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국과 똑같이”, 대통령 각서 서명
국가별 맞춤형 부과, 이르면 4월부터
각국에 협상 기회… 보편 관세는 유보
국가별 맞춤형 부과, 이르면 4월부터
각국에 협상 기회… 보편 관세는 유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관세 연구를 행정부에 지시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한 뒤 해당 각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르면 4월부터 나라마다 다른 수준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상대국 관세율이 높으면 그에 맞춰 인상하는 식이다. 한국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사실상 관세가 없거나 세율이 낮은 국가를 상대로는 자국산 수출을 방해하는 비관세 장벽을 검토한다. 대(對)미국 무역 흑자를 용서하지 않는, 이른바 ‘트럼프표(標) 상호 관세’다.
美 제조업 부활 위한 포석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통령 각서 ‘상호 무역과 관세’에 서명했다. 각서에는 교역에 상호주의를 관철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오라는 대통령 지시가 담겼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는 물론 미국 제품에 매기는 세금, 자국 기업에 지급하는 수출 보조금, 환율 정책, 미국 기업의 사업을 막는 규제·불공정 관행 등 비관세 장벽 등을 상무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파악하라는 지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서 서명 후 기자회견에서 “공정성을 위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며 “더 많지도 적지도 않게 상대가 미국에 부과한 만큼 미국도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목표는 무역 적자 해소다. 백악관은 “지난해 미국의 상품 무역 적자는 1조 달러(약 1,443조 원)를 초과했다”며 “국제 무역의 오랜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가 상호 관세”라고 설명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없다”고 강조했다.
시행 시기는 이르면 4월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행정부 차원 연구를 4월 1일까지 마무리해 대통령에게 4월 2일 (상호 관세 부과를) 시작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율은 국가별 맞춤형으로 책정된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사전 브리핑에서 “각국에는 자국에 부과될 관세 수준에 대해 협상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韓 플랫폼법, 관세 빌미 될까
1차 표적은 미국산 대상 관세율이 높은 나라들이다. 백악관은 브라질, 인도, 유럽연합(EU) 등을 미국의 무역 적자를 부르는 관세 불균형 사례로 거론했다. 가령 미국은 인도 농산물에 5% 관세를 적용하는 반면 인도는 미국산에 39%를 물린다. EU는 수입차에 10% 관세를 부과하는데 이는 미국(2.5%)의 4배다.
하지만 저관세 국가라고 미국의 상호 관세 검토를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백악관 당국자는 “대통령이 비관세 장벽에 레이저빔처럼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배포 자료에서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제시된 사례는 구글·애플 등 미국의 거대 다국적기업에 부과되는 ‘디지털세’였다. 캐나다와 프랑스가 미국 기업들로부터 매년 5억 달러(약 7,200억 원) 이상을 이 세금으로 징수한다고 백악관은 지적했다.
하워드 러트닉(오른쪽) 미국 상무장관 후보자가 13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이 서명한 상호 관세 관련 대통령 각서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대미 무역 흑자 상위 국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미 흑자를 기록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상품 수지 기준 660억 달러(약 96조 원)로, 중국·EU·멕시코 등에 이어 9위였다. 미국 재무부에 의해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도 지정돼 있다.
FTA 체결로 대부분 철폐된 관세로는 미국에 책잡힐 일은 없다. 문제는 비관세 장벽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후보자는 최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EU와 한국 등의 온라인 플랫폼 기업 독과점 규제 움직임을 콕 집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입차 환경 규제도 USTR이 작년 3월 펴낸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미국 자동차 업계의 우려 사항으로 기록돼 있다.
관세 예고된 반도체·자동차
한국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각각 대미 수출 품목 1, 2위인 자동차, 반도체가 품목별 관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대만에 빼앗긴 우리 반도체 사업을 되찾고 싶다”며 자동차·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방안 검토 의향을 재확인했다.
상호 관세의 노림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뉴욕타임스는 “수입 장벽을 높이려 하는지, 수출 장벽을 낮추려 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고 짚었다. 제조업 부활과 무역 적자 축소를 위해 관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소신이지만, 기업들은 상호 관세가 저관세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다만 예고돼 온 10~20% 보편 관세 시행은 일단 보류된 분위기다. 백악관 당국자는 “현재로선 상호 관세가 대통령의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