철저한 조사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사회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위령제엔 유족과 김영록 전남지사, 강기정 광주시장, 권영진 국회 제주항공여객기참사특별위원장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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