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발언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안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관련해 4년 전 국회 상임위 심의 과정에서도 ‘헌법 원칙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을 임기 중 국민투표를 거쳐 파면하는 제도다. 국민소환제와 관련해 11일 현재 국회(22대 국회)에는 박주민 의원 등 4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다만 이에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7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국민소환제 법안들에 대해 2020년 9월 작성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는 “국민소환제 도입의 합헌성(合憲性·헌법 원칙에 들어맞음)이 문제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보고서는 “국민소환제도는 헌법에서 규정한 대의제, 특히 자유 위임의 원칙과 정면충돌할 수 있고, 우회적인 신임투표로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우리 헌법은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며 직접민주주의는 국민투표 등 아주 예외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려면 헌법 역시 개정해야만 한다는 게 헌법학계 다수 의견”이라고 말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요지문에서 “대표자에 대한 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우리 헌법에서 대표자의 선출과 그에 대한 신임은 단지 선거의 형태로써 이뤄져야 한다”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이 결정문을 소개하며 국민소환제가 국회의원에 대한 신임투표처럼 변질될 경우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민주당은 국민소환제가 국회 입법만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헌법학계와 여권에서는 “개헌 언급을 하지 않는 이 대표가 개헌 사안인 국민소환제를 제안한 것은 모순되는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또 국민소환제가 헌법 45조에 보장된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형해화할 수 있으며, 정적 제거 등 다른 목적으로 국민소환제가 남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도 경고했다.
당장 여권에서도 국민소환제 남용 우려가 제기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의 국민소환제 제안에 대해 “극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민주당이 현 정부에서 국무위원이나 검사들에 대해 벌인 ‘릴레이 탄핵’이 다른 당 국회의원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고서에는 또 영국 등 해외 사례를 소개하면서 “영국 외에는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로 평가받는 나라들에서 국민소환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담겼다. 다만 이에 대해 유럽이나 미국 등의 정치 제도 탓에 국민소환의 필요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유럽의 경우 내각제가 많다 보니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 잦고, 미 하원 역시 임기가 2년에 불과해 국민소환제 필요성이 크지 않을 거란 얘기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담은 법률안은 17대 국회였던 2006년 김재윤 열린우리당 의원이 처음 발의했다. 이후 21대 국회까지 총 15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2017년 황영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제외하면 국민소환제법은 대부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 의원들이 발의했었다.