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훈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
윤 지지자들 전원위 참관 속 정당성 설파
반대표 위원들은 안창호 위원장 사퇴 촉구
윤 지지자들 전원위 참관 속 정당성 설파
반대표 위원들은 안창호 위원장 사퇴 촉구
국가인권위원회 문정호 노조위원장 및 직원들이 1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안 가결 규탄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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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고 윤석열 대통령 등 ‘내란죄 피의자·피고인’들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안건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의결되자 인권위 안팎에선 “참담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인권위원은 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인권위 직원들도 전 직원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인권위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성명도 이어졌다.
거센 비판으로 두 차례 전원위원회가 취소된 끝에 발의 1달여 만인 지난 10일 상정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은 윤 대통령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애초 안건에 담겼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철회와 신속 심리 권고는 삭제됐지만 △헌법재판소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때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적법절차원칙을 준수하고 △수사기관은 불구속 수사 원칙을 유념하며 △헌법재판소에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 탄핵소추 남용 여부를 적극 검토해 남용이 인정되는 경우 각하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안건을 검토하게 된 배경 등에는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 행위” 등 내란을 옹호하는 의견도 그대로 담겼다.
전날 오후 3시에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인권단체의 출입을 막아선 윤 대통령 지지자들 다수가 참관하는 등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에서 4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안창호 위원장이 대표 발의자인 김용원 위원에게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김 위원은 20분 동안 “계엄의 지속 시간이 2시간30분에 불과하고 국회에서 사소한 상해 입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나 문제가 될 정도인지 모르겠다”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다른 위원들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촉구했지만 안 위원장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고 방청석을 메운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김 위원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위원들은 돌아가며 입장을 표했다. 한석훈 위원은 김 위원을 거들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행위다. 계엄선포 자체가 탄핵 사유가 되는지 충분한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용직 위원은 “대통령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면 조사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도, 변호인도 나서지 않았는데 그가 약자라는 이유로 직권으로 의결하는 건 난센스”라며 반대 뜻을 밝혔다.
이충상 위원은 앞서 국회 현안질의에서도 이 안건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날은 “대통령은 현재 철저한 약자”라며 돌변했다. 그는 “추가로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 남용 여부를 검토하라는 권고를 추가하고 싶다”고 즉석에서 안건을 발의하기도 했다. 김용직 위원이 “박 장관도 마찬가지로 본인이 진정도 하지 않았다. 헌재의 판단을 믿으면 된다”고 하자 이충상 위원은 “헌재 못 믿는다. 제가 더 전문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방청석에서는 깔깔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위원들의 찬반 의견이 4 대 4로 갈리고 강정혜 위원의 의견만 남은 상황에서 안 위원장은 “강 위원이 키를 갖고 계신다. 본인이 찬성하실 내용이 일부 있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 찬성했는지 그것만 말씀 바란다”고 말했고 강 위원은 “전체 내용을 보면 동의할 부분이 아주 적어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이에 김용원·이충상·한석훈 위원이 주문 안을 하나씩 쪼개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며 ‘구애’를 시작했다. 강 위원이 “이번 안건은 더 다수 의견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논의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앞서 사의를 표명한 이충상 위원이 “오늘이 제가 참석하는 마지막 전원위”라며 답변을 유도했다. 원민경 위원이 “강 위원에게 답을 강요하지 말라”고 제지하자 방청석에선 고함과 야유가 이어졌다. 결국 강정혜 위원도 찬성 편에 섰다.
안 위원장까지 “현재 헌법재판관이 정치 성향에 따라 재판한다는 주장과 국민 50%가 헌재를 믿지 못하는 여론조사가 있다”며 찬성 편에 섰고, 6명(안창호·김용원·이충상·이한별·한석훈·강정혜)이 찬성하면서 수정안이 의결됐다.
소라미 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다수 위원이 한 위원을 상대로 대답을 강권했던 절차가 적법했는지 의구심이 들고, 이충상 위원은 회의 이전에 2인 이상의 동의를 받아 미리 안내돼야 하는 안건을 절차 없이 상정했다”면서 “이충상 위원이 다음 회의 때부터 빠진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강행된 안건”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연 위원들은 안건이 통과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지난달 해당 안건이 상정됐을 때는 인권위 안팎의 거센 비판으로 안건을 공동발의한 강정혜 위원이 안건을 철회하고 김종민 위원이 사퇴하며 의결 가능성이 점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사이 ‘서부지법 난동 사태’ 등 극우세력 준동이 계속됐고 전원위원회가 열린 전날에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인권위를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안건은 권고 또는 의견표명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탄핵심판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극우세력 결집을 또다시 유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안건이 의결된 후 고양감을 느낀 지지자들은 만세와 승리를 부르짖었다.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인권위원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어제자 의결로 (윤 대통령의) 수사와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도록 해 국가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제2의 서부지법 폭동사태가 발생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