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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법 리스크’ 해소 기대 꺾여
대법, 법리 적용 한정 따질 듯
[법알못 판례 읽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제기된 혐의를 모조리 벗었다. 2024년 2월 1심 판단에 이어 2심도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 지난 10년간 삼성전자를 옭아맨 사법 리스크가 드디어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은 검찰이 항소심 과정에서 추가로 제출한 증거 약 2300건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4년 8월 서울행정법원 판결에 근거해 2심 공소장에 새롭게 추가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혐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미 1심 단계에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로부터 ‘불기소’ 권고를 받았음에도 기소를 강행해 비판받았다.

기소 당시 수사팀을 이끌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개 사과에 나서면서 법조계에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에도 대법원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며 상고를 밀어붙였다.

추가된 증거 2000여 건 인정 안 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 고법판사 김선희·이인수)는 2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검사의 항소 이유에 관한 주장은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법원은 2024년 2월 같은 사건 1심에서도 이 회장에 대해 제기된 공소 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 등 나머지 13명도 모두 1심과 같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1심에서 내지 않았던 증거 약 2300건을 추가하는 등 유죄 입증에 총력을 기울였다.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는 기본적으로 재판부로부터 법률상 자격을 얻어야 유무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방대한 양의 증거를 심리에서 배제한 이유를 판결문 서두에 자세히 설시했다. 용량이 18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삼성바이오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서버, 장충기 전 사장의 휴대전화 메시지 등을 검찰이 입수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성이 있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점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며 “오히려 영장에 기재된 혐의 사실의 관련 범위를 넘어 서버 등에 저장된 정보 일체가 압수된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전자 정보 매체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선 무분별한 증거 수집을 막기 위한 정보의 선별 절차가 선행돼야 하는데 검찰의 수사 보고 등을 보면 이런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법원은 정보 선별 절차가 사실상 전부 생략됨에 따라 피압수자의 참여권도 보장되지 못했다고도 짚었다. 재판부는 “피압수자 측의 명시적 이의 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는 압수·수색이 전체적으로 적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정보 선별과 관련해 “전자 정보의 중요성, 정보 주체의 피해 정도와 오남용 위험 등을 고려해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재량 아래 둬선 안 된다”며 수사기관이 어떤 경우에도 적법한 압수·수색과 인권 보장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 실질 부합하는 회계 처리라면 부정 아냐”


2심 재판의 최대 쟁점으로 거론됐던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의혹도 기각됐다. 재판부는 총 851쪽 분량의 판결문 중 해당 의혹을 무죄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230여 쪽을 할애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자회사 에피스의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부채로 인식할 경우 발생하는 자본잠식을 회피할 목적으로 에피스에 대해 지배력 상실 처리를 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이와 관련, 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분식회계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2024년 8월 삼성바이오가 정해진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같은 회계 처리를 한 것이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바삐 움직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분식 회계가 있었다는 점이 법원 단계에서 사실상 인정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회계 처리 재량권을 남용했다”는 내용을 예비적 공소 사실로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미리 정한 특정한 결론이 결국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대안 중 하나였다면 그것을 부정 회계로 봐야 할 필요성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회계 처리가 보고 기업의 경제적 실질에 기초한 유용한 정보를 충실히 제공하는 한 부정 회계로 제재할 정책적 필요성이 없다”고 짚었다. 회계 처리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지만 이 역시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기 때문에 합리적 결과였다는 재판부 판단도 적시됐다.

2014년 말 삼성바이오가 신용평가기관 등에 의뢰해 콜옵션 평가 불능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특정 문구를 먼저 제시하거나 공문의 작성 일자를 특정 날짜로 소급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거짓 기재라고 볼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내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지만 그 결과는 삼성바이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이 부합한다”며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함이 인정된다”고 했다.

[돋보기]

검찰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보겠다”


검찰은 2심 판단이 나온 뒤 나흘째인 2월 7일 이 회장을 포함한 피고인 14명에 대해 상고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 부정과 부정거래 행위에 대한 법리 판단에 대한 (법원과의) 견해차”를 상고 제기 배경으로 들었다.

검찰은 또 “△주요 쟁점에 대해 1심과 2심 간 판단을 달리한 점 △(항소심 판단이) 지배권 승계 작업 및 분식회계를 인정한 이전의 판결과 배치되는 점 △관련 소송이 다수 진행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소장 변경의 핵심 근거였던 2024년 8월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항소심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의혹과 관련, 1심은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으나 2심에선 “콜옵션 공시 내용 등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식으로 판단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검찰이 콕 집어 거론한 ‘이전 판결’도 행정법원 판결을 가리킨다.

검찰은 상고 제기 전 형사상고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고 상고심의위에 참석한 공판 검사들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고심의위는 90분가량 논의한 끝에 과반 의결로 ‘상고 제기’ 의견을 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상고심의위에 참석한 위원 6명 중 몇 명이 상고 제기 의견을 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만장일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1·2심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충분히 이뤄진 만큼 대법원에선 법리 적용의 적절성을 따지는 ‘법률심’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고등검찰청 상고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변호사는 “반드시 유죄로 결론이 뒤집혀야 한다는 취지보다는 법리적으로 최종적인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상고 제기 권고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전자로서는 10년 묵은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고 과감한 경영활동이 재개될 수 있으리란 기대가 한풀 꺾이게 됐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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