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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2000원짜리 파스타 팔면 배달비·수수료 4700원
하루 14시간 일해도 인건비 못 건져
가계 소비위축 경영악화 결정타…계엄 뒤 1월엔 30% 폭락
상점가 한 상점에 폐업 뒤 임대 알림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임대’, ‘임대’, ‘임대’

지난 1월22일 오후,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 앞을 찾았다. 표지판이 줄을 이었다. 거리는 임대 안내문이 나붙은 빈 점포와 건물들로 황량했다. 한때 부산의 ‘신촌’이라 할 정도로 핵심 상권으로 꼽혔던 이 거리는 이제 ‘쇠락한 상권’을 상징한다. 부산대 근처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ㄱ씨는 “부산대 앞은 원래 옷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소규모 상점들이 많아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는데, 이제는 온라인에서 다 사지 않냐”며 “젊은이들 발길이 줄어드니 상점, 음식점이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 닫고 떠났다”고 말했다.

젊은 소비자를 대신해 부산대 앞 거리를 채운 건 ‘배달 라이더’들이다. 이날 한 음식점 앞에서 배달 주문을 기다리던 라이더 ㄴ씨는 “그나마 버티는 가게들은 배달 주문을 많이 받는 가격이 싼 음식점이나 카페”라며 “2~3년 전부터 폐업하는 가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했다.

부산대 앞 한 카페에서 ‘폐업한 사장님’ 김아무개(45)씨를 만났다. 김씨는 지난해 12월31일 폐업 신고를 마지막으로 20년 가까이 해오던 음식 장사를 그만뒀단다. 그는 “더는 음식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폐업하는 날 솔직히 홀가분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에서 나왔다’는 안도가 들더군요.”

그는 동네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 대유행이 닥치자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듬해 업종을 바꿨다. 파스타 등을 파는 배달 전문 음식점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영업이 잘되지 않았다. 2023년 5월 코로나19 종식 선언 이후에도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재료비 상승까지 겹쳐 수익성은 더 나빠졌다. 투자금을 매일매일 까먹었다.

결심은 지난해 7월에 했다고 한다. 배달의민족이 쿠팡이츠와 동일한 수준인 9.8%로 배달중개수수료를 올렸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판단은 그때 섰죠. 폐업을 피하기 어렵구나….” 김씨가 아내와 함께 장애인활동보조사 자격증 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는 “1만2천원짜리 파스타를 팔면 배달비, 수수료 등으로 약 4700원 정도를 떼간다”며 “여기에 재료비, 포장비까지 빼고 나면 하루 14시간 아내와 골병들게 일했어도 인건비도 못 건졌다”고 털어놨다.

4년 가까이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김씨가 손에 쥔 돈은 400만원 남짓이다. 쓰던 식기를 새로운 임대인에게 중고로 넘기고 받은 돈이다. 그가 운영하던 가게 자리에는 다른 배달 전문 음식점이 들어섰다.

한 상점가 스티로폼에 폐업 알림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재료값 급등→소비 위축…고사 중인 음식점들

음식점은 여전히 그리 어렵지 않게 도전해볼 수 있는 자영업으로 꼽힌다. 2018년 12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는 50만명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국의 일반음식점이 4만4580개, 휴게음식점이 5만3277개 늘었다. 합계 10만개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음식점의 형편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빠르게 나빠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3천개 표본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를 보면 평균 영업이익이 2022년 2657만원으로, 2019년 3046만원에 견줘 12.8% 줄었다. 그나마 코로나19 대유행 때인 2020~2021년보다는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수익성은 꾸준히 악화했다. 영업이익률은 2019년 15.0%에서 2020년 12.1%, 2021년 11.2%, 2022년 11.6%로 계속 하락했다.


이익률 하락은 영업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재료비가 매출보다 빠르게 늘어난 까닭이다. 2023년 경영상 애로사항으로 식재료비 상승을 꼽은 사람이 91.4%(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고, 경쟁 심화 83.9%, 임차료 상승 77.3%, 인건비 상승 75.2% 순으로 대답했다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다.

2023년과 2024년엔 농산물 물가가 폭등해 음식점 업주들의 식재료비 부담이 훨씬 커졌다. 경기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ㄷ(37)씨는 “무, 시금치 같은 채소 가격이 비쌀 때는 10배 넘게 오른다.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다”라며 “분식처럼 단가가 낮은 박리다매형 음식점은 (판매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어) 더욱 힘들다”고 했다.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양을 줄이는 소극적 대응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경영 악화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는 것은 가계의 소비 위축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김치찌개 전문점을 하는 유덕현 서울소상공인연합회장은 “밤 9시 넘어가면 손님이 없어진 지 꽤 됐다”며 “코로나 대유행 이후 달라진 문화 현상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굳어진 소비 형태”라고 했다. 유 회장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엔 매출이 더 줄더니, 올해 1월엔 매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30%나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연합회 회원 가운데도 폐업을 고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접으면 뭐 먹고 사나?”…폐업도 쉽지 않아

폐업도 결단하기 쉽지 않다. 폐업하면 대출금 일부라도 갚아야 하는데다, 정부의 원리금 상환 유예 같은 소상공인 금융 지원도 못 받기 때문이다. 정책자금 외에 제2금융권 대출로 연명해온 자영업자들도 상당수다. 특히 대부분 중장년층인 음식점 점주들이 다른 생계유지 수단을 찾기 힘든 점도 폐업에 선뜻 나설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앞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실태조사를 보면, 일반음식점 업주의 평균연령은 55.4살, 일반음식점 이외는 50.5살이다.

서울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ㄹ(52)씨의 말이다. “폐업하고 싶어도 나중을 생각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요. 가게 접은 이웃 점주들도 장사 말고 할 게 없으니 재창업을 고민하더군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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