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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기후행동]
유행 따라 쉽게 버리기도 하는 고가의 패딩
멀쩡한데 유행 변했다며 버리면 탄소 배출
오리·거위 생털 뽑는 동물권 문제도 제기돼
재활용 시스템 구축 더뎌... 한 벌이면 충분

편집자주

한 사람의 행동은 작아 보여도 여럿이 모이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후대응을 실천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이 4주에 한 번씩 목요일에 연재합니다.
한파특보가 발효된 2023년 11월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롱패딩 등 추위에 대비한 옷차림으로 무장한 채 출근을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입춘 한파가 시작되며 거리에 롱패딩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최근 아이와 함께 만난 지인이 엄마는 롱패딩, 아이는 쇼트패딩을 입고 있어 본인만 따뜻하게 하고 다니는 거냐 했더니 큰아이 옷을 물려 입은 거란다. 몇 년 전 큰아이가 고집하던 고가 브랜드의 롱패딩을 둘째까지 물려 입힐 생각에 거금을 들여 사줬건만 유행 브랜드도 바뀌고 요즘 대세는 쇼트패딩이라 작은아이에 입히는 대신 본인이라도 몇 번 입고 버리려 한다고 했다. "쇼트패딩이면 가격은 싸겠네" 했더니 옷값이 어디 그러냐며 "등골 브레이커인 것은 매한가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검정 롱패딩은 2010년대 후반 당시 70만~80만 원을 호가해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킨 주인공이었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교복인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당시 겨울철 거리를 뒤덮었다. 마침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롱패딩은 가성비 최고에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이를 구매하려고 밤샘 줄서기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사이 선호 브랜드가 수차례 바뀌고 이젠 아예 쇼트패딩이 유행이라니. 그럼 그 많은 등골 브레이커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버리는 많은 옷이 그렇듯 대부분 멀쩡할 텐데 제대로 재활용될까? 만약 재활용되지 않는다면 버려진 롱패딩으로 인한 탄소발자국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소위 롱패딩이라 하면 칼바람이 불면 뒤집어쓸 수 있는 털 달린 모자와 발목까지 덮는 길이, 무엇보다 그 전체가 오리나 거위의 깃털도 아닌 솜털로 80% 이상 빵빵하게 채워져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롱패딩은 기후환경 문제보다는 동물권 이슈가 먼저 주목받았다. 롱패딩을 위해 어마어마한 수의 거위와 오리가 생후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말 그대로 생털이 뽑히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 대안으로 합성섬유 충전재를 사용하거나 윤리적 사육과 채취로 생산된 털로 만든 패딩들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 저감을 고려한 롱패딩 재활용 시스템 구축과 제품 생산은 상당히 더디다.

그나마 파타고니아, 세이브 더 덕 등 몇몇 해외 패션기업은 버려진 패딩을 수거해 재활용한 다운(새 솜털)으로 만든 패딩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재활용한 다운으로 만든 패딩은 기존 대비 33% 탄소 저감효과가 있다고 한다. H&M은 2025년까지 재활용된 다운만을 사용하고, 신규로 동물 깃털을 사용하는 '버진 다운'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도 재활용 다운 패딩을 생산하지만 아직은 한정판 위주이고 브랜드 확장 계획도 찾아볼 수 없다. 몇 년 전 버려진 패딩, 이불, 베개 등에서 오리털과 거위털을 수거하고 재활용해 550여 벌의 업사이클링 패딩을 제작하고 이를 통해 약 1만1,000마리의 오리와 거위의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국내 베리구스의 패딩도 지금은 구입할 수 없는 듯하다. 여러 구호단체가 버려진 패딩을 모으거나 기업 재고를 기부받아 국내 저소득층과 해외 난민에게 보내지만 이 역시 지속적인 재활용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롱패딩이든 쇼트패딩이든 수많은 오리, 거위 학대의 산물로 만들어내 우리의 등골을 휘게 하고 종국에는 또 하나의 버려진 옷으로 개도국 기후환경 문제의 새로운 주범이 되는 패딩. 결국 이 추위에 나를 보호해 주는 건 지금 내가 입은 한 벌이다. 하나면 족하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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