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새 보안관 왔다" 훈계만…평화협상 테이블 '유럽 배제' 시사
우크라, 美광물협정 일단 거부…'패싱' 불만 유럽, 17일 긴급회의
우크라, 美광물협정 일단 거부…'패싱' 불만 유럽, 17일 긴급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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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안에 대한 기대를 모았던 세계 최대 안보분야 국제회의 뮌헨안보회의(MSC)는 16일(현지시간) 폐막까지 사흘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만 재확인하는 자리에 그쳤다.
미국이 유럽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고 정치 문제에 훈수를 두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구체적인 전쟁 종식 방안을 둘러싼 논의는 진척을 못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분쟁 당사자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행여 평화협정에 이르는 과정에 미국-러시아 정상회담이 먼저 열릴까 전전긍긍했고, 미국의 '패싱' 행보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정상들은 MSC 폐막 직후 별도 모임을 긴급소집했다.
MSC를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세는 개막일인 지난 14일 J.D. 밴스 부통령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고 발언한 것으로 요약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시절 우크라이나 지원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았던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조로 완전히 '유턴'했음을 유럽에 다시 한번 선언한 셈이다.
밴스 부통령은 관심을 집중시킨 우크라이나 종전 청사진 대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J.D.밴스 미국 부통령
(EPA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발언 듣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 2025.2.17 [email protected]
(EPA 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발언 듣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 2025.2.17 [email protected]
대신 "미국이 위험에 처해 있는 세계 다른 지역에 집중하는 동안 유럽인들은 (자기방어와 관련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동맹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서방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국방비 지출 확대를 압박했다.
또 밴스 부통령은 유럽 내부의 위협이 우려된다며 "유럽 전역에서 언론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유럽의 정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데 기조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이튿날인 15일 평화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속내가 조금 더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인 키스 켈로그는 MSC에서 양국 평화협상이 열릴 경우 유럽이 참여하게 될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테이블을 주도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해법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먼저 논의하며 유럽을 '패싱'하는 모습을 보인 데에 발끈한 유럽은 미국에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 미국의 준비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진정한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선을 그어놓은 데에 대한 반응이다. 그와 밴스 부통령과의 당시 회동은 40분 만에 끝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에도 "우리의 등 뒤에서 합의되거나 참여 없이 이뤄진 평화 협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같은 규칙이 유럽 전체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EPA 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 행사장에서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 기다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2.17 [email protected]
(EPA 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 행사장에서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 기다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5.2.17 [email protected]
이런 분위기 속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한 우크라이나 희토류 지분 50% 등 이른바 '광물협정' 초안을 일단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MSC 주최국 독일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4일 "새 미국 행정부는 우리와 매우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기존의 규칙, 파트너십, 기존에 구축된 신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실패한 우크라이나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쇠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세계의 독재주의자들은 이웃을 침공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을 침범했을 때 처벌이 이뤄지는지, 실질적 억지력이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의 요구에 맞춰 종전이 성사되면 후과를 치를 거라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해법에 있어서 미국에 철저히 외면당한 유럽은 오는 17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주요국 정상과 나토 사무총장이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독일 총리 만난 왕이 중국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AFP) 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오른쪽)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5.2.17 [email protected]
(AFP) 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오른쪽)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5.2.17 [email protected]
중립국 스위스의 카린 켈러 주터 대통령은 MSC 마지막 날인 16일 "미국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며 "유럽 각국 대표단은 미국의 정책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없었고 이는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이 틈을 파고들려는 모습이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은 15일 MSC 회의장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나토가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중국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인식을 확립해달라"고 요청했다.
왕 주임은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의 회동에서도 "중국과 유럽 간에는 근본적인 이해 충돌이 없으며 지정학적 갈등도 없다"면서 전략적 소통과 상호 이해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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