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국회의사당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향한 시민사회의 염원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의 논의는 늘 제자리였다. “시급하지 않다” “악법이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는 주장 앞에 법 개정은 번번이 좌절됐다. 성범죄를 정하는 규범은 1953년 형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72년 동안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강간죄는 1953년 제정된 형법에 명문화됐다. 당시 성범죄는 ‘정조에 관한 죄’라는 이름으로 쓰였다. 법이 지켜야 할 법익이 ‘여성의 정조’였다. 1995년 ‘강간과 추행의 죄’로 이름이 바뀌었고, 2013년 친고죄가 폐지되는 등 성범죄를 규정한 형법의 변화는 조금씩 이루어져 왔다. 그렇지만 ‘동의하지 않으면 강간’이라는 인식은 72년 동안 형법에 담기지 못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촉구 역사는 1991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운동’부터 시작된다. 여성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두고 있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2005년 여성인권법연대의 형법 개정 운동은 ‘동의 없는 성적 행동’의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2007년 임종인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비동의강간죄는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다시금 주목받았다. 미투 운동으로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가시화됐으나, 사회적 지위 등 위계에 의해 벌어진 성폭력은 대부분 폭행·협박 없이 이뤄져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전국 208개 여성인권단체가 연합해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입법 촉구 활동을 벌였다. 미투 운동의 흐름을 타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비동의강간죄 관련 형법 개정안은 10개에 달했다. 그러나 10개 법안 대부분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변변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비동의강간죄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됐으나 역시 폐기됐다.

이후 입법 환경은 더 척박해졌다.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반동)가 극심해지며 비동의강간죄도 외면받고 있다. 2023년 윤석열 정부 여성가족부는 비동의강간죄 도입 방침을 밝혔다가 반발에 부딪혀 9시간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여가부는 ‘제3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에 비동의강간죄 관련 정책을 포함했으나, 일각에서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가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이라고 입장을 냈다.

지난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10대 정책공약에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포함했다가 “실무적 착오”라며 철회했다. 당시 민주당이 청년 남성 표심을 의식해 입장을 번복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22대 국회에선 아직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국회의원이 아무도 없다. 대신 시민들이 나섰다. 지난달 비동의강간죄에 관한 국민동의청원 2건이 시민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시리즈 끝>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5892 지난해 상장사 자사주 취득 14조원…1위는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91 [속보] 뉴욕증시, 트럼프 관세 서명에도 시큰둥…다우 0.3%↑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90 ‘코인 대통령’ 맞나요?···관세 정책에 휘청이는 비트코인[경제밥도둑]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9 ‘단골’ 할아버지의 부고…장례식장에 간 카페 사장 [잇슈 키워드]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8 명태균 "오세훈·홍준표 민낯을"‥야권, 특검 발의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7 인스타 ‘고해성사’방이라더니… “19금 비밀 얘기해줘”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6 기자 위협하고 경찰 짓눌렀다…극우 집회마다 등장한 유튜버, 결국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5 네타냐후 “15일까지 인질 석방 안 되면 휴전 끝날 것”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4 트럼프 옆 머스크, 백악관 집무실서 "관료주의는 민주주의 아냐"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3 ‘윤석열 옹호’ 앞장서는 극우 인권위…안창호 지명이 ‘퇴행’ 정점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2 신지호 “한동훈 서울시장 출마설, 오세훈 측이 퍼뜨린 가짜 뉴스”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1 유승민 "나라 두쪽 낸 윤석열·이재명 두 빌런, 동시 정리해야" [안혜리의 직격인터뷰]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80 트럼프, 요르단 국왕 면전서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9 논란의 ‘대통령 행정 명령’, 트럼프가 남발하는 걸까? [특파원 리포트]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8 트럼프발 관세 폭격, 자동차도 사정권..."한국서 미국 가는 140여 만대 어쩌나"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7 부부싸움에 총격전까지…'러 최고 여성갑부' 고려인 결국 이혼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6 ‘버터핑거 폐점·에그슬럿 철수’... 뉴욕 간판 단 美 브런치 브랜드, ‘우울한 퇴장’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5 “러시아, 군용차량 부족하자 당나귀까지 동원”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4 이재명이 띄운 '주4일제'…스웨덴, 재정부담에 중도 포기했다 new 랭크뉴스 2025.02.12
45873 [단독] 박선원과 문자∙이병기와 통화…홍장원, 계엄 직후 여야 다 접촉 new 랭크뉴스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