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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3년 넘게 머리카락을 기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이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투병 중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무작정 머리카락을 길렀다. 가는 곳마다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고 성별이나 정체성 등을 묻는 질문도 계속됐다. 매일 머리카락을 말리고 빗질을 하는 시간만 30분 이상 소요됐다. 값비싼 머리카락 관련 영양제도 발라야 했다.

그렇게 3년을 넘게 버텼다. 손가락 두 마디쯤 길이였던 머리카락은 허리 중간까지 내려왔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임용 5년 차 공무원 (간호직 7급) 박조은씨(31)의 이야기이다.

지난 6일 오전 광산구보건소에서 박씨를 만났다. 그는 오는 15일 세계 소아암의 날에 맞춰 조만간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잘린 머리카락은 대한민국 사회공헌재단으로 보내져 아이들이 쓰는 특수 가발로 제작된다. 길이 25㎝ 이상에 염색과 파마는 하지 않아야 하고, 머릿결도 좋아야 하는 등 30개 이상의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박씨는 2022년 1월부터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여성 동료가 머리카락을 기부하며 투병 중인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힘을 보태자’는 생각에 새해 각오로 결심을 했다.

그가 동료를 따라 한 건 대학 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간호학을 전공한 박씨는 대학병원 소아병동에서 실습을 하며 매일 아픈 아이들을 마주했다. 아이들은 항암 주사 때문에 신체 곳곳에 멍이 들고 머리카락 빠져 모자를 쓰고 있는 아이가 많았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롭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주위의 도움과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직접 겪어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 무렵 그의 어머니는 간암 진단을 받았다. 간이식에 드는 비용은 물론, 간병인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와 지인들이 간병인을 자처했다. 십시일반으로 돈도 보탰다. 박씨는 “많은 분으로부터 큰 도움과 사랑을 어떤 형태로든 꼭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투병 중인 아이들을 위해 3년 넘게 머리카락을 기른 박조은 광주 광산구 보건소 주무관이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중 머리카락을 넘기고 있다. 고귀한 기자


머리카락을 기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직사회에서는 ‘남자가 무슨 머리를 기르느냐. 단정치 못하다’ 등 핀잔이 이어졌다. 박씨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일일이 취지를 설명했다. 용모도 더 단정히 했다. 머리카락이 귀를 덮게 되자 젤을 발라 이른바 올백 머리를 했다. 더 자라자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 감아올렸다. 그는 “지금도 머리끈이 없으면 불안해 외출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했다. 동료들은 ‘기왕 하는 거 끝까지 해보라’며 응원을 하고 있고, 상사들도 격려해 준다고 한다. 박씨는 “어느 순간부터 생일 선물이 머리카락 관련 제품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성별을 묻는 등 짓궂은 질문을 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대부분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한다.

그는 낯선 공간, 새로운 주민을 마주할 때면 ‘저 총각입니다’란 말로 첫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머리를 다시 기르는 것도 그중 하나”라며 “저를 계기로 이런 문화가 더 많이 알려지고 확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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