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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플라스틱 일회용기와 포장재 소비를 줄이자며 4년 전 화장품·세제 리필(소분) 매장 활성화를 시도했지만, 운영 난에 시달리던 매장들이 최근 속속 문을 닫고 있다.

1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해 말 남아있던 리필 매장 2곳의 문을 닫았다. 2021년 대형마트 최초로 리필 매장 1호점을 연 이후 전국 13개 이마트 점포에서 샴푸 등을 리필 용기에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했지만 4년만에 완전히 없앤 것이다. 화장품 업계에선 아모레퍼시픽이 2020년 10월 처음 아모레스토어 광교 등 4곳에 리필 매장을 도입했지만 2023년 7월 이후 모두 접었다. 편의점에서는 GS25가 2021년 일부 점포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했다가 이후 운영을 중단했다.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해 세제를 용기에 담는 모습. 연합뉴스
‘리필 스테이션’으로도 불리는 리필 매장은 소비자가 용기를 매장에 가져오면 세제나 샴푸, 린스 등을 필요한 양만큼 구입해 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일회용 용기 사용을 줄이고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친환경 ‘녹색 소비’ 트렌드가 시들해진 데다, 관련 규제 때문에 운영 효율이 떨어져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2020년 3월부터 맞춤형 화장품 제도를 시행하며 제조 시설 없이도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으로 신고하면 리필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엔 제조업자만 가능했다. 서울시도 배출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확산한다며, 관련 지원 사업을 펼쳤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그 당시엔 ‘재활용’과 ‘재사용’을 강조하던 시기라 리필 매장이 주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좋은 취지이지만 현실적으로 매장을 확산하기가 쉽지 않았다”라며 “기존 용기에 채워쓸 수 있는 '리필러블'(refillable) 제품을 개발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리필 매장을 이용하겠다는 소비자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기대만큼 확산되지 않아 사업을 접었다”라고 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운영 중인 국내 리필 매장은 전국 26곳으로, 대부분 영세 업체들이다.
이마트에서 운영했던 샴푸, 바디워시 리필 매장. 사진 이마트
정권이 바뀌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권 교체 이후 일회용컵 사용 금지 규제가 완화됐고, 제도적 뒷받침도 후퇴해 리필 소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영세 리필 매장 업체들은 정부 규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맞춤형 화장품 제도 시행 당시 정부는 리필 매장에 '조제 관리사'를 상주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화장품 소분 행위는 원칙적으로 제조에 해당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미 제조·유통된 화장품을 소분 판매하는 단순 행위를 제조로 규정하고 전문 인력을 두라는 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이 g당 10원, 30원, 50원씩 하는데 아무리 많이 팔아도 채용할 인건비가 안 나온다”고 했다.

이런 문제가 제도 초기부터 지적되자 2021년에는 ‘매장에 조제관리사를 둬야 한다’는 규정을 규제 샌드박스(실증특례)로 풀어 매장 활성화를 유도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의 한 리필 전문 매장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가 종료된 지 1년이 됐는데 규제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라며 “조제관리사를 채용하기 힘든 곳들은 법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리필 매장 인기가 별로 없다보니, 제조사들도 리필 매장용 대용량 제품의 라인업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줄이는 추세”라고 했다.

정부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린스·샴푸·바디클렌저·액체비누 등 4종류 품목은 조제관리사 없이 교육받은 사람이 리필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국회 상임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업계에선 4종류 이외에 기초화장품 등으로도 리필 판매 품목을 확대해달라는 주장도 있지만 식약처는 “세균 번식 등 우려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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