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의 달리기
러닝 크루 ‘ㅊㅊㅎ’ 회원들이 눈 쌓인 운동장을 천천히 달리고 있다. 추운 날 하는 달리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러너들을 매혹한다. 성동욱 제공
이번엔 달릴 준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곧 봄이 오니까 지금이 준비하기 좋은 날들 아닐까요? 달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이 달릴 의지예요. “좋아! 이제 달릴 수 있겠어!” 마음먹기만 하면 몸은 거들 뿐. 마라톤 역사상 압도적으로 위대한 선수인 엘리우드 킵초게도 말했습니다. “마음이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자네, 나랑 달리기 한번 해볼 텐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팀 과장처럼 제안하면 자주 질문을 받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 체념에 가깝죠. “저는 체력이 약해서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요. 오래 달리는 건 못할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제 의견을 전해주고 싶어요. 숨이 찰 정도로 달릴 필요가 없어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정도면 충분해요. 횡단보도 신호등 녹색 조명이 점멸할 때 전속력으로 달리면 비록 거리가 짧아도 힘이 들잖아요. 단거리 육상 선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가만히 있다가 전속력으로 달렸으니까.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러닝은 그런 전력 질주가 아니에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오랫동안 달릴 수 있고, 결국 멀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천천히’는 초능력이에요.
눈 쌓인 곳을 달릴 때는 더욱 ‘천천히 뛰기’를 해야 한다. 성동욱 제공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들어요.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괴물 체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닌데요? 제 주변 풀코스 러너들은 평범한 수준의 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 달리는 자신의 방식을 찾은 거예요. 정말로 그게 다예요. 모든 일이 천천히 달리면서 시작된 거예요.
초보 러너와 달릴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런 말을 해주곤 해요. “천천히 달리는 게 빨리 달리는 것만큼 어려워요. 아니, 어쩌면 더 어려울지도….” 물론 대부분, 이 잘생긴 사내는 왜 뜬금없이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봐요. 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올립니다. 금세 숨이 찹니다. 천천히 가자, 이건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빨리 달릴 수 있어서 빨라지는 게 아니거든요. 몸을 조절하지 못해서 빨라지는 겁니다. 결국 몸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입니다. 달리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에요. 몸을 단련시키는 건 그다음이고요. 쉽지 않죠.
숙련된 러너도 페이스를 잃고 무의식적으로 질주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오버페이스죠.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완주하더라도 원하는 기록을 달성할 수 없어요. 천천히 달린다는 건 자신의 페이스로 달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힘이 남아 있어도, 그래서 발이 마음보다 앞서 나가도, 천천히 달려야 합니다. 저도 잘 못 해요. 빨리 달리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마다 주변을 돌아봅니다. 저는 중랑천을 자주 뛰거든요. 계절을 비추는 수면을 보고, 우아하게 날아가는 쇠백로와 왜가리를 보고, 씀바귀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밤을 불러오는 모습을 봐요. 동부간선도로에서 차들이 빛을 튕기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앞만 주시하며 달리다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 제가 달릴 수 있는, 달려야 하는 페이스를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 짜증 가득한 지구에 행복이라는 게 있구나, 느껴요. 물론 스스로의 한계를 갱신하며 빠르게, 더 빠르게 달려야 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다만 첫 달리기를 앞둔 상황에서 고려할 게 아니라는 거예요.
러닝 크루 ‘ㅊㅊㅎ’ 회원들이 눈 쌓인 운동장을 천천히 달리고 있다. 추운 날 하는 달리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러너들을 매혹한다. 성동욱 제공
멀리 왔네요. 질문으로 돌아가면,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체력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천천히, 더 천천히 달릴 의지면 돼요. 숨이 차면 걸으세요. 호흡이 차분해지면 다시 천천히 달려요. 마치 명상하듯이.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한가지만 더 말해보면, 달리고 싶은데 무릎이나 발목이 아파서 불가능하다는 분들도 꽤 있어요. 살이 많이 쪄서 다이어트를 먼저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요. 달릴 수 없다면 안 달려야죠. 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오해를 조금만 극복해보면 어떨까요? 이렇게요. 100m를 아주 느리게 달리고 잠시 걷다가 다시 100m를 느리게 달리고 걷고. 반복하는 거죠. 이런 방식의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운동량을 늘리면 무릎과 발목 주변의 근력이 강화돼서 통증이 오히려 줄어들 거예요.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도 되고요. 꼭 이 방식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우주의 누구보다 느리게 걷고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직접 러닝 계획을 세워보세요.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탱크를 밀어서 옮긴 기분이 들 거예요. 가장 무거운 자신을 옮겼으니까요. 자부심을 가질 만해요.
빠르게 멀리 달리는 게 달리기의 본질이 아닙니다. 러닝은 좌우로 흔들리는 와중에 중심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나의 속도로,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죠. 이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숨이 차도록 달리고 싶어. 숨이 차도 계속 가보고 싶어.” 완전히 새로운 달리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힘든 순간을 이겨내면 기쁨도 커집니다.
추운 날 달리기를 한 러닝 크루 ‘ㅊㅊㅎ’ 회원. 추운 날 하는 달리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러너들을 매혹한다. 성동욱 제공
저는 제가 뛴 거리와 페이스를 과시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달리기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게 한가지 있긴 해요. 매일 달리는 거예요. 눈이 와도 달리고 비가 와도 달리고 추워도 달리고 더워도 달리는 거예요. 저녁에 친구랑 만날 약속이 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달리거나 지하철역까지 달려가요. 영화 ‘록키’의 록키 발보아처럼 계단도 오르고요. 오른쪽 주먹을 높이 들며 승리 포즈도 취하고요. 하지만 이것조차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저 스스로에게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제 목표는 계속 달리는 거예요. 내일도 모레도. 그게 저의 승리예요.
혹시 달려볼 마음이 생겼나요? 뛰기엔 봄이 더 좋지만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눈 내리는 영하의 날들, 겨울왕국 궁전 같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흘려보낼 거예요? 오 마이 갓! 안 뛰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답니다. 유명한 만화 대사를 패러디하면 ‘당신은 이미 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페크의 명언을 전합니다. 부디 달릴 마음이 생기기를.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우리는, 사람!
이우성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