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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연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아이폰SE의 배터리를 직접 교체했다. 수리 비용은 단돈 2만5000원. 진작 고쳐 쓸 걸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의 감상이다. 휴대전화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재촉한다.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것이 이득이다.’ 그 목소리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으나, 한편으로는 들떠 있다. 새로운 기술과 더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갖지 않으면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질 것이며, 최신폰을 구매하는 것은 콘텐츠 창작자로서 최소한의 투자라고 말한다. ‘뒤처진다’라는 말에 겁을 먹은 나는 휴대전화를 고쳐 쓰는 대신 최신 제품을 구입하곤 했다.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의 경우 배터리 교체 비용은 10만원대로 합리적인 가격이다. 하지만 액정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있으면 수리가 거절되고, 액정까지 교체해야 배터리 수리가 가능하다. 메인보드나 액정 손상은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170만원짜리 휴대폰을 고치는 데 100만원 안팎의 거금이 든다. 후면 유리나 스피커, 카메라 같은 일부 고장은 별도로 수리되지 않고, 다른 부품까지 한 번에 교체해야 한다. 수리 비용을 들으면 ‘새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기업이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새 제품 구매를 권유한다. 수리센터가 또 하나의 영업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소유권을 이전받지만, 과연 진짜로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소비자는 기대했던 만큼 물건을 사용하지 못한다. 디지털 기기의 경우,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서 갑자기 못 쓰게 되기도 한다. 구입 후에도 사실상 기업이 제품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통제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소비자 중심의 수리 정책이 필요하다. 애플은 2021년 자가 수리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들은 정품 부품과 도구, 설명서를 제공받는다. 한국은 관련 법안이 없다는 이유로 서비스에서 제외되었는데, 같은 비용으로 같은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로서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내에서는 아직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 즉 ‘수리권’에 관한 인지도가 낮다. 기업의 책임도 약소하다. 소비자가 수리하기 쉬운 제품을 고를 수 있고, 고장 난 이후에도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는 ‘진짜 주인’이 되려면 수리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 보니, 휴대폰이 낡았다고 시대에 뒤처지지는 않더라. 오히려 폐기된 휴대전화가 야기하는 환경오염이나 자원 채굴 과정의 인권유린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요구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대폰 수리는 쉽지 않지만, 어려울수록 몰입되고 스릴 넘치는 것이 자가 수리의 매력이다. 비용도 저렴하고 데이터 유출 걱정도 없다. 수리하는 동안 겸손한 태도만 잃지 않는다면 행운의 여신도 가히 굽어살필 것이다.

마침, 아이폰SE가 MZ들 사이에 ‘감성폰’으로 유행한다는데, 고친 김에 나도 세기말 느낌의 감성 사진 한번 찍어볼까? 수리에 진심이지만 유행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술렁인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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